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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Apr 09. 2021

안 되는 새끼

될 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콰콱


   태형이 갑자기 뒤돌아서 ‘날라차기’로 옆에 있는 차의 사이드미러를 부술 때까지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수인은 꺼내던 담배를 다시 집어넣으며 태형의 ‘날라차기’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자신이 아무리 빨랐더라도 태형을 말릴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자의 발을 막는 건 우사인 볼트라도 힘들 것이라고. ‘저 새낀 역시 안 되겠어. 오늘은 정말 끝장내자.’ 수인은 다짐하며 다시 담배를 꺼냈다.

   “야, 그거 우리 아빠 차야.”


   오랑우탄 같은 괴성을 지르며(오랑우탄아 미안) 불 위에 올라간 오징어처럼 날뛰던(오징어야 넌 맛있기나 하지) 태형은 갑자기 중성화시킨 고양이 마냥 얌전해지면서 천천히 수인을 돌아보며 멍청하게 말했다.

   “장인어른 차라고?”

   “미친 새끼가 누가 니 장인이야! 너 울 아빠가 이 차 얼마나 아끼는지 아냐? 하나밖에 없는 딸내미보다 더 사랑해. 맨날 닦아대서 니 멍청한 얼굴도 다 비칠 거야. 낼 일어나서 사이드미러 깨진 거 보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니 대가리 정도는 깨주실 거야. 암. 그렇고 말고.”

   “난 몰랐지. 장인....... 아니 너네 아빠 차면 말을 했어야지!”

   “니가 언어를 이해하는 놈이었으면 이 사태가 일어났겠냐? 우주의 기운을 다 모아도 너랑 대화가 안 돼.”

   “니가 또 헤어지자고 그러니까 내가 흥분해서.......”

   “그렇게 흥분되면 니 머리통을 때려. 니 머리통에서 나온 한심한 생각때메 헤어지잔 건데 왜 애먼 남의 차를 깨냐? 내가 세 번은 봐줬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넌 결혼하면 사이드미러 대신 내 눈탱이를 칠  놈이야. 내가 알어.”

   “미쳤어! 수인이 니가 때릴 때가 어딨다고. 나 그런 놈 아니야. 넌 나를 그렇게 겪고도 몰라.”

   “그럼 내가 면적 넓어지면 때릴래? 널 겪어봤으니까 이렇게 정확히 판단하고 있잖아. 간접 경험으로 끝냈어야 하는데 내가 모험심이 좀 많았네. 그 점 사과할게.”

   “니가 뭘 사과해. 사과할 놈은 나야.”

   “풍자도 모르는 새끼....... 니가 날 안 때린다 쳐도, 이젠 내가 널 팰 거 같다.”

   “그래. 잘 생각했어. 수인아. 어서 날 때려! 니가 화만 풀린다면 난 얼마든지 맞을 수 있어. 자! 어서!”

   수인은 태형이 저런 이해력으로 26년을 어떻게 살아온 건지에 대한 아주 근원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그 호기심은 몇 초간 수인의 기억을 과거로 되돌려주었다. 태형에게 처음 호기심을 가졌던 그때로.



*



   수인과 태형은 소개팅으로 만났다. 복학생이었던 태형은 수인의 얼굴을 잘 쳐다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수인은 막 전역한 남자가 군인티를 내지 않으려 차려입은 모양새도 그렇고, 내내 머리를 긁적거리며 커피만 마셔대는 게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호기심이 피어났다. 몇 달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그러다 사귀게 되었다. 언제나 수인을 조심스럽게 대했고, 수인의 의사를 물었다. 수인은 태형이 아주 배려심 많은 남자라 생각했다.


   처음 수인이 실수를 깨달은 건 사귄 후 첫 크리스마스 때였다. 처음으로 수인이 친구들에게 태형을 소개한 날이었다. 태형이 도착하기 전 친구들은 남자는 ‘술을 많이 먹여 봐야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본색을 드러내는지 보자며 킬킬거렸다. 친구들이 주는 술을 호탕하게 웃으며 다 받아먹던 태형은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술에 취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수인은 태형을 부축해 택시를 태워 보내려 길을 건너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거기 서.”

   갑자기 태형이 꼬부라진 혀로 지나가던 남자를 불러 세웠다. 수인은 당황해 태형을 말렸다.

   “오빠,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아, 저 새끼가 아까 길 건너기 전부터 날 째려보고 있잖아. 내가 누군 줄 알고, 확 죽여 버릴라. 수인이 넌 가만있어.”


   횡단보도 반대편에서 길을 건너려 기다리던 그 남자는 갑작스런 욕설에 눈을 부릅 치켜뜨고 태형에게 다가왔다. 수인은 얼른 태형 앞을 가로 막고 상대방 남성에게 사과했다. 태형은 연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욕을 했지만, 수인의 앞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수인 등 뒤에서 주먹을 들이밀며 버둥댈 뿐이었다. 김빠진 그 남자는 “미친놈 술 마셨으면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쳐 자.”라며 가던 길을 갔다.


   집에 온 수인은 침대에 누워 좀 전의 일을 떠올렸다. 태형이 욕을 할 때 그 눈빛이 익숙해서였다. 태형이 술에 취한 걸 본 건 처음이니 태형의 눈빛은 아니었다. 수인이 익숙한 그 눈빛은 아빠의 눈빛이었다.


