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1987년 여름 엄마의 다리 사이에서 2.7kg의 핏덩어리가 나왔다. 그게 바로 나다.
어린 시절 가여운 부모가 나의 부모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누추한 나의 집이 그래도 기왕 나의 집이면 좋겠다는 바람사이에서 종종 질문이 생겼다.
“나 진짜 엄마 딸 맞아?”
“너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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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다리 밑에서!”
아빠는 짓궂은 대답을 하고 웃었다. 무뚝뚝한 아빠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몹시 기분이 좋은 일이였다. 그렇다고 대답에 확신을 갖기엔 난 어렸다.
우리 모녀는 닮은 구석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여전히 확신이 없는 내가 30대 중반이 되어서도 자주 물어본다. "엄마는 착해서 주워온 자식도 친딸처럼 키울 사람이니까 나를 어떻게 낳았는지 아주 자세하게 구술해 봐"
잠시 생각에 잠겨 엄마는 마치 진짜처럼 얘기한다.
"넌 작아서 생각보다 편하게 낳았지. 2.5kg가 안될 것 같다고 하길래 인큐베이터 있는 산부인과 찾아가서 낳았잖아. 성바오로병원. 알지? 너 낳고 아빠가 기분이 좋아서 병원에 일하는 사람들한테 바나나를 돌렸어. 그때 바나나가 얼마나 비쌌다고."
지난 이야기를 하며 웃는 일이 잘 없던 엄마가 웃는다. 이상하리만치 통으로 날아간 기억이 많은 엄마가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얘기했고 분명 웃고 있었다. 그날따라 어쩐지 못생긴 나의 발가락이 엄마와 똑같아 보였다. 엄마의 미소를 믿기로 했다. 발가락을 한번 쳐다보고 쿰쿰한 냄새를 풍기며 전자레인지 옆에서 썩어가고 있을 바나나가 떠올랐다.
한 여름이 되면 엄마가 물려주지 못한 나의 게으른 유전자가 유독 잘 드러난다. 살림하기를 한 두 해 보내며 여름이 되서야 새해인사하러 오는 초파리들이 줄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들은 나의 게으름을 좋아하는 것 같다. 초파리의 집이 되어준 바나나는 여전히 부지런히 익어가며 단내를 풍긴다. 그리고 열기 가득한 집에 잠시 두었다가는 금세 껍질에 짙은 갈색 반점을 퍼트리고 불쾌한 냄새를 더할 것이다.
바나나는 지루한 맛이고 나는 퍼근퍼근한 그 속살에 대한 애정이 없다. 오로지 바나나를 먹는 즐거움은 껍질을 절반 정도 벗기고 속살 꼭대기에 검지 손가락을 세로로 꽂아 넣는 것, 그리고 3등분된 속살이 바깥으로 발라당 스러지기 전에 옆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것이다.
나를 포함한 아빠, 남동생 이렇게 세명은 엄마의 부지런함을 나누어 먹고 살았다. 아마도 우린, 염치는 있어서 미안하게도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것 같다고 얘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기억 속에는 주조연을 번갈아가며 장악한 과일이 있었고 가족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찬찬히 더듬어보면 특히 아빠가 내게 준 사랑은 하드코어 한 보물찾기 같다. 겨우 찾아낸 첫 번째가 바나나다.
바나나는 아빠가 내게 준 첫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