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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릭스 leex Feb 06. 2024

퇴사 4년차, 삶이 쇼생크 같을 때

참지, 마요_ 내적욕구_희망찬 미래

<쇼생크 탈출>을 어제야 봤다. 퇴사 만 4년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종종 퇴사 후 일상을 수감생활에 비유하곤 했는데 공교로운 일이다.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 분)와 레드(모건 프리먼 분)일행이 건물 옥상 작업을 하다 찬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고 맥주도 한 캔 사다 마셨다. 사실 앤디의 탈옥보다 더 깊이 각인된 장면은 최고령 수감자이자 교도소 사서였던 브룩스(제임스 휘트모어 분)의 자살과 레드의 출옥 여정이었다.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낸 사람들, 브룩스는 가석방을 앞두고 오히려 인생이 끝난 것처럼 인질극 소동을 일으킨다. 우여곡절 끝에 사회에 나왔지만 적응할 수 있을까?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교도소로 되돌아갈 궁리를 하는 늙은 영혼. 앤디의 대사처럼 그에게 희망은 '부지런히 살든가' '부지런히 죽든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이 어디든 무슨 상관인가? 브룩스는 끝내 후자를 택했다. 평생에 걸쳐 서서히 길들여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주인공 앤디는 어떤가? 유능한 은행가였지만 아내와 정부를 죽였다는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억울해 하지만,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치고 억울하지 않은 사람 없다는 우스개에 묻힌다. 정말 앤디는 누명을 쓴 것일까?


살벌한 교도소에서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할 것 같던 그가 갖은 모욕과 고통을 견디며 쇼생크에서 보낸 세월은 자그마치 19년. 때마침 신입의 입에서 흘러나온 진짜 범인에 대한 단서를 포착하고 금융관련(더 정확히는 탈세)뒷일을 봐주던 교도소장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부패한 그로부터 돌아온 것은 유력 증인인 신입의 살해와 독방수감이라는 절망적 결말뿐.


사실 앤디는 19년 세월을 견디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쇼생크 수감 초기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전능의 레드와 친분을 맺고 구한 소형 곡괭이로 조금씩 파내온 탈출용 굴은 불굴의 희망을 상징한다.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차곡차곡 감내하며 매일밤 조금씩 벽을 뚫어 마침내 탈옥에 성공한 앤디의 세월은 희망이니 인내니 통속적인 단어 몇 개로 퉁치기엔 지나치게 무겁고 처절하다.


굴이 완성되고 모종의 결심을 한 앤디는 레드와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앤디는 밖에 나가면 멕시코의 지아타네호라는 곳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거긴 너무 멀고 너는 여기에 있어. 레드는 고개를 젓는다. 쇼생크에선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실력자지만 '밖에선 전화번호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라 말하는 레드의 표정은 밖에서의 삶이 희망이 아닌 절망, 두려움임을 암시한다. 그는 단 한 번의 범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무려 40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앤디는 인간적 유대감을 맺었던 레드에게도 의미심장한 약속으로 최후의 희망을 선사한다.


"레드, 당신이 출옥을 하게 되면 부탁이 있어요. 벅스톤 근처에 큰 목초밭이 있어요. 어딘지 알죠? 목초밭이 많은데 특별한 목초밭이에요. 북쪽 끝에 긴 돌담과 큰 떡갈나무가 있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 나올 법한 곳. 내 아내에게 청혼했던 곳이에요... 약속해 줘요 레드. 언젠가 출옥을 하게 되면 그곳을 찾아준다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치던 날 밤, 앤디는 마침내 쇼생크 탈출에 성공하고 레드 역시 수감 40년이 되던 해 가석방으로 풀려난다. 브룩스가 머물렀던 숙소에서 지내고 그가 일했던 곳에서 같은 일을 하며 일상을 보내지만, 누군가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화장실에서 오줌조차 눌 수 없 길들여진 몸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브룩스가 왜 그곳에서 목을 맬 수밖에 없었는지 온전히 이해하게 된 순간, 레드는 앤디의 약속을 떠올린다.


벅스톤의 돌담길을 찾아간 레드, 앤디가 말한 장소에서 돈과 앤디의 편지를 발견한다.  


[Dear 레드, 당신이 이걸 읽는다면 출옥했다는 뜻이고 여기까지 왔다면 좀 더 멀리 갈 수도 있겠죠. 그 마을 이름 기억하죠? 지후아타네호. 내 사업을 도와줄 좋은 친구가 필요해요. 체스판 준비하고 당신을 기다릴게요. 기억하세요 레드. 희망은 좋은 겁니다. 가장 좋은 걸지도 몰라요.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your friend 앤디]

 

생전 처음 느껴보는 진짜 희망에 가슴이 뛰는 레드. 생애 두 번째 범죄를 저지르기로 결심한다. 관리지역을 벗어나 지후아타네호로 가는 일. '늙은 도둑하나 없어진다고 누가 신경쓰지도 않겠지'


버스를 타고 희망을 향하는 레드의 표정은 쇼생크에서 절망을 이야기하던 그날과는 확연히 다르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사람. I hope~국경을 무사히 넘을 수 있기를, I hope 내 친구를 만나 악수를 할 수 있기를, I hope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기를, I hope 내 친구를 만나 악수를 할 수 있기를…"


하필 레드를 연기한 배우의 이름이 프리먼인 것은 그저 우연일까? 그 프리먼의 내레이션 속에서 프리먼이 또 등장하는 장면 역시 우연일까? 프리먼의 내레이션에 4년간의 수감생활 동안 숨죽였던 내 가슴도 덩달아 뛴다.


푸른 멕시코만, 앤디와 레드가 마침내 조우하는 영화의 말미에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한다. 고작 4년의 시간 동안 나 역시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자유를 꿈꾸며 회사를 나왔다지만 정작 고립에서 안도감을 얻고 도태되는 것은 아닐까? 관계의 골치아픔, 경쟁의 치열함, 패배의 쓴맛, 은근한 모욕을 견딜 수 없어 도망친 그곳에 스스로를 수감한 후 내심 석방될까 두려워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4년전 그날의 각오와 욕망을 새삼 다잡는다.


벌써 4년이야 그게 되겠어? 다 늦은 나이에 무슨 희망이고 꿈이야? 먹고 살 앞가림부터 해! 따위 모든 염려를 가장한 절망의 간섭과 오지랖을 기꺼이 거부한다. 참지 않기로 한다. 앤디처럼 누명을 쓰고 수감된 것도 아니므로 탈옥을 감행할 이유도 없다. 형량이 얼마인지 좀처럼 알 수 없지만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읽고 쓰고 배우는데 쓴다.


I hope 언젠가 앞가림은 있게 되기를,

I hope 내년 이맘때이면 1000이라는 구체적 수치로 출옥할 수 있기를,

I hope 마침내 두 팔을 펼치고 하늘을 향해 삶의 자유에 도달했노라 선언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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