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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타샤 Oct 24. 2021

저기요 라고 불리던 여자

포도

"휘가 제일 좋아하는 소스는?"

"칠리소스"

"휘가 제일 좋아하는 포도는?"

"머루포도"

남편이 기계처럼 대답한다.

 

우리의 사랑이 핑크빛일 때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커플 퀴즈쇼에 나갈 것 마냥 각자의 취향을 빠르게 질문하고 답하는 장난을 하곤 했다. 핑크빛 사랑은 여러 사건들과 시간이 잘 혼합되어 짙은 갈색이 되었다. 소위 똥색. 우리의 사랑은 똥색이라고 남편은 오랜 연애기간을 대변하듯 자랑스럽게 말한다. 머루포도를 먹을 수 있는 초가을이 되면 여전히 우리의 핑크빛을 기억하는지 남편에게 불시검문을 하곤 한다.


 결혼은 둘만 사랑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던 어른들의 말처럼 결혼을 하고 맞닥뜨린 현실 앞에 우린 똥색이 되기 전 시퍼런 사랑을 하던 때가 있었다. 함께 천장을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짜내던 지난날 자칭 자살 혐오자 남편은 왜 사람이 자살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고 했다.


'미래가 보일 때는 눈앞의 불의가 사람을 뜨겁게 만들지만 미래가 없을 때는 차갑게 만든다.'

-고병권의 <묵묵>-


신혼 초 시어머니께서 포도 몇 송이를 건네주시며 트렁크에 두고 깜빡해 상태가 안 좋을 수도 있다 하고 가신다. 괜찮다며 감사인사를 하고 집으로 올라와 스테인리스 볼에 물을 가득 담고 포도를 씻는다. 말라비틀어진 포도알을 하나씩 떼어낸다. 성한 게 별로 없다. 눈물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른 포도를 받은 것이 이렇게 속상할 일이냐고 속으로 되묻는다. 되물을수록 그간 쌓였던 눈물방울들을 걷잡을 수 없다.


"라테는 설거지할 때 쇠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도 내면 안됐지 뭐야."


'저는 젓가락을 뭉치로 씻을 수 있어 감개무량합니다만…'

하고 자꾸 마음이 삐뚤어진다.


시어머니 본인이 겪은 시댁살이와 남들 보기에 화려해 보이지만 한 많은 삶을 며느리를 통해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셨을 테다. 결혼 전 딸 같은 며느리, 엄마 같은 시어머니는 절대 없다고 으름장을 놓으시고는 그래도 잘 지내고 싶다며 듣는 이의 마음을 알쏭달쏭하게 만드셨다.


 나 또한 유교걸 나부랭이로써 착한며느리고 싶은 욕망에 당신의 간섭을 당연한 환경으로 만드는데 일조했거니와 어른이 하는 말에는 말대꾸하지 말라던 고지식한 부모의 가르침 덕에 아차 싶은 순간들마다 적당한 선을 긋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신혼 첫 달, 한 달 동안은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은 본인의 부모님과 거의 2~3일에 한 번꼴로 13번의 식사, 그중 나는 4~5일에 한번 꼴로 7번의 식사를 시부모님과 하게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거기에 어려운 것은 고부갈등뿐 만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의 경제사정은 역행하고 있었다. 헬조선에서 보기 드문 월세로 시작하는 신혼부부였기 때문이다. 결혼 전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남편은 새로운 업에 도전한다며 지인과 함께 반년 정도 틈틈이 장소를 물색하고 인테리어 조사를 하며 보수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다사다난했던 결혼식을 해낸 것 만으로 한숨 돌리려는데 한 템포 쉬기는커녕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뒤로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당시 내겐,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 같지만 시어머니의 불쑥 올라오는 화를 의연하게 대처할만한 여유도 노련함도 없었다. 당신이 던진 감정의 쓰레기들을 처리하기엔 나의 쓰레기통을 치우는 일에도 미숙했고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대체 어떤 일들을 겪으셨기에 이런 쓰레기들이 생겼나 하고 봉지를 풀고 헤집어 보는 일이라 생각했다.


수습불가가 되는 지경에 이르면 시켜서 한 일도 아닌데 이걸 내가 왜 하고 있냐며 봉지를 여미지 않은 채로 남편에게 던졌다. 덤으로 나의 부모는 이런 쓰레기를 내게도 너에게도 함부로 던지지 않는다고 남편의 마음을 들쑤셨다. 남편은 오랫동안 자신의 부모가 던진 쓰레기 봉지를 대신 잘 처리해주거나 본인도 벅차거든  귀한 외동아들로서 그만 던지라고 얘기 정도는 할 수 있는 깜량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결혼을 했더니 이제는 아내가 시작이다.


