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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Nov 13. 2019

집돌이인가 여행가인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주위를 둘러보면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꽤 많다.

긴 휴무가 주어지면 일찍부터 계획을 세워서 떠나거나

하루의 휴무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훌쩍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비행기 티켓을 항상 검색하고 

저렴한 티켓을 발견하면 기어코 떠나고야 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내가 2일 혹은 3일의 휴무가 생겼을 때, 

어디든지 떠나라며 집에만 있으면 휴무가 아깝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집돌이에 가깝다.

훌쩍 떠나는 일은 거의 없고, 

짐을 싸거나 떠날 준비를 하는 것도 다 일처럼 느껴진다.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야 

다시 일주일을 평안히 보낼 수 있다.


물론 나도 일 년에 몇 번쯤은 여행을 간다.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짐을 싸면서 느끼는 그 설렘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반복되는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쯤,

어김없이 떠나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들에게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그 새로운 기운과

낯선 풍경, 낯선 공기도 힐링이 되는 것 같다.


나는 지독히도 안정을 추구하는 극안정형 인간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데에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

오히려 안정을 흐트러트리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스트레스를 느낀다.

매일 해야 하는 일 혹은 매주, 매달 해야 하는 일을 

계획에 맞춰 해나가는게 나에게는 힐링이다.

집에서 특별히 하는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예쁘게 브런치를 차려먹거나,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낮잠을 자는 게 전부다.

그래도 그 시간이 너무 중요하고 소중하다.

천천히 내린 핸드드립 커피 한 잔에 가벼운 브런치 먹고

설거지는 스윽 밀어둔 채 

밀린 예능이나 영화를 보면서 스르륵 잠이 들고

일어나면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책을 읽다가 또 잠이 들기도 한다.


결국 내가 집돌이인 이유는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생활 패턴을 깨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나,

여행지에서 겪게 되는 계획에서 벗어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나에게는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건 아닌가 싶다.

또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집에 있는 동안은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을 완전히 신경 쓰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이는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므로 아무렇게나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여행을 갔으면 그곳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지

무슨 큰일을 당하고 도망 온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다.

결국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집돌이인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되 대신 나에게로 여행을 떠난다.

아직도 여전히 잘 모르는 내 마음으로 훌쩍 떠나서

텐트를 치고 모닥불을 지피고 따끈한 차를 한잔 마시면서

천천히 나를 둘러본다.

그 어느 날 나는 왜 머리 끝까지 화가 났었는지,

어떤 날에는 왜 그렇게 그 사람이 싫었는지,

또 그 어느 날에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감정은 질투였는지 혹은 자괴감이었는지,

그 날의 나는 어떻게 그렇게 어른스러울 수 있었는지.

이런 여행은 일상생활을 하면서는 절대 떠날 수 없는 여행이다.

내가 집돌이면서 동시에 여행가일 수 있는 것은

나를 위한 시간이,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 되어

나도 몰랐던 나의 풍경을 발견하고 

그 풍경을 보면서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던 모닥불이 꺼져가면서 

밤공기가 서늘하게 느껴질 때쯤에는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또 한 가지를 알게 되고 

모닥불에 모래를 덮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생각하고

텐트를 반듯이 접어 넣을 때에는

한 단계 성장할 나를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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