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례시간 읽어주는 담임의 편지
한 동안 막장 드라마라도 찍는 것처럼 자극적인 일들만 벌이고 다녔어. 화내고, 웃고, 슬퍼하고, 행복한 감정을 하루 사이에 다 느낄 정도였으니까. 하루라도 조용히 살면 안 되는 사람처럼 살았는데 마치 뭐에 홀린 것 같았어. 막장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은 이유를 알았지. 묘하게 중독성 있거든. 그렇게 선생님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생각하고 평온함을 지루함으로 착각하며
인생의 한 챕터를 채워갔어.
매일매일 반복되는 탈선을 멈추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지쳐버렸어. 세상은 여느 때처럼 흘러가는데 난 움직일 수가 없었어. 그 후로 꽤 오랫동안 아파서 몸에 좋다는 건 다 먹고 다 해봤는데 효과가 없었어. 몸도 마음도 점점 약해져 갔지. 내가 왜 아플까 1년을 꼬박 생각해서 찾아낸 답은
'내가 가진 모든 감정을 다 소모해버렸다.'
늘 새로운 것, 강렬한 것을 찾아다니며 내 감정을 쉼 없이 롤러코스터 태우다 멈춰버린 거랄까.
지난날 나의 잘못되었던 행동들을 후회해. 되돌릴 순 없으니 반복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데 나에 대한 신뢰가 이미 많이 무너진 것 같아. 또 반복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있어. 너희에게 항상 '당당해져라.', '자기 자신을 사랑해라.' 하고 말하면서 정작 선생님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어.
다시 생각해봐도 자업자득이야. 매일 MSG 팍팍 친 인스턴트만 먹고살았던 거니까. 지금은 내 삶의 장르를 주말 가족 드라마로 바꿔보려 노력 중이야. 가슴 따뜻한 소소한 일상이 이어지는 그런 삶을 살아보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하고 심심하게 보내는 하루에 만족하면서 말이야. 내 감정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싱거운 듯 느끼하지 않고 산뜻한 맛을 내는 음식처럼 담백하게 살고 싶어.
담백하게 살고 싶어
앞으로 살다 보면 이것저것 많은 유혹이 다가올 거야. 순간의 즐거움이 계속되길 바라며 유혹에 더욱 빠져들 거고. 그럴 때 너희 앞에 좋은 거울이 되어줄게. 오늘부터 선생님은 담백하게 살기 1일 차야. 마음에 여유가 넘치는 선생님의 모습 기대해! 사랑하는 아이들아. 오늘도 수고 많았어. 안녕.
2020.09.22. 늦게 철든 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