"어머니가 탁구공만 한 스트레스를 주시면 저는 규태한테 배구공을 날렸어요."

-동백꽃 필 무렵 대사-


  남편도 토스를 거부할 무렵 나는 그에게 화를 내는 날이 잦아졌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거머리처럼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혼자 있을 때면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을 해댔다. 길을 걸어가며 가까이 지나가는 사람이 있는데도 육성으로 혼잣말을 하다 자신의 코골이 소리에 잠에서  사람처럼 흠칫 놀라곤 했다. 학창 시절에 받았던 심리, 성격 검사지에 매번 낙천적, 긍정적이라고 나오던 내가! 정신이 나가는   순간이겠구나 싶어 두려웠다.


 간신히 제정신일 때마다 명상을 하고, 심리 상담을 받고, 내가 처한 상황에 관련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다 보니 남편에게 던지는 쓰레기는 줄어드는 것 같았으나 시어머니의 쓰레기는 여전히 줄지 않았다. 쓰레기는 받지 않으면 준 사람 것이지. 머리로 이해하고 이제는 받지 않으면 될 거라 생각할 즈음 명절 아침 남편이 없는 자리에서 시어머니는 이제는 보란 듯이 쓰레기 봉지를 풀어 내 앞에 탈탈 털어버렸다.


그리고 내 영혼도 탈탈 털렸다. 뒤늦게 들어와 영문 모르고 앉아있던 남편은 집으로 돌아와 반나절을 우는 내게 대신 미안하다고 재차 사과했다. 너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한테 왜 사과를 하냐고 또 화를 내버렸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 처리하는 법 모르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갔다.


 얼마 뒤 부모님과의 거리두기를 위해 남편이 어렵게 만든 자리에서 더 이상은 남편도 컨트롤하기 어려울 것 같은 일이 벌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탯줄이 끊어진 아가처럼 남편은 엉엉 울었다. 그날 밤, 다음 날, 또 다음 날, 서로의 눈만 마주쳐도 눈물을 쏟아냈다. 그러고 나면 나란히 누워 한동안 차갑게 누워있었다.


 내겐 짙은 눈매에 화려한 첫인상을 가지고 있던 시어머니와 굉장히 비슷한 무드의 저기요 라고 불리던 새엄마가 있었다. 엄마와는 달리 널따란 쟁반에 빵과 우유를 내오던 여자. 밑 빠진 독에 물 부어대듯 항시 양손 가득 검정 비닐봉지에 제철 과일들을 사들고 와서 맛있는 부위부터 내 입에 밀어 넣었던 엄마와 달리 냉장고의 텅 빈 과일 칸을 보고 너 혼자 그렇게 다 먹으면 어떡하냐고 나무라던 여자. 특별히 잘해준 것도 못해준 것도 없었던 사람.


시어머니가 주신 마른 포도를 보며 나의 무의식은 저기요를 떠올렸을 것이다. 별 일 아닌 듯한 유년시절의 기억이 현재의 슬픔을 뻥튀기해주기도 하고 현재와 과거를 혼돈해 고통스러워한다. 마음속 응어리를 다 지운 것 같을 때 전에 없던 상처가 생기거나 사라진 줄 알았던 응어리를 발견하면 골치 아프다.

 

포도를 받고 떠올린 무의식과는 별개로도 종종 화를 주체 못 하는 당신을 이해해보려 수많은 시간 노력해보았지만 송구스럽게도 내가 먼저 나아져야 이해의 발끝에라도 미칠 수 있다는 것,  본인의 아픔은 본인이 치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오랜 시간 지나서야 깨달았다.


결국 아름다운 거리두기에는 실패했지만 자극 없는 2년의 시간이 지나고 조금씩 일상의 궤도로 돌아오고 있다. 이렇게 시가와 겪은 일의 반의 반도 안될 것 같은 글을 써 내려가며 조금이나마 후련함을 느끼고 아프면 아프다고 제 때 잘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본다.


거대한 눈덩이 같은 나의 응어리가 녹기 시작하자 시어머니가 내게 던진 것도 쓰레기가 아닌 눈덩이가 아녔을까 싶었다.


'도무지 녹을 줄 모르는 저 거대한 내 눈덩이 좀 봐달라고.'


당신이 가끔씩 하소연하던 이야기 속 나를 보며 떠올랐을 몇몇의  저기요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건방지게 짐작하곤 한다.


 아직은 어렵겠지만 먼 훗날 당신의 아픔을 헤집어 보던 순간이 차마 끊을 수 없는 우리를 이어주는 끈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을 때가 아주 가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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