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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Jan 27. 2021

고양이의 주검을 들고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갑자기 떠오른 장면 하나를 이야기로 만든 초초초 짧은 소설입니다.

소설 공부한 적 없어서 마음대로 썼어요:)






“안락사시키는 게 나을 겁니다.”


애써 건조하게 말하려는 수의사 앞에서 더는 이유를 묻고 싶지 않았다. 피곤했다. 그녀의 눈은 이미 젖어 있었다. 몇 달 동안 자기 고양이처럼 로운이를 돌봤던 그녀가 안락사를 권하고 있다. 유독 병원을 싫어해 수의사의 손에 매번 날카로운 발톱 자국을 새겨주던 로운이. 피가 나도 미소를 잃지 않던 그녀가 울먹인다. 로운이는 반듯하게 누워 그녀의 손길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다. 나는 더는 존재를 과시할 힘이 없는 로운이를 감싸 안아 조심스럽게 이동장 안에 넣었다. 수의사는 그런 나를 향해 한 번 더 꾹꾹 내리누르듯 말했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로운이에겐 안락사가 더 나을 겁니다.”

나는 이렇다 저렇다 대답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웅얼거리며 진료실을 빠져나왔다. 간호사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뒤통수가 간지럽다. 아마 그들을 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 거란 생각이 든다.     


집에 와서 로운이가 좋아하는 간식 캔을 으깨 주사기로 조금씩 입에 흘려 넣어주었지만, 이내 다 게워낸다. 게워내는 게 힘들어 보여 밥을 먹이는 것도 관두기로 했다. 로운이가 토하는 순간 내 배에선 진동이 왔다. 토사물을 대충 치우고 선반에서 컵라면을 꺼내 물을 끓인다. 로운이는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눈을 감고 있다. 잘 땐 언제나 코를 고는데 지금은 조용하다. 배만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바쁘게 반복하고 있다. 빠른 속도에도 불구하고 로운이 주변의 시간은 멈춘 것 같다. 배 이외에는 어디에도 삶이 느껴지지 않는다.     


채 익지도 않은 라면을 국물 째 삼키고 나도 로운이 곁에 누었다. 모로 누운 로운이와 똑같은 자세로 손이 무릎에 닿게 몸을 구부려 본다. 나른해진다. 나는 로운이를 바라봤다. 로운이도 가늘게 눈을 뜨고 나를 잠깐 바라보다 이내 감는다. 샛노란 달 같이 호동그랗던 눈이 그믐달보다 더 가늘다.       


스산한 기운에 몸을 부르르 떨다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잠든 것이다. 밖이 어느새 캄캄해졌다. 3일 동안 뜬 눈으로 지냈는데 오늘 같은 날 잠이 들다니. 로운이가 걱정되었지만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 않는다. 눈을 비비고 로운이를 더듬어 보려는데 순간 로운이와 눈이 마주쳤다. 샛노란 보름달 같은 로운이의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에 생기가 넘쳤다. 반가운 마음에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가위에 눌린 것처럼 웅크린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고개도 돌릴 수 없었다. 나는 로운이를, 로운이는 나를 응시할 수밖에 없도록 고정나사가 박힌 것처럼. 그렇게 우리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로운이의 눈에서 따뜻한 빛이 새어 나와 내 눈으로 천천히 흘러들어왔다. 영사기의 빛이 스크린을 비추듯이 로운이의 눈에서 나온 빛이 내 각막을 비추었다. 순간 나의 시점이 바뀐다. 로운이의 시점이다. 마치 흐릿한 영화 같다. 색과 형태를 명확히 알아 볼 수는 없었지만, 로운이가 보는 세상이란 걸 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건 로운이가 나와 함께 한 짧은 생의 기억이었다.     


로운이는 버려졌다. 버려지기 전엔 엘리라는 고귀한 이름의 페르시안 고양이였다. 친구는 인스타그램에 항상 엘리의 사진을 올렸다. 음식과 함께, 가방과 함께, 자신과 함께, 남자 친구와 함께. 언제나 사진의 한 귀퉁이, 때론 정면에 엘리가 있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였지만, 나는 항상 그 애 계정을 엿봤다. 나와는 달랐던 친구의 삶이 부러워 훔쳐본 게 아니다. 나는 그 애의 가방도 여행도 사업가 남자 친구도 부럽지 않았다. 단지 그 화려한 사진 한구석을 차지한 엘리의 옆모습이 신경 쓰였다. 한 번도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는 엘리. 언제나 웅크려 앉아있던 엘리의 모습에서 학창 시절 쓰레기통 옆에 처박혀 있던 나를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그때 그 친구는 나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을지도 모르지.    

