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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가비 Oct 27. 2024

[100-49] 끼니보다 식사

  매일 보게되는 가을의 풍경중 하나는 추수가 끝난 논과 황금물결이 펼쳐진 채로 있는 논의 대비다. 추수한 곳은 농사가 잘되었나보다 싶고, 아직인 곳은 좀 더 기다려야 하는구나 여긴다.


  누렇게 익은 벼를 보면 농부가 일년간 들인 땀과 수고가 눈부신 결실로 맺어져서 황금빛으로 보이는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들 쌀을 많이 먹지 않아서 쌀값이 형편없어진 것에 안타깝다.(자주 밥대신 빵을 먹는 나부터 반성해) 벼농사를 짓는 데 얼마나 많은 수고와 애씀이 들어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밥을 먹는데 시간을 많이 들일 여유가 없다. 그래서 가벼운 한 끼를 추구하다보니 패스트푸드나 배달 음식을 많이 먹게 된다.  몸과 가족들에게 사과해야 할 일이 많군.


 끼니와 식사의 어감은 정확하게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끼니는 '떼운다'는 동사와 어울리고 식사는 '챙겨먹는다'와 어울린다. 이정도면 어느정도 구분되지 않나. 나는 평소에 끼니를 떼운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나의 생활이 반영된 것이리라. 밥을 꼭 챙겨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고 배고픔이 가시도록 뭔가를 먹으면 된다는 정도였기에 바쁜 일정이 방해받지 않는 편리함을 추구했다.


 인스턴트 식품도 좋아하고 빵이나 과자 등의 간식류와 분식류의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먹는다. 역설적이게도 다이어트할 때 바디프로필 촬영 등을 앞두고 몸을 만들기 위해서 식단을 챙겨 먹을 때 훨씬 건강하고 클린한 음식을 먹었다. 재료를 고르고 본연의 맛을 살리고 영양소 비율을 고려하는 과정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식구들도 식단을 같이 챙겨먹이는게 낫겠다 싶을 만큼.


 반조리 식품이나 냉동 식품을 냉장고에 가득 쟁여놓고 평일에는 식구들에게 알아서 챙겨먹으라고 했다.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는 주말에나 음식을 만들어서 같이 둘러앉아 식사다운 식사를 했지 대부분 스케쥴이 들쑥날쑥이니 평일엔 같이 밥먹을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다. 그런데 주말마저도 내가 모임이나 연수에 참여해야 하거나 일정이 있으면 간단하게 차려놓고 나가는 정도였다.


 아이들이 "나 이따가 뭐먹어?" "점심에 뭐먹어?" "저녁에 뭐먹어?"를 번갈아 물어보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바쁘기도 했고 굶기는 거 아니니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한번씩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엄마 집밥을 그리워할게 별로 없으면 어떡하지? 엄마의 온기와 정성, 손맛을 기억하고 싶은 데 생각나는게 별로 없으면 마음이 허전할 것 같아서 반성이 되었다. 애들이 어렸을 때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엄마 노릇에 충실하려고 뭐든지 열심히 해줬는데 이제는 각자도생에 가까운 생활이 되었다.


 요즘은 주말부부로 지내며 둘둘씩 따로 생활하고 있다보니 나는 딸아이만 온전히 챙기면 된다. 등교전에 아침으로 뭘 먹여 보낼지, 저녁에는 어떤 걸 해먹일지 메뉴를 고민하는 게 일과중 하나가 되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고 있는 재료들을 파악하고, 텃밭에서 수확할 수 있는 가지나 호박, 파는 상시 구비되어 있으니 조합해서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떠올려보곤 한다.


 반찬도 반찬이지만 중용한건 밥이다. 밥이 맛있으면 반찬 가짓수가 별로 없어도 한 그릇 뚝딱이다. 그동안은 한 번 해놓으면 밥솥에서 수분이 날아갈때까지 오랜 시간 있었던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그냥 먹곤 했다. 식구들에게 제일 미안한 부분이다. 도정해놓은 햅쌀로 밥을 지었더니 확실히 밥맛이 다르다. 아이도 그걸 바로 느끼는지 밥이 너무 맛있다고 했다. 이 맛을 자주 보게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햅쌀로 지은 밥에  밭에서 따온 호박을 채썰어 호박전을 부쳐내니 아주 꿀떡꿀떡 잘 넘어간다. 밥 한공기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만들어서 금방 먹으니 온기가 고스란히 있어서 이기도 하지만 제철 재료가 가진 본연의 맛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매일 정겹게 마주 앉아 식사를 챙겨 먹는 맛을 느끼며 자연이 주는 선물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소홀했던 엄마 노릇을 좀 만회해보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하고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할 수 있는 동안은 품을 들여서 만들여먹이고 싶다. 딸아이의 기억에 엄마가 해준 음식 중 어떤 것들이 '엄마밥'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지금 우리가 보내는 이 시기의 특별함 때문에 요즘에 같이 해먹은 음식들이 좋은 기억으로 많이 남을 것 같다. 더 다양하게 메뉴를 고민해 봐야겠다. 잠들기 전에 내일은 뭐해 먹을지 정해봐야지.


 우리 같이 맛있는 식사를 하자. 급하게 대충 떼우는 끼니 말고 소박하더라도 정성스럽게 차려낸 식사를 자주 챙겨먹자. 다음주 주말에는 아들과 남편에게도 갓 지은 밥맛을 보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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