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몇 주 몇 달을 우울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써왔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우울이 나를 덮쳐오는 날. 그럴 때면 힘이 빠진다. 아무리 애써도 나는 결국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니까. 인터넷에서 우울증으로 자살한 누군가의 유서를 보았었다. 그곳에도 이와 비슷한 글이 적혀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다시 제자리라는... 누군가의 마지막 글에서 나만의 감정이 아니란 걸 알고 위안을 받았다면 너무 이기적인 걸까.
이제는 받아들였다고 생각하곤 한다. 내게 우울과 불안은 평생 싸워나가야 할 상대라고, 그렇게 인정하고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날은 그런 사실이 힘겨울 때가 있다. 지긋지긋할 때가 있다. 약을 꾸준히 먹으면 보통은 괜찮은 상태가 지속되긴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 약을 먹어야 하나 하고 지치는 날이 있다.
좋은 날이 지속되면 곧 약을 빼먹는 날들이 생기면서 무언가 다시 삐끗거리기 시작한다. 안 좋은 상태로 빠져들어갈 때는 언제나 비슷한 패턴이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주변 정리가 잘 안 되기 시작하고, 머리가 멍해지고, 애써 힘내고 무언갈 해내도 힘이 빠지고 기분이 쳐진다. 그런 게 며칠, 몇 주간 지속된다. 이렇게 십 년이 넘게 살아왔다. 약간의 전조증상이 나타나면 이제는 바로 자각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약을 다시 꾸준히 먹고, 최대한 몸을 움직이려고 조금 더 힘을 내보고, 엉망이 된 방을 말끔히 청소하고 벗어나려고 애써본다. 하지만 이렇게도 안 되는 정말 일어날 수 없는 날이 있다.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세상과 단절되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런 날이 주말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게 아니라면 급하게 휴가를 쓰곤 한다. 우울이라는 상태에 사로잡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기에는 나는 어른이 되었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있고, 무작정 나 혼자만의 세상으로 빠져버릴 수는 없기에 이제는 스스로 컨트롤을 위해 전보다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약이 떨어졌는데 병원 진료 예약을 못했다. 가능한 다음 예약이 1월이다. 약 없이 한 달을 버틸 용기가 없어 급하게 주치의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직 답이 없어 불안하다.
방에 지저분해서 급하게 방을 다 청소하고 조금이라도 개운한 기분으로 주말을 맞아본다. 날이 밝으면 밖으로 나가야겠다. 나가서 움직이고 햇볕 아래 있으며 에너지를 얻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