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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들국화 Sep 12. 2022

오늘도 수영장에 간다

운동신경 제로, 저질 체력 끝판왕의 운동 정착기

     

내가 수영을 배우게 될 줄 몰랐다. 그것도 현재 시점에서 2년 하고도 9개월째 꾸준히 하게 될 줄은. 

나는 물을 무서워해서 공중목욕탕을 제외하면, 그곳이 바다든, 계곡이든, 워터파크든, 물에 들어가는 걸 꺼렸다. 그뿐 아니다. 운동신경이라는 것과 나라는 사람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내내 체육 시간이 싫은 아이였다. 100 미터 달리기 기록은 20초를 간단히 넘겼으며, 고입과 대입 때 체력장 급수는 5급이었다. (체력장 급수는 무려 특급부터 5급까지 있었는데. ) 

게다가 나라는 인간은 경쟁에 매우 취약해서 혼자서는 잘하던 일도 경쟁이라는 구도가 갖춰지면 급격하게 자신감이 하락하는 유형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특히 두 명 이상이 경기를 하게 되어 있는 모든 종목의 운동에서 작아지는 사람이었다. 체육 시간에 피구라도 하게 되면 날아오는 공이 가공할 무기라도 되는 듯 보였다. 공을 말아 쥐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적진을 탐색하는 상대편 아이의 눈을 피해 구석을 찾아다니며 조준의 목표물이 되지 않게 노력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어서도 한동안, 실내외를 막론하고 몸을 움직이는 모든 종목의 운동이란 것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바쁜 시간을 쪼개 헬스장에 갔다. 설렁설렁 운동기구들을 옮겨 다니는 것도 괜찮았고, 사람들이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하는 러닝머신도 할 만했다. 무엇보다 경쟁 종목도, 기록 경기도 아니니까. 옆에서 운동하는 사람이 속도를 올리다가 바닥 면을 경사지게 해서 탕탕 뛰든 말든, 나는 내 몸에 맞는 속도로 걸으면 되니까. 그러던 중 헬스장 GX 수업으로 우연히 접하게 된 요가는 처음부터 몸에 딱 붙었다. 내 몸 어디에 숨어 있었던가, 요가의 호흡법은 저절로 내 것이 되었다. 요가야말로 타인과 경쟁하고 비교하는 운동이 아니라 자신의 몸만 바라보고 집중하게 하는 수련이니까 나에게 맞춤한 운동이었다. 그렇게 요가와 친해지게 되었다. 낮 동안 직장에서 유독 스트레스가 많았던 날에는 요가 아사나를 할 때 길게 뱉는 날숨에 실려 몸 안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걸 선명하게 느꼈다. 

그런데 50대를 넘기면서부터는 어떤 동작들이 관절에 무리를 가져왔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찾아온 육체의 한계였다. 어깨 통증 때문에 한쪽 팔을 드는 일이 불가능할 때도 있었고, 허리를 삐끗한 적도 있었다. 근력 있고 유연성이 좋은 젊은 회원들에게 맞춘 동작을 무리해서 따라 하다 보니 예전처럼 스트레스가 풀리기는커녕 또 다른 스트레스가 쌓였다. 퇴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허리에 날카로운 통증이 찾아왔다. 돌아누울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밤을 꼬박 새우고 가까운 병원에 갔더니 퇴행성 관절염이라고 했다. 노화의 과정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이후 몸을 앞으로 굽히는 전굴 자세를 할 때 조심스러워졌고, 실제로 하고 나면 허리 통증이 느껴졌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퇴직을 앞둔 마지막 겨울방학 첫날, 나는 딸을 따라서 내가 운동하는 시설의 수영장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어릴 때 배영까지 강습을 받은 적이 있고 직전 몇 달간 다른 곳에서 강습을 받다가 내가 운동하는 시설에 등록한 딸은 중급 레인으로, 수영이 처음인 나는 초급 레인으로 들어갔다. 나의 첫 수영 선생님은 앳된 얼굴의 여자 선생님이었는데, 흔히 말하는 ‘선출(선수 출신)’은 아니었지만 수영이 좋아서 자격증까지 딴, 열정 가득한 선생님이었다. 수영장 운영팀의 열악한 대우 탓에 그 이후로 수많은 강사를 거쳤다. 그야말로 인간 유형에 대한 통찰에까지 이르게 한 강사 편력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발을 들여놓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둔한 운동신경에 더해 저질 체력이라면 둘째 가면 서러운 나는 거의 매일 출근하듯 수영장에 입장하고 있다. 50대 후반에 시작한 수영은 결코 만만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처음에는 주기적으로 몸살을 앓았다. 강습 때 온몸에 잔뜩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유형과 배영 발차기는 지금도 여전히 힘들고 속도도 느리다.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수영은 매력적인 운동이다.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수영은 연습한 만큼의 보상을 준다는 면에서 정직하다. 그 점이 수영의 가장 큰 매력이다. 세상일이 어디 그렇게 정직한 결과와 보상을 가져다주던가 말이다. 

