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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아차산

by 남궁인숙

한 달에 두 번 정도 휴일 오후 2시가 되면 친구들과 남들은 산이 아닌 동산이라고 하는 <아차산>을 즐겁게 산행을 한다. 아차산은 고구려의 장수였던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이야기가 있는데, 아차산성에서 온달장군이 전사하여 더욱 유명해진 산이다.

배용준이라는 배우가 촬영하다가 발견했다는 다소 억지로 지어낸 것처럼 느껴지는 <큰 바위 얼굴>도 있고, 전망대, 고구려정, 아차산성 등 보루들이 많아 걷기에 최적화된 코스들이 있다.



친구들과 70대 후반까지 산을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한 산행이 어느덧 5년을 넘겼다. 첫 산행은 지하철 5호선 아차산역에서 모두 만나서 출발하였고,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산행이 익숙해지면서는 아차산 관리사무소 옆에 있는 화장실 앞에서 만나기를 일 년, 이제는 반포에 사는 친구가 지하철 타고 오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운전을 하고 온다. 아차산 입구에는 주차공간이 없는 관계로 인근의 대학교 주차장에 세우고, 주차장에서 나와 만나서 산을 오른다.

아차산은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여러 갈래길이 있다. 그중의 한 사잇길로 올라가기 시작하면 산행에 필요한 잡동사니들을 바닥에 펼쳐놓고 파는 곳이 나온다. 우리는 그곳을 셋이 만날 수 있는 약속 장소로 정하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헉 헉거리면서 올라가다 보면 나보다 두 살 많은 아직 미혼인 내 친구가 땀에 흥건히 젖은 채 먼저 도착하여 다소곳이 앉아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차산 정상에 오르면 표지판 옆에서 삼삼오오 모여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사람들이 분주하다. 환하게 웃고서 멋진 포즈를 취하면서 한결같이 브이자를 그린다.



며칠 전 TV에서 아차산 정상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을 타더니 모두들 무심코 지나치던 표지판이 요즘 산행하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다. 매스컴의 영향력이다.

아차산은 삼국시대 최대의 격전지로 적의 동향을 살피며 무던히도 나라를 지키려 했던 군사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보루들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아차산을 동산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 보루들 때문인 것 같다. 마치 동산처럼 느껴지는 곳들이 군데군데 나온다. 그래서 어린이집 원생부터 반려견들까지 아차산은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어제는 산행하는 도중에 반려견 한 마리를 만났다. 반려견이 주인의 뒤를 핵 핵 거리며 나의 반대편에서 걸어온다. 가까이 다다르자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반려견의 맑은 검은 눈동자 속에 내가 있었다.

'너도 힘들구나...... 나도 힘든데......' 찰나였지만 반려견이 나를 바라보며 '저 좀 봐주세요....... 나 되게 힘들어요'라고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짧은 만남의 눈 맞춤에서 서로에게 깊은 공감을 하면서 아쉽게 스쳐 지나갔다. 평소에 반려견에 별 생각이 없었는데 산을 내려오는 내내 그 반려견의 눈동자가 머릿속에서 떠나 가질 않는다.


몇 년 동안 여자 셋이서 산행을 하는 동안 남편 헐뜯는 이야기, 시부모님 이야기, 자식 이야기, 직업군에서 발생하는 많은 이야기, 투자 이야기, 취미 이야기, 다이어트 등 수 없이 많은 대화 이어가면서 아무런 사고(?) 없이 정기적으로 산행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황마다 의견이 지독하게 맞지 않아 누구랄 것도 없이 우리는 서로 돌아가면서 박 터지게 싸운다. 어쩌다 옵서버를 초빙하면 그 옵서버 때문에 의견이 상충되기도 한다.

행을 같이 하면서 30년간 쌓인 우정 속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가면서, 우여곡절 또한 겪으면서 30년 지기인 여인네들이 산의 정기를 받으며 걸으면서 그동안 살아왔던 지혜를 바탕으로 앞으로 남은 우리들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며, 솜사탕 다루듯이 예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서로 다른 보폭과 속도를 가졌어도 다른 속도에 발걸음을 맞추면서 어차피 살아져야 하는 우리네 인생살이에 수많은 발걸음의 보폭을 다듬고, 시간을 엮어가며 잘 늙어가고 싶다.



어떤 일이든 목표가 있어야 하며, 의욕적인 목표 앞에 우리의 인생이 즐거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산 정상에서 마시는 음료 한 잔이 최종 목표다. 무더운 여름날 목을 축여주는 텀블러 속의 얼음 동동 띄운 한 잔의 시원한 매실차는 땀 흘리고 난 뒤의 후련함을 안겨주는 신성한 음료다. 추운 겨울 마시는 따뜻한 생강차는 바쁘게 발걸음을 옮겨주는 기폭제가 된다.

앞으로 가야 할 길, 아차산에서 용마산 방향으로 걸음을 떼며 힘겨운 것도 잊고 씩씩하게 다음 계단을 오른다. 산에서 마시는 음료가 신의 한 수였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또다시 발걸음을 옮기며 용마산 끝자락까지 다다른다. 우리는 화장실 앞에서 유턴을 하여 다시 아차산을 향해 돌진해 간다. 꼭 넘어가야 하는 깔딱 고개 앞에서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깔딱 고개 넘지 말고 사잇길로 내려갈까?" 수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을 한다.

570개의 계단 수를 세면서 건강 수명이 늘어난다고 세뇌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떼어 다음 계단으로 옮겨 놓기를 무심하게 하다 보면 어느 사이 아차산으로 들어선다.

땀범벅이 되어 산을 내려오면서, "우리는 몇 살이 될 때까지 산을 다닐 수 있을까?"라고 질문을 하곤 한다.

"오늘도 해냈다."

"안 싸우고 잘 다녀왔다."

"만 팔 천보 걸었다."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오늘의 아차산 다이어트는 또다시 원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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