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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아름답게 지지 않는다.
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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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배터진마돈나
Jun 13. 2023
빠이짜이찌엔 상하이~
이제 우리도 봄을 맞으러 떠납니다.
대륙의 칼바람을 가르며 병원과 호텔을 오가던 발길에 눈물이 서려 들기 시작할 무렵 언니의 치료도 마무리되어 갔다.
암 판정 후 써 내려간 다섯 달간의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게 될지는
며칠 후 알게 될 mri결과에 달려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없었던 믿음까지 강제
소환해 가며
매 순간 기도했다.
언니가 흘린 눈물과 내가 삼킨 눈물을
하나
님이 제발 가엾게 여겨 주길
바라며.
언니 병만 낫게 해 주신다면
평생
주님의 자녀로 살겠다고 거짓말도 했다.
사실 언니에겐 싹 다 없어졌을 거라고 큰소리를 쳤지만,
속
마음은 부정과 긍정
이 어느 한쪽의 치우침도 없이 반반이었다.
오히려 오만가지 생각들로 피가 마르던 나와 달리 단순한 성격의 언니가 무념무상처럼 편해 보였다.
내가 탕비실에서 언니에게 줄 호박죽을 만들고 있었던 그날은 언니의 마지막 방사선 치료가 있던 날이었다.
약탕기에서
끓여진 죽을 그릇에 담아낸 뒤 설거지를 하고 있던 그때, 우리의 통역을 담당했던 심팀장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누나 누나~~ 방금 mri결과 나왔대요. 교수님한테 빨리 가보세요."
설거지를 하던 나는 세제가 묻은 손을 씻어낼 새도 없이
바지에 대충 닦으며
탕비실에서 뛰어나왔다.
저
~
쪽 복도 끝에서 치료실로 내려갔
던
언니가
나에게 뛰어오는 게 보였다.
가까워질수록 울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언니의 얼굴이
선명해져 왔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
아.. 뭔가가 잘못되었구나..
'
그 짧았던
순간에 명확한 주체도 없이 원망과 분노가 일었다.
언니에 대한
걱정이나
안타까움
보다
앞섰던 그 분노는, 내가 언니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언니의 완쾌로
치유받게 되길 원했던
보상에
대한
분노였던 것 같다.
그렇게 이기적인 생각들로 가득 찼던 나와 마주한 언니는
별안간
나에게
와락 안겨왔다.
혜영아~~ 나 암이 사라졌대. 나 암이 거의 다 사라졌대 혜영아~~
그
말과 함께
화사한 햇살을 받으며
나에게
달려들어오는
언니의
모습은
슬로
모션을 걸어
놓은 것처럼
지금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난다.
마치 뽀샤시한 필터를 끼운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아이처럼 뛰면서 함께 울었다.
그리고
소란스러운
복도로
어느새
몰려든 언니의 동기들은
박수를 치며
자기 일 마냥
좋아해 주었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축하의 말이 뻔했을 중국말도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 동안
복도에서 축하를
받던
나는 언니의 손을 잡고 교수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갔다.
내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언니의 주치의는
동그랗고 까만 뿔테를 쓴
여교수였다.
한국의 여느 교수님들처럼 무뚝뚝하고
권위적으로 보이
던 그녀는 우리를 보자 처음으로
웃어주었
다.
교수님의 책상
모니터 화면에는 언니의 mri영상이 여러 개 띄어져 있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mri영상을 비교해 주면서 여기에
있었던 암이 이쪽 사진에는
거의
없어졌다고 했다.
희미하게
보이는 것들은 암이 있었던 흔적인데 앞으로 몇 달 동안은 방사선이 암을 태우는 일을 계속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암은 사라졌다고 봐도 된다고 하셨다.
심팀장의 통역을 듣고 나서 나는
언니의 뇌사진들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
하지만
결국
틀린 그림
찾기에는
실패했다.
내 눈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거의 다 비슷비슷해 보이기만 했다.
눈이 뻑뻑해져 올 만큼 집중해서 보던
시야에 나의 다음 액션을 기대하고 있는 듯한 교수님의 얼굴이 조금씩 들어왔다.
자신의 치료성과를 당연한 결과인 양 덤덤히 설명하던 교수님의 턱이 조금씩 치켜
올라가고 있는
것도 그제야 눈치챌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감탄과 존경을 담아서
"
와
~~~." 하며
교수님을
향해
엄지를 연신 추켜올렸다.
그러자 교
수님은 애써 별거 아니라는 듯 수줍게 미소 지었다.
한동안 나는,
이
기쁜 소식이 모래성처럼 부서져 버릴까 봐 입밖에 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언니에게도 당분간은 입방정 떨지 말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경거망동하지 말자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주의를 주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날이 내 인생에서 제일 드라마틱하고 행복했던 날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다음 날
5층 병동의 간호사 선생님들과 외국인 방장을 잃은 남겨진 동기들의 축하 속에 병실을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혼자만의 축배를 들었다.
힘든 치료를 씩씩하게 잘 견뎌준 언니가 너무 대견했고, 언니의
온갖
짜증과
변덕을
잘 견뎌준 나도 너무 대견스러웠다.
그동안의 긴장이 풀려서일까 몇 캔 마시지도 않았는데 금세 취기가 올라왔다.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
슬슬 눈이 감겨왔다.
그리고 이미 아득해져 가는 8주간의 중국 생활이 꿈을 꾸는 것처럼 몽글몽글 스쳐 지나갔다.
호텔방
안
에서 커피포트에
미역국을 끓이다
호텔을 홀라당 태워먹고 평생 메이드로 살아갈
뻔했던 일.
매일 도시락통에 언니의 아침을 함께 담아주던 조식당의 친절한 직원들.
언니가 나
보다 더 똑똑하다고 말한 메리어트의 로봇.
오일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가 너무 더러워서 울며 뛰쳐나왔던 일.
중국에서 먹은 한국집 자장면.
늦은 밤
병실에서 몰래 구워 먹었던 마른오징어와 맥주.
서럽고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었던 많은 순간.
그리고,
두 달 가까이 모은 한 박스가 넘는 호텔 어메니티와 본의 아니게 얻게 된 본보이 플래티넘 등급.
마치 한 편의 성장 드라마를
꿈꾸다
잠에서 깨어난 것같이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을 품에 안은채 벚꽃이 만개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힘든 여정의 시작이
었던
겨울은
지나가
고
드디어
언니 몸에도 새 싹이 트는 봄이
찾아온 것이다.
keyword
감성에세이
그리움
아픔
Brunch Book
꽃은 아름답게 지지 않는다.
05
슬기로운 병원 생활
06
먹지 못하는 미식가를 위해 떠나는 여행.
07
빠이짜이찌엔 상하이~
08
스치듯 잠시 머물다간 행복.
09
내 귀에는 귀뚜라미 몇 백 마리가 살고 있어.
꽃은 아름답게 지지 않는다.
배터진마돈나
brunch book
전체 목차 보기 (총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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