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사고 소식을 알리고 차디 찬 바닥에 들어 눕는다. 혼자 있는 집에 온기라고는 원래부터 없었기에 사람 사는 듯한 따듯함은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은 유난히 등이 시리고 차디 찬 냉기가 나를 휘감는다. 지금 바로 장례식장에 달려가야 할 것만 같은데 몸은 움직이질 않는다. 아마도 형이 없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 평소 여느 때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일까. 아님 형의 부재를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한바탕 휘몰아친 감정이 잠잠해지고, 형과 함께 있었던 기억을 하나하나 더듬어 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려 보니 창 밖으로 빛이 느껴진다. 빌어먹을 출근 시간이 임박한 것이리라. 누워있던 상태 그대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해는 또다시 제 할 일을 한다.
넋이 나간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시간도, 공간도, 감각도 낯설기만 하다. 조금만 정신을 가다듬는다면 코 끝이 찡하고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더 이상 어떤 의미를 찾기가 어려운 순간인데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깨와 허리에 주렁주렁 옷을 걸어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선다. 눈앞에 땅과 신발, 무릎이 보인다. 내 머리가, 내 등이, 내 척추가 어디에 있는지 감각이 없다. 땅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기괴한 느낌에 어떻게든 걷고는 있나 보다.
지하철을 타고 손잡이를 겨우 하나 부여잡아 버티고 섰다. 새벽까지 술을 먹어도 다음 날 출근은 하는 내가, 숙취에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줄은 놓지 않는 내가 눈에 초점이 없다. 자꾸만 주저앉으려는 다리와 굽어져만 가는 등을 손잡이 하나에 의지하고 겨우 한숨을 몰아 쉬며 휘청이고 있다. 길을 잃은 눈빛은 사방을 헤매다 바로 앞에 앉아있는 젊은 여성의 눈과 마주친다. 평소 같으면 다른 곳을 응시하며 눈빛을 피했으리라. 그러나 오늘은 피하지 않는다. 아니, 피하지 못한다. 어디든 갈 곳을 찾고 싶어 했던 정신이 타인의 눈에 현실을 직시하고 위로받으려 한다.
사람의 눈을 이렇게 오래 마주친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사람의 눈은 이렇게도 깊고 빛이 나는구나. 지금 내 눈은 어떠할까. 갑자기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처럼 한 순간에 갈 곳을 잃은 나는 어디로 가야 할까. 그녀의 얼굴은 비틀거리는 나를 불편하게 여김을 드러냈다. 눈이 마주치고 난 후에는 나도, 그녀도 서로의 눈을 계속 바라본다. 그녀의 불편하던 얼굴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애처로운 얼굴과 눈빛으로 나를 포옹한다. 눈빛으로도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코 끝이 시리고 귀가 먹먹해진다. 내 눈에는 슬픔인지 고마움인지 모를 무언가가 그렁그렁 차 오른다. 그녀의 눈도 붉게 물들며 무언가를 전해주려고 안감힘을 쓰는 것 같다. 그녀는 무엇을 본 것일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을 보았을까. 아니면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눈을 보았을까. 내 눈을 또렷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 쌍꺼풀이 없고 검은색 선이 눈꼬리 깊은 곳까지 그려있고 눈두덩이가 얇아 가녀리기만 한 눈. 얇은 갈색이 둘러싸고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무한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듯한 검은 그것이 나에게 와서 닿는다. 마치 까마득한 천장을 바라보는 것처럼 형에게 닿을 것만 같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모르고 화들짝 놀라서 잠깐 반짝이고 터져버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다음에는 진득하고 무거운 것이 흘러나와 내 눈에게 길을 알려준다. 할 말이 있으니 잠시 머물러 보라고 한다. 그 힘에 이끌려간 눈은 초점을 찾고 무너져가는 몸을 버텨낸다. 나는 말한다. 무슨 얘길 해도 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할 것이라고. 모든 것이 현실이자 사실이고 달라지지 않음을 알고 있다고. 내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어디에도 희망은 없다는 것을. 그래서 더 슬픈 것임을.
그녀의 깊고 여린 눈은 자꾸만 아니라고 한다. 얇은 눈두덩이가 연이어 깜박일 때마다 밝고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것이 흘러나와 시원하게 닿는다. 괜찮다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기운 내라며 내게 많은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잠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밖을 바라본다. 유난히도 파란 하늘에 유난스럽게 멋진 자태로 올라오는 해가 보인다. 내 세상은 조금도 준비할 겨를 없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음에도 바깥세상은 변함이 없다. 한결같은 세상이 원망스럽다. 혹시 저 변함없는 한결같음이 슬픔을 가진 사람들을 매일매일 위로해 왔을까. 그 위로가 내게도 닿을까. 적어도 지금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이고 싶다. 슬프고 슬퍼서 또 슬프고 싶다. 이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한없이 무기력하고 하찮은 존재이기에 이렇게라도 발버둥 친다. 왜 우리 형을 데려갔느냐고.
어느새 또 그렁그렁 차오른 슬픔에 시야가 흐리다. 촉촉해진 그녀의 눈이 보인다. 그녀도 이 슬픔을 아는 걸까. 나도 울고 그녀도 운다. 내 슬픔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슬픔을 나눈다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갇혀버린 슬픈 세상에 꼭 나 혼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스쳐가는 모두가 절망적인 고통과 아픔을 하나쯤은 안고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꿋꿋하게 견뎌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 두 다리가 견디기 힘들 만큼 짊어진 무게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삶에 정답이 있다면 모두가 서로를 보듬어주고 품어주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도 모르게 오전 근무만 마치고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러나 아직 형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장례식장을 처음 가는 것도 아닌데 다리가 떨린다. 병원이 보인다. 장례식장이 가까워 올 수록 살을 에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곳에 형이 누워있다. 사람을 좋아하고 따듯한 마음을 가진 형이 싸늘한 주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