나처럼 운동신경이 바닥인 사람도 꾸준히만 하면 실력이 는다. 당연한 얘기 아니냐고 하겠지만 나는 바로 그 점이 황홀할 정도로 좋았다. 연습에 할애한 시간만큼 성취감이 선물처럼 주어진다는 점이. 자유 수영을 할 때, 안 되던 동작이 갑자기 되면서 스스로 깨달음이 올 때의 환희라니. 강사의 동작 교정 한 번으로 한동안 삐걱거리던 영법이 수월하게 쭉쭉 나갈 때의 경이로움은 또 어떻고. 물론 그런 보상은 아주 드물게 주어진다. 모든 일에 권태기가 찾아오듯이 수영에도 수태기라는 것이 있다. 나는 안 되나 보다, 하고 한껏 기가 죽을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시기를 참고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반 계단쯤 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수영은 계단식으로 발전한다는 말이 있다. 계단은 경사도가 가파르지 않다. 계단식 논에 가깝다. 한동안 평평한 땅이 지루하게 이어지다가, 그만 내려갈까 싶을 때 조금 높은 턱이 나타나서 힘을 내어 발을 올려놓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1년 전과 비교해 제법 높은 곳에 올라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수영은 다른 지상 운동에 비해 부상 위험이 낮다. 욕심을 내서 무리한 동작을 하려고만 하지 않으면 안전하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이다. 물에서는 걷기만 해도 운동이 된다고 한다. 심폐지구력을 늘리는 데도 좋을 뿐 아니라, 자유형, 배영의 경우 전신을 쭉쭉 펴면서 하는 동작이라 자세 교정에도 좋다. 눈에 띄게 근육이 생기지는 않아도(근력운동은 따로 해야 한다. 수영을 하는 것만으로 체중이 줄거나 뱃살이 들어가거나 눈에 띄게 근육이 생기지는 않는다. 내 경험상 안타깝게도 그렇다.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 한해서임을 밝힌다. ) 전신운동이라 팔, 다리와 등 근육, 코어 근육 등을 사용해야 하니 적어도 근육이 퇴화하는 건 막을 수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수력이 오래된 베테랑 수영인이 수영을 전도하는 것 같은데, 나같이 운동신경도 없고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한번 시작해서 꾸준히 하기만 하면 노년까지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걸 기꺼이 전파하고 싶을 따름이다.


수영을 시작한 시점이 하필 코로나와 겹치면서 수영장 문을 닫은 시기도 있었고, 문을 열었을 때도 조심스럽기는 했다. 체력이 달려서 힘겨울 때도 많았다. 그래도 몸이 아프지만 않으면 꾸역꾸역 출석했다. 그렇게 2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수영을 계속할 것 같다는 예감을 뿌듯하게 품는다.



 (덧붙여...) 입방정이었던 건지 이 글을 쓰고 얼마 안 되어 오랜만에 감기몸살이 찾아왔다. 요 근래 나답지 않게 꽤 긴 기간 결석을 하지 않았는데, 무리를 한 건지 몸이 내 의지를 따라오지 못했다. 몸이 주인에게 쉬어가며 하라고, 그 나이에 수영 선수라도 될 참이냐고 주의를 준다. 검사 결과 다행히 코로나는 아니다. 코로나가 오기 전, 환절기만 되면 거르지 않고 나를 찾던 감기다. 나는 자체적으로 방학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맛보는 휴식이 달콤하다. 서두를 건 없다. 아프면 쉬어가면서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된다. 수영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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