   세상 좋은 아빠. 누구에게나 호인 소리 듣는 아빠. 농담을 잘해 주변을 항상 웃음바다로 만드는 아빠. 그러나 아빠는 법 없이 살 사람은 못 된다. 술만 먹으면 눈빛이 변하고, 보는 사람마다 죽여 버리겠다고 이를 가는 아빠. 그 장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가족밖에 없으니 공포에 떠는 사람도 엄마, 오빠, 수인뿐이었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는 얼른 오빠와 수인을 두꺼운 이불 속으로 숨겼다. “쉿, 여기 가만히 있어.” 엄마는 어두운 미소를 지으며 방문을 잠그고 나갔다. 한 번도 방문이 열린 적은 없지만, 아빠가 문고리를 잡고 흔들까 봐 오빠와 수인은 이불 틈새로 내내 문을 노려보고 있었다. 밤새 안방에서는 욕설과 물건 깨지는 소리와 함께, ‘퍽 퍽 철썩 철썩’ 둔탁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수인은 그럴 때마다 속으로 ‘섬 집 아기’ 노래를 불렀다. 엄마는 굴을 따러 갔고, 나는 대청마루에 누워 나른한 바람을 맞으며 잠든 아기라고 상상을 하곤 했다. 조용하고 나른한 파도 소리를 떠올리기 위해 아무리 애써도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날카롭고 차가웠다. 눈물을 삼키다 겨우 잠들면 폭풍이 치는 밤바다에 홀로 떠다니는 뗏목이 되는 꿈에 시달리곤 했다.


   ‘설마.’

   수인은 태형에게 아빠의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예비역의 허세라 생각하고 잊기로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았다. 태형이 이번에는 자기 친구들을 소개해준다며 수인을 술자리로 데려갔다. 벌써 술에 취해 있던 태형의 친구들은 왁자지껄하게 수인을 맞이했고, 그 분위기에 태형도 수인도 술을 좀 과하게 마셨다. 수인은 소파에 누워 살짝 잠이 들었다가 수군대는 소리에 잠이 깨기 시작했다.

   “야, 쟤 완전 예쁜데. 어때? 먹었냐? 했어?”

   “아직. 쟤 몸매도 쩔지 않아? 내가 몸매 보고 반했잖아.”

   수인은 이미 정신이 말짱하게 돌아왔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수치심에 몸이 떨렸지만, 그 떨림을 들킬까 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술자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수인은 헤어지자고 말했다. 태형은 좀비처럼 날뛰었고 길가에 쓰레기 봉지들을 축구공으로 착각했는지 골을 날려 대기 시작했다. 이유도 묻지 않고 무조건 안 된다며 날뛰는 태형의 모습에 화가 나 수인도 함께 소리 질렀다.

   “왜? 못 따먹고 헤어지려니까 아쉽냐! 이 개 같은 새끼야!”

   “너....... 들었어?”


   태형은 진짜 개새끼가 되어서 수인 앞에 무릎 꿇고 울어대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고. 친구들 장단에 맞춰준 거뿐이라고. 남자 새끼들은 원래 말하는 게 그따위라고. 내 마음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고장 난 녹음기처럼 같은 말만 반복해대며 질질 짜는 태형을 보니 그냥 생각 없이 한 말이려니 싶고, 불쌍하기도 했던 수인은 그때 태형을 용서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



   ‘그때 쓰레기봉투랑 같이 차버렸어야 했어.’

   수인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뭐 하겠냐 생각했다. 어차피 헤어질 거 혹시 해코지라도 하면 큰일이니 보살과 같은 표정으로 타일러 보내자고 마음먹고 태형을 돌아보았다. ‘넌 더 좋은 여자 만나야 해.’ 같은 뇌 어느 구석에도 없는 말을 하려던 수인은 태형의 반응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라이터를 집어던지고 말았다. 수인이 조용하고 인자하게 자신을 돌아보자 태형은 이제 수인의 마음이 풀렸다 생각했나 보다. 그와 동시에 예전의 그 비굴한 표정을 지으면서 눈을 감은 채로 수인 앞에 무릎 꿇었다.

   “이제 진짜 안 그럴게. 용서해줄 거지? 내가 여자 맘을 잘 몰라서 그래.”


   수인의 눈에 비친 태형은 아빠의 그 표정을 닮았다. 술에 취해 밤새 엄마를 때리고, 다음날 술이 깨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엄마를 달래던.

   “여보, 미안해. 내 마음은 안 그런 거 알지? 술이 웬수야. 이제 술 안 마실게.”


   수인은 태형의 뺨이라도 후려칠까 하고 오른손을 올리다 얼른 왼손으로 오른손을 잡았다. 태형의 뺨에 용서의 낙인을 찍어주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낙인을 '참 잘했어요.' 도장으로 기억할 것이다. 호프집 알바를 함부로 대한 것도, 그것 때문에 화가 난 수인에게 "나보다 어린 여자앤데 뭐 어떠냐."고 말한 것도, 집 앞까지 쫓아 와 자기가 화난 걸 증명하기 위해 남의 차 사이드미러를 부순 것도, 모두 다 참 잘한 행동이 되어버릴 것이다.


   수인은 무릎 꿇은 태형의 옆을 스쳐지나 아빠 차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수인은 있는 힘을 다해 멀쩡한 쪽 사이드미러를 내리쳤다. 한 번에 부서지지 않아 성의 있게 정성스레 계속 내리쳤다.

   퍽퍽 콰직

   태형은 입술을 달싹거리면 뭔가 말하려 하다 주춤주춤 뒤돌아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멀리까지 달아나다 길 끝에 멈춰 서 수인을 향해 외쳤다.  

   “나한테 비용 청구 다 하지 마라! 난 하나만 깼어!”

   수인은 피식 웃으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역시 글러 먹은 새끼였어. 안 되는 놈은 평생 안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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