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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Nov 04. 2019

버킷리스트가 남아있다는 것

그것은 아직 성장할 수 있다는 것

내가 군생활을 했던 부대에는 '해양훈련'이라는 훈련이 있었다.

훈련 일정 중에는 '전투수영'이라는 있었는데

아마 첫 해양훈련을 앞두고 전투수영이 걱정되어 저런 일기를 그린 것 같다.

왜냐하면 난 수영을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물과 친하지 않고, 

남들은 안 배워도 잘만하는걸 나는 할 줄 몰랐다.

그리고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으니 

물에 빠지면 거북이나 돌고래가 등에 태워주지 않는 한 살 가능성은 없을 듯싶다.

 

막상 걱정을 가지고 떠난 해양훈련은 말이 훈련이지 여름휴가에 더 가까웠고

낮에는 바닷가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밤이면 고기와 함께 회식을 하는 부대원 사기 진작 프로그램이었다

다행히도 고무보트를 따라 미친 듯이 수영해서 

어느 섬으로 건너가고 하는 것은 내 상상 속에만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특별활동으로 수영부를 했었는데

1년 내내 수영장에 가서 놀기만 하다가

2학기 말 자유형으로 50m를 가는 평가에서

나는 수영을 못한다며 뒤로 빠졌던 적도 있었다.

학기말에 그런 시험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들은 적이 없어서 억울했지만

못하는 건 못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었다.

그 일을 겪은 후

2학년 특별활동은 전시회를 보러 다니는 견학부를,

3학년 때는 신문편집부를 선택했다. 

점점 비활동적인 특별활동이 되어간 것이다.


결국 서른 살이 되기 전에 꼭 배워야 할 것이라고 했던 수영은

서른 살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아직 배우지 못했다.

어쩌면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꼭 배워야 할 것.이라고 고쳐도

시간이 촉박할 만큼 나이를 먹었다.

여전히 나의 버킷리스트에 꽤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아무 때나 내가 편할 때 가면 되는 피트니스 센터도 가기가 쉽지 않은데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하는 수영강습은 현재로선 자신이 없다.

심지어 바로 집 앞에 수영장이 있는데도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직장인 반은 6시 수업이고, 오히려 출근시간이 대체로 늦은 나에게는 부담스러운 시간이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서는 내가 주부라며 9시 주부반에 끼워달라고 할 수도 없고.


누군가는 수영 수업이 6시라도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말할 수 있다.

지금 나에게는 수영보다 더 중요한 게 있으며

때가 되면 누구보다 열심히 수영을 배울 자신이 있다고.

그때가 백발의 할아버지가 된 다음이더라도 말이다.

버킷리스트가 남아있다는 것은 

성취 여부를 떠나 무언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뜻이므로

나는 십 년이 넘도록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가 아니라

십 년 후에도 여전히 이루고자 하는 버킷리스트가 남아있는 사람이고 싶다.


버킷리스트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어떤 큰 목표를 이루고 난 후에 그다음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도 있고

무언가를 한 번도 성취해 본 적이 없어서 어느샌가 목표가 사라진 사람도 있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 돈을 모으는 게 아니라

돈 자체가 버킷리스트인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다.

결국 그들이 잃어버린 건 목표가 아니라

시간이었고, 인생이었고, 그들 자신이었다.


버킷리스트가 있다는 건

결국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충실하게 채워나가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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