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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Nov 26. 2023

89년 겨울, 매콤 씁쓸한 김장의 기억

참지, 마요 _내적욕구 _마음의 짐 털기

김장철이다. 어제는 본가에 김장을 하러(속 몇 번 넣고 수육과 갓 담은 김치를 먹은 일이 전부지만) 다녀왔다. 이제는 김장을 하는 집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집은 요지부동이다. 김치에 관한 한 타협하지 않는다는 고집이 대단하다. 


젓갈, 고춧가루, 청각 등 갖가지 속재료는 3개월 전부터 준비한다. 당장의 일정에 맞춰 근처 마트나 시장에서 사서 쓰는 법은 없다. 남해, 광천 등 산지에서 공수해야 직성이 풀린다. 배추 역시 조금 비싸더라도 남도의 이름난 배추들을 현지에 연락해 미리 맞추어 쓴다. 작년까진 해남산 배추 더니 올해는 킬로당 1만 원이 더 비싼 진도산 배추, 50 포기다. 


그렇게 완성된 갓담은 김치에 수육을 먹을 때면 왜 그런 번거로운 사전 과정이 필요한지 납득이 가지만, 더 힘이 빠지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는 늙은 부모의 수고로움이 염려될 따름이다.


김장을 할 때면, 나는 늘 중학교 1~2학년때의 일이 떠오른다. 아마도 89~90년의 일이었을 것이다. 당시 유통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사업에 크게 실패하고 고심 끝에 엄마와 함께 별 연고도 없는 왕십리에 가게를 차렸다. 한 번 해보지도 않은 자영업의 일상, 부모님은 눈 내리는 겨울철이면 가게 한켠에 마련된 쪽방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집의 살림과 남겨진 우리 삼 남매는 할머니의 손에 맡겨졌다. 


"배낭 메고 12시까지 가게로 와."

그날 역시 눈이 내리는 토요일이었을 것이다.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김장을 한다고 했다. 눈 때문에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김장한 김치를 집에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

"또?"

"그럼 어떻게 해? 오늘 한 거 가져가서 동생들하고 먹어야지. 조심히 와."


삼 남매의 장남으로써 종종 가게에서 만든 반찬과 먹거리들을 집에 나르는 역할을 했었는데, 내 키 반만 한 등산용 배낭을 메고 2호선 낙성대역에서 출발해 왕십리역에 내려 가게에 도착하면 꼬박 1시간이 걸렸다. 내 기억에 그 길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도, 완전히 철이 없지는 않았던지 오빠로서 형으로서 일을 내가 해야 한다는 의무감은 가졌던 것 같다. 엄마의 전화가 오면 투덜거리면서도 두말없이 왕십리역으로 향했으니까. 


잔뜩 흐린 하늘, 점점이 떨어지는 싸락눈을 맞으며 가게에 도착해 보니 한판 김장 잔치가 벌어졌다. 친화력이 남다르고 손까지 컸던 엄마는 이미 근처 상인들과 언니 동생을 맺었던 모양이다. 엄마를 포함해 대여섯 명의 아주머니들이 가게 앞 공터 절반을 채우고 와글와글 김장을 하고 있었다.


욕실 욕조 크기의 커다란 다라이에 수십 포기의 배추가 포개져 있고, 시뻘건 양념 속이 펼쳐진 가운데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분주히 속을 채워 넣는 모습들, 그 추운 날씨에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채 새빨개진 손으로 차가운 물을 연신 틀어 주변을 쓸고 닦는 30대의 젊은 엄마. 지금의 내 나이보다 열살은 어렸을 그날의 엄마는 활기 넘치고 추운 줄도 모르는 슈퍼우먼 같았다.


"어, 왔어? 배고프지. 일단 이것 좀 먹고 있어."

