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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확위 Oct 18. 2024

멈추지 않는 시간, 흘러가는 내 삶, 모든 인연

학회를 위해 지방에 왔다. 지금까지 참석한 학회 중 어쩌면 가장 쓸쓸하고 외로운 학회였다. 연구실 내의 다른 학생들도 학회에 온 것은 알았지만, 그들과는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기에 딱히 함께하지 않았다. (그들도 나도 서로 원치 않는 거다.) 숙소부터 모든 활동을 홀로 한다. 평소의 나는 혼져여도 괜찮은 사람이다. 하지만 약을 끊은 후, 다시 느껴지는 우울과 불안은 조금씩 나를 사로잡기 시작하며 나의 모든 게 싫어지는 지경에 또다시 도달했다. 


요즘 나는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와 비슷한 연구가 별로 없었기에 딱히 흥미로운 발표를 찾지 못했지만 꾸역꾸역 그나마 들을만한 것들을 골라 발표장들을 찾아다녔다. 여러 교수님들의 열정적인 발표를 보면서, 그들의 열정 앞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포스터 발표에서도 반짝이는 눈을 빛내며 열심히 자신의 연구를 설명하는 한 학생을 보면서도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무엇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며 나 자신은 대체 무엇을 위해 무얼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에 자기혐오에 빠진다. 


나는 기분이 괜찮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차이가 상당하다. 가장 큰 차이는 사교성이랄까 사람과의 대화에서의 에너지이다. 프랑스에서 새롭게 알게 되었던 여러 지인들이 처음 보았을 때와 두 번째 보았을 때의 다른 모습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보통, 기분이 멀쩡하 닫고 느껴지는 날의 나는 큰 무리 없이 사람들과 소통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의 나는 거의 세상과 벽을 세우고 있는 듯, 주변의 자극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에 대한 흥미가 극도로 떨어지고, 어떤 대화에서 소통이 쉽지 않아 진다.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생긴다. 간단한 대화도 쉽지 않고 사람을 만나는 모든 것이 부담스러워지기도 한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들이다. 


오늘 아침 호텔 숙소에서 홀로 눈을 뜨며 세상에 나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요즘 잦은 두통이 계속되고 있다. 전날도 저녁즈음부터 시작된  두통은 잠들기 전까지 계속되었기에 힘들게 잠에 들었었다. 눈을 뜨고 일어나 두통은 사라졌지만, 하루가 다시 시작됨이 반갑지 않았다. 내 집, 내 방이었다면 나가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계속해서 파묻히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체크아웃하고 떠나야 하는 호텔이었기에 힘겹게 몸을 일으켜 준비를 마쳤다. 호텔을 떠나 마지막 날인 학회장을 다시 찾았다. 오늘도 들을 발표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억지로라도 미리 체크해 둔 일정에 따라 발표장들을 찾아간다. 재미없는 발표들을 듣고는 홀로 점심식를 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억지로 배를 채우니 체했는지 식은땀이 흐르기도 했다. 몸이 좋지 않아 더더욱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저녁 기차표를 바꿀 수조차 없게, 모든 기차는 매진이었다. 오늘이 금요일이란 것이 원망스러웠다. 


살아가는 날들이 다시 버겁고, 지치고, 힘들다. 그럼에도 계속 눈을 뜨고 일어나서 세상으로 나온다. 혼자만의 세계에 매몰되기 시작하면 그저 더욱 어두운 구렁텅이로 빠지고 만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내 생각과는 다르게 억지로라도 세상으로 꾸역꾸역 나와 하루를 채워나간다. 요즘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삶이 잘 풀려버려서 이제는 가족들도 나에게 어떤 기대를 갖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다들 나의 삶을 걱정하곤 했다. 병원에서도 제대로 된 사회생활은 어려울 거라 했었는데, 나는 홀로 해외 생활도 몇 년을 하며 돌아오니 그들은 내가 잘 살아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어릴 적부터 가지고 있는 꿈 중 하나는, 모든 책임감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며 그만두고 싶을 때 모든 것을 털어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나의 꿈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점점 그 꿈에서 멀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계속 흘러가는 시간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 모든 사람과의 인연이 유난히 숨 막히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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