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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터진마돈나 Jun 07. 2023

먹지 못하는 미식가를 위해 떠나는 여행.

한국에서 온 반가운 손님.

치료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언니는 부쩍 힘에 겨워했다.

침이 안 나와서 입마름이 심해졌고 변형된 입맛 때문인지 달콤한 케이크에서 고무맛이 난다고 했다.

삼키는걸 영 힘들어하는 언니를 위해 나는 중국 사이트에서 믹서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과일이며 곡물, 닭고기 할 것 없이 몸에 좋다는 많은 것들을 갈아버렸다.

언니가 좋아하던 단팥빵에서도 걸레맛이 난다는데 어차피 뒤틀린 입맛 때문에 씹는 것도 고역이라면 차라리 몽땅 다 갈아버리자. 그래서 눈 딱 감고 후딱 마시게 해 보자 뭐 그런 속셈이었다.

그렇게 어르고 달래서 겨우 두 세입 먹는 시늉을 하던 언니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 더 이상은 못 먹겠어"라고 미안해한다. 

'이런 젠장.' 실패다.

 나는 그런 언니를 차마 더 이상 밀어붙이지 못했다.


결국, 그날 이후로 많은 음식들이 버려졌고 버려진 음식의 무게만큼 언니의 몸도 가벼워졌다.

그동안은 교수님이 신기해할 정도로 언니의 상태가  멀쩡했고  "나한테는 부작용이 안 올 건가 봐" 하며 의기양양해하던 언니였는데.

우리는 언니의 그 촐싹 맞았던 입을 함께 나무랐다.

한국에서 가져온 레토르트식품도 동이 나고 밖으로 나가지는 못하고 언니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친해졌던 이들이 떠나고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진 복도에도 언젠가부터 언니는 나가지 않는 시간들이 쌓여갔다.




입원 2주 차 때부터는 병원밥이 입에 안 맞아 힘들다고 선생님을 겨우 설득해서 매 주말마다 특별 외박을 허락받았다. 우리는 그 꿀 같은 시간을 병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에서 함께 보냈다.

원래는 언니가 나를 위해 한 달간 잡아둔 숙소였는데 병실에 언니를 혼자 둘 수 없어서 평일에는 조식만 먹으러 다녀오고 주말에서야 언니와 함께 편한 침대를 쓸 수 있었다.

항암 초기에는 주말마다 호텔 헬스장에 내려가 한 시간씩 운동도 하고 반신욕도 하고 자기 속옷까지 직접 빨던 언니가 모든 걸 조금씩 버거워하기 시작하던 어느 날이었다.

문제의 그날도 잘 먹지 못해 컨디션이 안 좋았는데 언니는 운동을 하겠다며 굳이 내려가 자전거를 타고 올라왔다.

그러고는 샤워장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조용히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뛰어들어갔을 때에는 빨다 만 속옷이 널브러져 있었고 언니는 그 옆에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언니.. 왜 그래. 어디가 아파?"라고 놀라 묻는 말에

"나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어.. 힘이 점점 빠지고 어지러워서 서있지도 못하겠어.."라고 말하며 엄마에게 도와달라 요청하는 아이처럼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그런 언니에게 버럭 화를 내며,

"그러니까 내가 운동하지 말랬지.. 먹은 것도 없으면서 무슨 힘으로 운동을 한다고 고집을 부려~ 속옷도 내가 빨아준다니까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왜!!!." 하며 언니 옆의 팬티를 확 집어 챘다.


나는 언니의 고집에 화가 났고, 그런 가여운 모습으로 내 앞에 주저앉아 있는 언니도 너무 싫었다.




언니를 마저 씻기고 데리고 나와 침대에 눕힌 나는, 단호한 말투로 "이제부터 먹지 않을 거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누워만 있어"라고 말했다.

거의 협박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건만 언니는 "알았어.. 근데, 나 배고파." 하며 배시시 웃는다.

'아 진짜 이 여자 '


이대로는 안 되겠어.


우리는 점점 지쳐가는 서로를 위해 금, 토, 일 일정으로 병원을 벗어나 와이탄에서의 멋진 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나는 곧장 한국에 있는 친동생과 친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생들은 내가 적어 보낸 일용할 양식과 언니가 아플 때마다 자기에게 주는 보상이라며 병실 침대에 누워 주문했던 택배 한 꾸러미를 안고서 한걸음에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날아와주었다.

그녀들을 마중하러 푸동공항으로 향했을 때의 나는 제갈량을 얻으러 가는 유비의 심정처럼 벅차고 비장했다.


저 멀리 그녀들이 보였다.



딱 봐도 내가 아는 그녀들의 뒤통수였다.

양손에 케리어를 끌고 폴짝폴짝 뛰어오는 마흔 살의 귀여운 내 동생들.

그렇게 짧지만 뜨거웠던 우리들의 와이탄 여행이 시작되었다.



평소에 미식가를 자처했던 언니는 동생들을 위해 아주 힙한 레스토랑을 예약해 주었고 그곳에서 우리들은 언니의 아바타가 되어 언니가 추천하는 음식을 먹고 언니가 페어링 해준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보기만 해도 입맛이 다셔지게 영혼까지 끌어 모은 리액션을 연기했고, 듣기만 해도 침이 질질 나도록 갖은양념을 쳐가며 맛에 대한 온갖 찬사를 퍼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모든 노력은 우리의 식욕만 더 끌어올렸을 뿐, 언니는 언니 앞에 놓인 호박수프와 두 시간째 대치중이었고,

그 정도의 내공이라면 눈으로 호박수프를 삼키는 게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점점, 동생들과 나는 언니가 따라주는 와인에 취해갔고 속도 없이 낭만적이던 와이탄의 야경에도 취해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언니도 우리들의 이야기에 취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모두가 기분 좋게 취했던 그 밤.

친한 동생은 평소 이벤트의 여왕답게 준비해 온 것들을 가방에서 꺼내왔다. 

그리고 언니를 위한 응원문구가 새겨진 하얀색 티를 우리들에게 한 씩 나누어주었다.

급하게 잡은 일정이었는데도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이런 걸 준비해 올 생각을 했을까.

다정하고 배려 깊은 그녀가 그날따라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다.

우리들은 옷을 나누어 입고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동방명주를 배경 삼아 결의에 찬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속의 언니는 나와 단 둘이었을 때보다 분명 밝아보였다.

그렇게 인스타용 사진을 몇 장 찍고 난 언니는 일부러 나에게 동생들과의 시간들을 내어주기 위해 먼저 방으로 돌아갔다.


언니가 떠난 방에는 나를 위로해 주는 동생이 있었고, 그날 나는 언니가 나에게 기댔듯 내 동생에게 기대어 많은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동생이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던 그날 밤.

발렌타인 21년을 울고 웃으며 모두 비워버리고도 나는 잠을 쉬 이루지 못했다.


아마도 오늘보다 더 힘들어질 내일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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