가게 안에는 미리 삶아 놓은 따끈한 수육과 막 담은 겉절이 김치,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하얀 쌀밥이 차려져 있었다. 배가 고팠던지라 게눈 감추듯 밥 한 그릇을 뚝딱한 나는 무심히 어떤 강력 사건의 현장 같은 김장판을 구경했다. 이렇게까지 김치를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엄마는 내가 먹은 그릇을 치우고는 배낭을 열어 비닐에 포장된 막 만든 김치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이건 배추김치고, 이건 깍두기, 이건 총각김치고. 가서 할머니한테 바로 드리고 배추김치는 밖에 좀 놔두시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바로 넣으시라고 해 알았지?"

"어휴. 뭐가 이렇게 무거워, 이걸 어떻게 들고 가라고..."

"뭐가 무거워 엄마 아빠 2~3일은 못 들어갈 텐데 이 정도는 미리 가져가야지."

"이거 전철에서 터지면 어떡해?"

"걱정 마 엄마가 이중삼중으로 꽁꽁 묶었으니까 절대 샐 리 없어."

잔뜩 볼멘 표정으로 배낭을 건네받았다. 두 팔이 쑤욱. 땅밑으로 꺼지는 듯했다. 어깨에 둘러매니 상체가 휘청했다. 


"무거워도 조금만 참아. 얼른 가. 늦지 않게. 눈길 조심히 가고...엄마는 마저 해야 되니까..."

엄마는 남은 김장일로 되돌아갔고 나는 터벅터벅 온 길을 되짚어 왕십리역으로 향했다. 무게도 무게지만 혹시 새지나 않을까? 냄새가 나지 않을까? 걱정 됐다.


왕십리역에서 출발한 외선 순환 2호선은 그날따라 사람이 많았다. 전철에 올라타자마자 사람들이 내 김치배낭을 주시하는 것 같았다. 자리가 나도 앉지 않고 문옆 구석에 서서 갔다. 사람들이 코를 막고 킁킁거리고 '어디서 무슨 냄새야?' '김치 냄새 아니냐?'라고 숙덕거리는 것 같았다. 전철은 지하를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낙성대역까지는 아직도 19 정거장이 남았다. 


냄새는 점점 더 심해지고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손가락 질을 하는 것 같았다. 뚝섬역에 도착해 문이 열렸고 나는 전철 밖으로 뛰어나왔다. 마치 숨을 참다 물밖으로 나온 잠수부 마냥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저 멀리 놓인 쓰레기통을 주시했다.


나는 쓰레기통 앞으로 가 배낭을 열고 그 안에 들어있던 김치 무더기를 모두 꺼내 그 안에 던져버렸다. 배낭이 텅 비고 정신을 차려보니 김치 봉다리 그 어디에도 터진 곳은 없고 냄새가 새어나오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두 눈을 질끈 감고 돌아섰다. 잠시 잠깐 속이 후련했다. 


전철이 두 세대가 더 지나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어떤 후회, 부끄러움, 걱정이 밀려왔지만 다시 몸을 돌려 쓰레기통으로 갈 수는 없었다. 나는 텅텅 비어 가벼워진 배낭보다 두 배는 더 무거워진 마음으로 전철에 올라 집으로 돌아왔다.


"김치가 다 터졌잖아. 전철에서... 냄새가 너무 나서 다 버릴 수 밖에 없었다고..."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했다. 아마도 울고 있었을 것이다. 전화기 너머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날 밤 눈길을 무릅쓰고 집에 돌아엄마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여전히 새빨갛고 퉁퉁 불은 손으로 새로 담은 김치를 쭉쭉 찢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수육을 썰어 할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내 앞에 차려주었다.


"많이 먹어. 김치 가져오느라 고생했어."


나는 그날 이후 김장철만 되면 어떤 저주에 빠진 듯 

싸락눈, 새빨갛고 퉁퉁 불어버린 엄마의 손, 2호선 뚝섬역, 그 쓰레기통이 생각난다. 


김장에 여념없는, 이제는 늙어버린 엄마를 물끄러미 지켜보며

도로 89년 중1이 된 나는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건다. 


"엄마...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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