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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Mar 30. 2021

혐오스런 경애의 일생

사랑한다는 것

*갑자기 떠오른 장면 하나를 이야기로 만든 초초초 짧은 소설입니다.

소설 공부한 적 없어서 마음대로 썼어요:)





경애는 끊임없이 사랑을 했다. 온 몸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영원하지 않았다. 경애가 사랑한 남자들은 항상 경애를 밀어내거나 떠났다. 그 이유는 바로 경애가 혐오스럽기 때문이다.   

  

경애는 혐오스런 여자였다. 경애도 알고 있었다. 남자를 사귈 때마다 그 남자들은 경애에게  가르쳐주었다. 너는 정말 혐오스러운 여자라고. 경애는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단지 혐오스럽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사실 말로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눈빛으로, 주먹으로. 때론 사랑을 나눌 때조차 그들은 말하는 것이다. 너는 정말 혐오스런 여자라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A다. 그는 아마추어 복서였는데, 샌드백을 칠 생각은 하지 않고 항상 경애의 얼굴을 쳤다. 그는 경기에서 늘 졌고 경애의 얼굴엔 늘 멍이 들어 있었다. 경애는 그가 왜 복싱을 계속하는지 궁금해졌다. A가 1라운드에서 KO 당해 경기가 일찍 끝난 어느 날, 경애는 A에게 묻기로 했다. 오늘은 시간이 충분하니 우리의 미래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모른다고 경애는 기대했다.     

“오빠, 오빠는 왜 늘 지면서 복싱을 그만두지 않는 거야? 그렇게 맞아도 몸이 괜찮은 거야?”    

  

경애는 진심 걱정이 됐다. 아직 젊은 그가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가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야 그녀도 걱정 없이 A 옆에서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한 말이었다. A는 가만히 경애를 바라보더니, 그날부터는 경애가 KO당할 때까지 때리기 시작했다. 경애는 멍을 가리기보다 외출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밖에 나가기를 포기한 경애에게 유일한 손님은 택배기사 B였다. 처음에는 택배박스만 주고 가다니 언제부턴가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경애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B뿐이었다. “이경애 씨, 택배 왔습니다.” 하던 그가 “경애 씨, 오늘은 뭐 시키셨어요?”하며 웃었을 때 경애는 다시  사랑에 빠지고 만다.     


대화가 길어지는 날이 많아졌고, 그는 경애를 돕겠다고 말했다. 경애는 집을 나왔다. A는 경애를 찾지 않았다. 전화조차 없었다. 경애는 아주 잠시 섭섭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이내 잊었다. B 덕분에 조그만 방도 얻고 아르바이트 자리도 얻을 수 있었다. 경애가 결혼한 적이 없다는 걸 안 B는 경애에게 청혼을 했다. 경애는 B야 말로 자신을 혐오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B는 매일 보듬어주고 만져주고 사랑해주는, 다정하고 착하고 여자를 위할 줄 아는, 그런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B가 경애에게만 친절한 건 아니었다. B는 모든 불쌍한 것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남자였다. 홀로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하신 어머니에게도, 남편의 도박 빚을 견디다 못해 이혼하고 오빠 집에 얹혀사는 여동생에게도. 하물며 옆집에 사는 미혼모에게도 무한한 동정심을 가진 그런 남자. B는 음식쓰레기를 뒤지는 길고양이 같은 여자가 아니면 사랑을 줄 수 없는 남자였다.      


시어머니의 구박에도, 시누이의 무시에도 경애는 행복했다. 그러나 경애가 행복해 하자 그는 금세 흥미를 잃었다. 경애는 알지 못했다. B의 말투가 왜 쌀쌀해졌는지, 왜 둘이 외출하자는 얘기를 안 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자주 외박을 하는지. 어느 날 새벽 그녀는 보게 된다. 그가 옆집 미혼모 집에서 나오는 모습을. 따지는 경애에게 B는 말했다.     

“넌 너무 눈치가 없어. 니가 왜 그렇게 맞았는지 알 것 같다.”     

A에게 맞을 때보다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B 또한 다른 남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경애는 그 길로 고향에 돌아왔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떠나왔던 곳이지만 경애에게 갈 곳은 없었다. 경애는 임신한 상태였지만, B에겐 말하지 않았다. 가난에 찌들어 하루하루 끼니 걱정밖에 없으셨던 부모님은 경애에게 지난 시간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묻지 않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거냐고도 묻지 않았다.   

  

경애는 죽은 듯이 지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랑에 대한 갈구는 경애의 정신을 갉아먹어갔다. 어떤 날은 정신없이 바다로 뛰어나가기도 했다. 차가운 소금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잠시 욕망이 가라앉곤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고 배가 불러왔지만, 출산을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경애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디기가 어려웠다. 차가운 바다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죽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경애는 알고 싶었다. 왜 나는 그들을 사랑했을까? 그들은 왜 나를 혐오했을까?  

   

경애는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했다. 가난하고 폭력적인 삶이었지만 그 삶조차 사랑했다. 그녀는 오로지 집중했다. 사랑의 감각에, 사랑함의 감각에.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서인지 복부에 갑자기 통증이 밀려왔다. 밖으로 나와 얼어붙은 모래 위에 누웠다. 통증의 원인은 아이였다. 아이가 발로 배를 차고 있었다. 아이도 추웠겠지. 살고 싶었겠지. 엄마의 사정이 어떠하든 아이는 생의 감각에 집중하고 있었다.      


경애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그 남자들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사랑의 감각을, 생의 감각을.     


경애는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아이도 발길질을 멈췄다. 찬바람을 등을 찔러댔지만, 아이와 포옹을 하니 체온이 느껴졌다. 떨리던 몸이 차츰 조용해졌다. 눈을 감으며 경애는 생각했다. 

     

나는 그 누구도 혐오하지 않을 거라고. 잘못은 이해하지 못 하는 자들에게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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