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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Jul 14. 2024

도망가고 싶지만 그럴 순 없어

한 이주일을 다시 힘내며 버텨왔다. 잘 안되던 실험도 다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애를 썼다. 실험에 집중하며 결과를 내기 위해 애써보았다. 이곳의 시스템은 많은 기기가 담당 오퍼레이터가 있어서 서비스 의뢰를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속도를 기대하면 안 된다. 정말 느리다. 결과 하나 받는데 어쩔 때는 2주를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분자를 합성한 후, 일주일 넘게 힘들여 정제를 한 후 서비스측정을 의뢰했다. 일주일간 다른 일을 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이 결과만 잘 나오면 모든 게 끝이었다. 마치 주중에 로또를 사고 1등에 당첨되기를 기다리며 일주일을 버티듯이, 이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이게 끝나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하면서 혼자만의 미래에 대한 상상들을 했었다. 금요일 오후, 결과를 받았다. 메일이 온 것을 확인하고 클릭하는데 두근거렸다. 첨부된 파일을 연다. 결과를 보고는 낙담한다. 거의 반년동안 시도했던 것이 더 이상 안 되는 듯하다. 이제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내가 더 애썼어야 했나 하는 마음과 함께 그동안 대체 뭐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해낸 게 단 하나도 없다. 다른 분자의 합성도, 분자가 젤이 돼버리면서 정제과정에서 계속 엉망이 된다. 이미 네 번째 합성이다. 나 이전에 있던 사람들은 다 해내던 것을 나 혼자 못하니 나의 부족함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어떻게라도 다른 정제 방법을 찾아보려고 금요일 저녁 모두가 퇴근했음에도 연구실에 남아서 이것저것을 시도해 본다.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것들을 테스트해보는데 모두 실패다. 힘이 빠진다. 이곳에 일 년 동안 있으면서 해낸 게 없다는 사실에 나의 부족함을 책망하며 앞으로 어찌해야 하나 막막해진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어진다. 심호흡을 한다. 이날 어찌 더 한다고 나아질 게 없으니 주말 동안 마음을 추슬러보자고 다짐해 보며 퇴근한다.


퇴근길에 바람이 매섭다. 가벼웠다면 날아가버릴 것 같은 강풍이다. 바람에 맞서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고되다. 하루가 고되다. 주변은 어둡고 찬 바람을 거슬러 걸어가니 힘겨울 뿐이다. 차갑고 어두운 게 나의 미래를 나타내는 것만 같다.


집에 도착해서는 침대에 눕는다. 가슴이 답답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매섭게 몰아친다. 이렇게 엉망으로 뭐 하나 해내지 못하고는 보스에게 추천서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할 거다. 그렇다는 건 앞으로 다른 어딘가를 가기에 난 망했다는 거다. 박사 학위를 받으면 뭐 하나. 뭐 하나 제대로 실적을 내지 못했으니 나의 앞길은 그저 갈 곳 없는 절벽일 뿐이다. 뭘 해야 할까 하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운다. 불안감에 갑자기 추운 기분이 들어 몸을 웅크리고는 이불속에 숨어버린다. 이대로 잠들고 세상과 잠시 멀어지고 싶다.


토요일에 일어난다. 불안감에 속이 안 좋다. 긴장감 때문인지 배가 아파 화장실도 간다. 한글학교에 가야 하지만 갈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다. 아파서 갈 수 없다고 연락한다. 나는 그나마 보조교사기 때문에 없어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단은 내 상태를 살피는 게 중요하다. 계속해서 내 앞날에 대한 불안, 초조함이 몰아치면서 다 관두고 싶다. 해야 될 것들이 이것저것 계획되어 있다. 이때쯤에는 모든 합성이 끝날 거라 생각해서 잡아뒀던 계획들이었다. 하지만 합성은 전혀 마무리되질 않았고, 다른 할 일만 많아져서 할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다른 일만 벌여두는 못난이가 되어버렸다.


바로 다음 금요일에 스트라스부르 연구원 커뮤니티에서 한국의 날 행사를 한다. 나는 요리 담당이다. 30인분의 요리로 4가지를 준비할 거다. 그와 관련해서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지금 이걸 할 때가 아닌 것 같지만, 내가 먼저 제안했던 행사였다. 모두 다 때려치우고 세상에서 숨어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힘들다고 도망치기에 관련된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민폐란 걸 안다.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로 어떻게든 답장을 해가며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뭔지도 기억 못 할 유튜브들을 그냥 계속 본다. 그러다 유튜브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잠에 들고, 그러다 다시 깨어나고를 반복한다. 뭔가를 먹어야 하지만 귀찮아서 요리도 싫다. 누룽지를 끓여 김치와 배를 채운다. 그러곤 다시 눕는다. 엉망진창이다. 머리가 떡지기 시작한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짜증 날 뿐이다.


다다음주에는 바로 장애인올림픽 행사에 통역으로 봉사를 한다. 3개월 전에 정해진 일정이었다. 일찌감치 휴가를 써놨어야 했는데, 다른 일정이 있다고 아직까지 신청을 안 했다. 휴가야 쓰면 모두 승인 나니 문제는 아니지만, 지금 내가 이걸 할 때가 아닌데 하는 마음이 들뿐이다. 하지만 취소할 수는 없다. 이미 내 담당 선수도 배정이 되었고, 나라를 대표해서 국제대회에 참여하는 선수에게 누를 끼칠 수는 없다. 부족한 나로 인해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 계획된 것들을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주말 내내, 모두 그만두고 싶다. 세상이 멈췄으면 좋겠다. 그냥 죽어버리면 편할 텐데-하는 안 좋은 생각들이 계속해서 내 머릿속을 오고 갔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6개월 전 수술해서 잘 마무리됐던 부비동에 다시 염증이 생긴 것 같다. 상태가 좋지 않다. 잠을 자기가 불편하다. 4시부터 깨서는 잠도 못 자고 답답함과 불안감에 그저 눈을 뜨고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렸다. 깨어난 지 한참이 되었음에도 일어나면 다시 연구실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일어날 맘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대로 정말로 도망치면, 내가 후회할 것을 안다. 예전처럼 잘못된 선택을 하고 이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다. 나는 더 이상 그 정도로 젊지 않다. 힘들면 쉬어갈 수 있지만, 아무 때나 쉴 수는 없다. 지금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나는 힘들다. 내 정신은 지금 피폐하다. 하지만 나는 어떤 힘이라도 짜내서 버텨야 한다. 지금은 멈출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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