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수필
가끔은 서글프리만치 그립다. 나의 태초가 그해 겨울의 도입부에서 시작되어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늘 서늘하고 시린 날을 좋아했다. 겨울을 사랑하고 이따금 그리워한다. 터놓고 말하자면, 내가 사랑하는 존재는 사람이든, 사람이 아니든 몇 되지 않는다. 가족, 애인, 친구, 글, 커피, 칵테일. 그리고 겨울이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의 나열 맨 끝자리에 있다. 내게 겨울은 꾸준히 좋아할 수 있고, 규칙적으로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다.
커다란 이유는 없었다. 사랑에 특별한 이유를 찾아야만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되기 어렵듯, 내가 겨울을 사랑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 가 없다. 그저 겨울과 겨울이 품은 존재들이 마음에 들었다. 겨울만이 품을 수 있는 옅은 색감의 햇볕을 좋아하고, 저녁이 되기도 전에 어둑해지는 하늘이 좋다. 입김을 불면 피어오르는 연기에 여전히 미소를 짓게 된다.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겨울이면 늘 산책을 했다. 날씨가 얼음을 녹이고도 남을 만큼 추워도, 열 손가락이 모두 시릴 만큼 바람이 불어도, 계절 특유의 우울감이 짙어져도. 그런데도 나는 늘 하루 두 시간씩, 매일 2시가 되면 나갈 채비를 했다. 정해진 코스를 따라, 달라지듯 달라지지 않는 나의 동네를 관찰하며, 귀에는 에어팟을 꼽고서 쉴 틈 없이 완보. 겨울이 되면 시작하게 되는 나의 취미이자 일상이다. 역시나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그저 날이 좋아서. 겨울은 여름과 달리. 대체로 맑은 날이 이어지므로 되도록 자주 걸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모아둔 겨울의 공기를 품고서 다시 돌아올 새날의 겨울을 그리워한다.
12월에 가장 기뻐했고, 2월에는 슬퍼했다. 12월은 남겨둔 추운 날이 한아름이기에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앞날의 맑은 하늘들을 보장받은 기분. 애쓰지 않아도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 가끔은 벅차오를 만큼 즐거웠다. 반대로 2월은 남겨둔 겨울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슬플 수밖에 없었다. 과장 조금 보태어 비유하자면, 종말을 앞둔 이단의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달이 한 번 차고 기우는 동안 겨울은 힘을 잃어갔다. 다시 그리워해야만 하는 미래를 직감케 되었다.
겨울을 애도하며 봄과 여름에는 지난겨울마다 들었던 노래를 찾아 모은다. 그것들을 재생해 둔 채로 지난겨울 동안 찍어둔 사진을 구경한다. 미소가 지어지는 날도, 그립지 않은 날도 많다. 다만, 겨울만큼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내게 겨울은 꾸준히 좋아할 수 있고, 규칙적으로 그리워할 수 있는 존재. 달궈진 아스팔트 위에서 눈발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