 

친구는 결혼했고, 임신을 했다. 만삭 사진에까지 엘리를 등장시킬 정도로 고양이를 사랑했나 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글이 올라왔다.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사랑하는 엘리를 보내려 한다고.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데려오겠다고 말했다. 떨떠름해하는 친구의 반응에도 모른 척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친구의 집까지 찾아가 엘리를 데려왔다. 갑자기 친한 척하는 나를 어색하게 반기던 친구. 난생처음 보는 내가 안아도 별 반항이 없는 엘리 때문에 서운해하던 친구를 보면서 나는 내심 기뻤던 것 같다. 나는 엘리를 원했던 건지, 친구의 것을 하나라도 갖고 싶었던 건지 이후 오래도록 생각했었다.     

데려오고 한동안 침대 밑에서 나오지 않던 엘리에게 나의 성 ‘이’를 붙여 ‘이로운’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었다. 나처럼 세상 어디에도 이롭지 않은 존재가 되지 말길. 이름 덕택인지 엘리는 말라비틀어져 가던 내 삶에 실로 이로운 존재가 되었다.      


야근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겨우 하루 1시간 정도밖에 함께 깨어있지 못하지만, 로운이의 갓 내린 눈처럼 포슬포슬 고운 털 결을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채워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로운이의 노란 눈을 들여다보았다. 노란 우주 속에 까만 먹물 같은 눈동자가 빛에 반응해 펴졌다 오므려졌다 하는 걸 보면 해파리의 유영처럼 신비스러웠다. 가끔 마지못해 내 무릎 위에 앉아주는 것만으로 삶은 피어났다. 내가 누군가의 체온을 오롯이 독차지한 적은 엄마 배를 벗어난 이후 처음이었다. 나를 채우고 피어나게 하려고 제 온기를 다 퍼준 다음 겨우 2년 만에 로운이는 내 곁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 마치 내가 제 생명을 흡혈한 마냥.     


로운이 보여준 기억은 빠르게 감기는 비디오테이프 같았다. 까만 영상은 아마 로운이가 잘 때인 것 같다. 나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은 대부분 잠으로 보냈나 보다. 그리고 중간중간 긴 회색 영상. 회색의 의미는 모르겠다. 그리고 깨어있는 시간은 나를 바라보고 있다. 눈물이 흘렀다. 로운이의 모든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고, 더듬이 같은 수염도 언제나 나를 향해 있었다. 내게 로운이가 전부였듯, 로운이에게도 내가 전부였다.   

  

짧은 2년, 조그만 원룸 안에서 나와 함께 해준 로운이. 사방이 막혀있고, 창밖에는 또 다른 건물의 외벽이 보이는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공간. 어쩌면 로운이가 바라볼 수 있는 게 나밖에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로운이를 만지고 싶고 껴안고 싶지만, 여전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 내어 울고 싶은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로운이는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걸까.     


점점 빛이 약해진다. 로운이가 자주 병원에 드나들던 시기의 기억이 지나간다. 까맣다. 내 얼굴이 보인다. 또 까맣다. 그리고 아주 긴 시간 회색. 이것이 반복되다 툭 하고 필름이 끊어지듯 빛이 꺼졌다. 로운이가 떠났다. 오랫동안 굳어 있던 몸이 단번에 펴지지 않아 나는 울부짖으며 몸을 비틀어댔다. 겨우 몸이 풀려 로운이를 안았다. 벌써 몸이 단단히 굳어있었다. 사후 경직이 이 정도로 왔다면 로운이의 숨이 끊어진 건 언제란 말인가.     

창문으로 어슴푸레 새벽빛이 새어 들어온다. 나는 로운이를 품에 안고 조용히 앉아있다. 빛은 창문을 거쳐 내 등을 비추고 로운이의 얼굴을 비추고 방 가운데를 지나 문으로.     


그 빛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순간 한 장면이 머리를 치듯 떠오른다.      


나는 깨달았다. 로운이의 기억 속 절반을 차지하던 회색의 이미지. 그건 원룸의 현관문이었다. 로운이는 언제나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그렇게 나를 기다린 존재가 있었다. 어쩌면 그 기다림이 로운이를 말라비틀어지게 했을지도 모른다. 로운이는 그렇게 오랫동안 회색 문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친구와 함께 살던 시절 한 번도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던 로운이는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어쩌면 로운이가 사랑하고 바라보던 존재가 거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로운이를 구했다고, 내 생애 처음 누군가에게 이로운 일을 했다고 믿었는데. 나는 로운이에게 회색 문만 보게 하는 해로운 존재였던 걸까.     


나는 로운이에게, 로운이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환해진 창 아래 딱딱한 고양이의 주검을 들고 또 한참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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