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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당신에게

by 인문학 큐레이터

당신이 살아가면서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은 딱 2가지이다. 첫 번째는 타인의 마음 두 번째는 과거이다. 누구나 이성적으로 잘 알고 있다. 과거는 과거일 뿐 아무 힘도 없다는 사실을. 머릿속으로 잘 알고 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할 때 '과거'라는 녀석이 머리를 든다.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과거의 고통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단어가 '트라우마'만 한 게 없다. 모두에게 당장 일주일 전 일어났던 사건에 대해 설명하라 하면 잘 기억을 못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상처받았던 기억이나 인상 깊었던 사건을 이야기해보라 하면 마치 눈앞에 펼쳐지는 연극의 한 장면처럼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만큼 성장기에 겪은 사건은 이미 당신에게 장기기억으로 자리 잡아 잊으려 해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나 사건이 연출되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라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일종의 이미지이다. 아마 머리 어딘가를 다쳐 그 기억을 영원히 상실해버리지 않는 이상 당신의 과거 트라우마, 상처는 평생 당신을 따라다닐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 과거의 상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내가 했던 방법은 과거의 그 장면을 실패, 혹은 상처라고 기억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날 성장하게 만든 디딤돌이라고 생각을 한다.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이 과거의 실패와 상처를 다루는 데에 있다.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고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다. 일련의 사건을 곱씹으면서 자신의 한계를 정해버리느냐 한계를 뚫어버리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나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면, 한때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던 때가 있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동기들은 다들 단체로 병원에 다녀왔는지 TV에서나 볼법한 화려한 외모의 소유자들이었고 몸매도 서양인처럼 굴곡이 어마어마한 친구들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꽤 동양적인 외모에 수수한 옷차림, 전형적인 한국인 체형의 평범하고 통통한 몸매를 가진 여대생이었다. 단연 돋보이는 건 그 친구들이었고 난 구석에서 조용히 공부만 하는 새내기였다. 이미 스스로도 동기들과 열나게 비교할 무렵 나의 열등감에 불을 붙인 사람이 있었다. 그것도 모든 사람이 다 모인 대 강당에서 말이다.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평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아 MT에 참여하게 된다. 첫째 날 밤 모든 동기들과 선배들이 강당에 모여 레크리에이션을 한참 진행했다. 여자 남자 짝을 이뤄 게임을 하는데 한 명씩 돌아가며 인터뷰를 했다. MC는 당시 과 학회장, 과에서 가장 우두머리인 사람이었다. 내 바로 옆에는 우리 과에서 가장 화려한 외모에 몸매가 글래머 한 여자 친구가 있었고 상대방 파트너에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와 A 친구와 손잡고 같이 달린다니 너무 부러운데요. 기분이 어떠세요?'


당연히 상대방 파트너는 '너무 좋죠'라는 말과 함께 함박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옆자리 나의 파트너인 남자 선배에게 질문을 했다. '옆 커플이 좀 부럽죠? ㅋㅋㅋㅋ 아 제가 다 아쉽네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순식간에 강당의 분위기가 차가워지는 것을 나만 느꼈을 리 없다. 그 남자 선배는 황급히 수습하고자 '아 저도 너무 좋아요 영광인걸요!'라고 빠르게 인터뷰를 끝마쳤다. 나에게 귓속말로 '너무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마. 분위기 띄우려고 저런 말 한 거니까'


선배는 당황하며 나를 달래주려 했지만 이미 내 분노는 머리끝까지 차올랐고, 당시 MC를 보던 학회장을 졸업할 때까지 증오하며 그 이후로 학과 행사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으며 일명 '아싸'임을 자처하며 학교를 다녔다.

(여담이지만 외모 평가하길 좋아하던 학회장은 횡령 문제로 인해 회장직을 사퇴하고 졸업할 때까지 온갖 비난을 받으며 졸업을 했다. 이미 인성이 글러먹은 인간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상황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차오른다. 그 트라우마는 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혔다. 내 또래의 남자들이 많이 모인 공간은 뭔가 외모에 대한 평가를 당할까 봐 꺼려졌고 피하기도 했었다. 예쁜 여자들과 비교당할만한 장소에 가게 되면 그 자리에서 빨리 빠져나오기도 했다. 그 정도로 외모 열등감이 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외모 열등감'과 손절한 상태이다. 그때 이후로 스스로의 자신감을 키우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게 되었고 외모 이외의 내가 가진 가치에 집중하니 열등감은 저절로 사라졌다.


만약 내가 그때 그 트라우마를 아직까지도 내 인생의 큰 부분이라고 스스로 단정 지으며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난 아마 지금도 여러 모임을 꺼려하며 사회와의 단절을 선언했을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과거의 실패한 경험 때문에 '난 뭘 해도 안될 거야. 이미 여러 번 실패했는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자신을 보면서 만족할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란다.


당신이 원하는 '자아상'이 있다면? 원하는 성공을 거머쥐고 싶다면? 과거에 겪었던 모든 실패와 아픔과 손절하자. 과거는 아무런 힘이 없다. 당신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나도 수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과거는 절대 잊히진 않는다. 하지만 그 상황이 떠오르면 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에휴 그땐 그랬었지. 걔네들이 XX이었던 거지. 난 이렇게 성장했어. 그때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만큼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어'


과거의 실패와 상처를 연료로서 사용할 줄 안다면 당신은 이미 강인한 사람이다. 과거를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안다면 '프로손절러'의 삶에 한 발짝 더 다가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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