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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Oct 04. 2020

잔잔한 물결 따라

아무 일은 없지만 어떤 일은 가득한 하루

커다란 폭포에서 떨어졌다.

물살이 빨라지거나,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나는 것을 느끼지 못한 채 맞닥뜨린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폭포였다.

폭포 아래로 떨어진 나는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물속으로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어디가 위인지, 어디가 아래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정신을 놓지 않는 것이었고

이미 힘이 거의 빠진 팔과 다리를 휘젓는 것은 의미 없는 행동이었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뒤집힌 배를 겨우 부여잡고 물에 떠있었다.

이렇게 계속 흘러내려갈 수는 없으니

나는 또 있는 힘껏 배를 뒤집어 그 위에 올라타고, 물을 퍼냈다.

하지만 물을 다 퍼내기도 전에 또 폭포를 만난다.


요즘 나의 생활은 이러했다.

처음 폭포에서 떨어졌을 때는 아무 일 없이 잘 헤쳐나가고 싶었고

이 정도 폭포쯤은 아무렇지 않게 극복하는 능력자이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그렇게 보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험한 물길을 이겨낼 열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폭포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하게 되면서

나는 어느새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만신창이가 된 채 배를 뒤집어 오르면서 

제발 폭포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언제 폭포가 나올지 몰라 배 위에 있는 시간이 괴로웠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없이 무능력해 보였고

이번에는 뒤집힌 배조차 잡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그래도 폭포는 언제나 나타났고, 

다시 만난 폭포는 언제나 그 전보다 더 크고 거칠었다.


아무도 나에게 이 배를 타라고 한 적은 없었다.

남들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 혹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아니, 어쩌면 앞질러 가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선택한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배가 내가 타고 싶었던 건지, 남이 타라고 한건 지도 잊고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언제 닥칠지 모르는 폭포만 걱정한 채 지내왔다.


이번 폭포 아래에서 나는 뒤집힌 배를 잡지 않았다.

대신 온 힘을 모아 물가로 헤엄쳤다.

다른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보면서 용기가 있다며 대단하다고도 했고

혹은 이제 어떻게 이 길을 따라갈지 걱정했다.

나에게 더 좋은 다른 배가 있거나, 

혹은 누군가가 함께 타고 갈 배를 내어준 것이라 짐작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배를 버렸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다른 배는 없다. 당분간 배를 탈 생각도 없다.

축축하게 젖은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내 옆을 지나가겠지만

나는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간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충분히 즐기고, 충분히 생각하고, 충분히 계획할 것이다.

그리고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물가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옷을 말리고

물에 퉁퉁 불어 쪼글쪼글해진 손가락을 보송보송하게 할게요.

그리고 걸어내려가면서 

돌 사이에 핀 꽃도 보고, 나무 위에 앉아있는 새소리를 듣고

가끔은 따뜻하게 데워진 돌 위에 앉아서 일기를 쓰거나 낙서를 끄적일게요.

문득 배 위에서 맞던 바람이 그리워질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는 팔을 양쪽으로 활짝 벌리고 뛰어갈게요.

딱 그만큼의 내 세상을 느끼며 더 멀리, 더 빨리 뛰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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