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간 생각깊은 하얀 돼지를 응원하며
아침 약수터 가는 길에 만나는 동물들, 사람들이 있습니다.
약수터는 아파트 뒤편 산자락을 올라 1시간여 거리에 있는데
오르고 내려오는 길이 급경사라 쉽지가 않아, 아침마다 일어나며 갈등이지요.
'올라가야 하나? 비는 안오나? 집에서 쉴까?' 등
그래도 아침식사전에 힘들지만 다녀오면
흠뻑 흘리는 땀과 뻐근한 허벅지 만큼 상큼한 기분과 '오늘도 해냈구나'하는 뿌듯함에 즐겁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약숫물을 길어다 녹차물을 다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면 마음의 평온함이 온몸에 가득하지요.
새벽길을 나서며 반겨주는 첫번째 만남은
아파트 주변에 은거중인 고양이들입니다.
조용히 다가가 장난도 치며 고양이 순발력 테스트를 하지요.
오늘은
얼룩무늬 고양이가 주차장 아스팔트에 엎드려 날아온 비둘기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잡으려는 고양이, 어림없다는 비둘기, 팽팽한 긴장감이 내가 나타남으로 해서 싱겁게 끝나버리지요.
잠이 덜깬 채로 산길을 오르는 것은 무척 고역입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후들거리며 땀이 흐르니 냄새 맡고 달려드는 모기며 날파리들
그래도 스틱에 의지해 굳굳하게 오르고 또 오르지요.
저 동녁으로 붉은 해가 떠오르고 마침 시원한 바람이 불어 땀을 식혀줍니다.
한참을 오르다 보면
그 시간에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리 짧은 개가 주인과 함께 매일 오르는 산책객, 맨발로 숲길을 오가는 사람들,
약숫물을 길어가는 사람들, 약수터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
고개를 높이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면 짙푸른 초록이 서서히 단풍 물들어 가는 모습도 보이지요.
다리 짧은 개는 배려심이 남달라 주인을 앞서 저만치 가다가도 뒤를 돌아서
다리 불편한 주인이 잘 따라오는지 수시로 돌아 보는 모습을 보입니다.
참으로 기특한 개이지요.
그래서 그 시각 그 개를 만나는 사람들은 정겹게 개에게 인사를 건넵니다.
"오늘도 수고하는구나!"
약수터는 여름에는 물이 많이 나오고 봄 가을에는 적게 나오는데 '취음 불가' '취음 가능' 수시로 바뀌어서
불문하고 시원한 물을 벌컥벌컥 다섯 모금을 마시면 마음이 탁트이며 상쾌함이 몰려오지요.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나무들이 수놓은 그림을 감상합니다.
작은 물통에 약수물을 받아 뒤로 메고 스틱을 짚고 운동기구로 다가가 철봉에 매달려 한참을 버텨보지요.
턱걸이는 3회
이제 돌아가는 길입니다.
오고가는 길 오르막이 두차례씩 있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바람에 나부끼는 잎사귀 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걷는 숲길은 언제나 평화롭고 상쾌하지요.
아파트쪽으로 내리막 길에 만나는 할아버지 한분이 계십니다.
저는 내려가고 할아버지는 깊은 숨을 몰아쉬시며 느릿느릿 올라오시지요.
"안녕하세요!"
"일찍 다녀오시네요!"
아마도 아침식사를 하시고 점심을 챙겨메시고 오르시는 80중반의 할아버지
참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할머니는 계시는지?
가족들과 함께 계시는지?
저희 아파트에 사시는데 아는 것이 없습니다.
2시간여만에 약수터에 다녀오니 아침준비하는 집사람의 손길이 분주합니다.
용기에 녹차 찻잎을 넣고 약숫물을 달여 녹차를 우려내어 집사람 한잔, 나는 머그잔,
따뜻한 차 한잔이 평화를 가져다주지요.
어느 초가을 이른 아침에
돼지 농장으로 커다란 트럭이 들어왔습니다.
오늘따라 농장주인은 돼지들에게 사료를 넉넉하게 주었고
물호스로 시원하게 샤워를 시켜주는 등, 돼지들을 기쁘게 하였지요.
그 때까지도 많은 돼지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먹는 것에만 열심이었지만
'우리의 생각깊은 돼지'는 '일주일에 한 번 저런 커다란 차가 와서 다 자란 동료들을 많이 실어가곤 하지'라며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했습니다.
돼지우리 철문이 열리고 농장주인은 준비된 트럭 우리로 돼지들을 몰아갔고
앞의 돼지가 가는데로 뒤따라서 모든 돼지들이 꿀꿀거리며 트럭에 올라가게 되었지요.
"그래~ 그동안 애썼다. 잘 가거라!" 주인의 마지막 인사말을 들으며 트럭의 돼지들은 모르는 곳으로 실려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생각깊은 돼지는 '이제 우리의 삶이 마무리 되는 곳으로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더 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왠지 모를 눈물이 흘러내렸지요.
커다란 길에 접어들자 많은 차들이 지나치며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도 있고 외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깊은 돼지는 '저 사람들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겠구나!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다른 돼지들에게 이곳을 벗어날 방도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어느 돼지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잠시후 기적이 일어났는데
돼지를 실은 트럭 뒤로 또 다른 트럭이 빠르게 접근하더니 트럭 뒤를 살짝 들이 받게 되었고
이로 인해 순간적으로 문이 열리면서 탈출할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지요.
다른 돼지들에게 도망가자고 이야기했지만 어느 돼지도 호응하지 않고 먹을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깊은 돼지는 갓길로 트럭이 멈추고 운전기사가 다가오는 사이
뒤쪽으로 돼지들 틈을 비집고 지나가서 트럭 난간에 이르러 하늘을 우러러 보고 크게 호흡을 하고는
아스팔트 위로 뛰어 내렸지요.
너무 높은 곳에서 몸통이 먼저 떨어져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트럭 운전기사가 달려오며 우리의 생각깊은 돼지를 잡으려 했지만
돼지가 차도로 들어가며 차량들이 뒤어엉키는 바람에 혼란이 발생하는 틈을 이용하여
우리 생각깊은 돼지는 찻길을 벗어나 개울쪽 뚝방쪽으로 달아났던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후 돼지를 실은 트럭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출발하는 모습이 보였지요.
우리의 생각깊은 돼지는 그 많은 돼지들의 마지막 길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고 개울을 건너고 들녁을 지나 숲으로 갔습니다.
그 이후로는
참으로 적응하기 힘든 시간이었지요.
먹거리를 직접 찾아야 했고 잠자리도 직접 마련해야 했기에 후회가 되기도 했지만
이길이 옳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습니다.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검은 멧돼지들이 텃세를 부리며 따돌림하는 것이었지요.
'뭐야? 저 하얀 돼지는? 비둥비둥 살만 쪄가지고?'
나무 둥치에 웅크리고 밤을 지새며 우리의 생각깊은 돼지는
'남은 삶을 내 의지대로 보람차게 살아보자!'라며 깊은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