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피티를 받아?"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내가 오래 운동을 해온걸 아는 사람들이 자꾸 이걸 묻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헬스를 한 지 5년쯤 되었기에 혼자서도 충분히 운동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피티를 받느냐는 궁금증과 피티 비용이 만만치 않기에 '너 돈 많아?' 의 속마음이 담긴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들의 경험담이 녹아있는 에세이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몇 년전 헬스에 한참 재미를 붙였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 있다. '아무튼'시리즈 중에 <아무튼, 피트니스>는 작가가 운동을 하면서 체험하고 느낀 에피소드가 솔직하고 유쾌한 필체로 담겨 있었다. 그리고 표지에 적힌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라는 문장이 특히 좋았다. 근력 운동을 오래 해본 사람들은 안다. 반복해서 운동한 부위에 생기는 근육을. 내가 새겨 넣은 내 몸의 흔적을.
그렇다. 사실 이제는 어지간한 운동은 나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운동 기구 사용법도 거의 다 알고 등, 하체, 어깨, 가슴 등의 분할 운동법도 안다. 게다가 요즘은 워낙 유튜브나 인터넷에 정보가 넘쳐나기 관심만 있다면 찾아보면서 식단이며 칼로리 계산까지 다 스스로도 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굳이 비싼 비용을 들여서 나는 왜 피티를 꾸준히 받고 있는가.
사람은 편한 걸 찾게 되고 관습적인 걸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하던대로 하고 힘든 것은 피하게 되는 게 보통 사람이다. 편식하면 안되듯이 운동도 부위별로 골고루 해야하는데 나는 등운동을 제일 좋아해서 등 운동을 많이 한다. 그러나 하체가 발달한 체형이라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잘 안하려고 한다. 허벅지 살을 빼고 싶으면 더 많이 하체 운동을 해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피하고 싶다. 그러다 된통 걸려서 제대로 하체 피티를 받고 나면 며칠은 악소리나게 아픈 근육통에 시달리느라 계단 오르내리는 게 고역인 상황을 경험하곤 한다.
웨이트 초기, 소위 말하는 헬린이 시절에는 가뜩이나 두꺼운 허벅지 근육이 더 커지면 어떡하냐며 피티샘들에게 하체 운동 많이 안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따졌다. 그들의 대답은 "NO!"였다. 그것도 아주 단호하게. 그럴수록 하체 운동을 해야 더 탄탄해지고 지방이 연소되면서 군살이 빠지고 정리된단다. 그리고 생각보다 근육이 커지는건 엄청나게 힘든 일이니 걱정말라고 했다. 오히려 하체 운동을 안하면 셀룰라이트가 쌓여서 울퉁불퉁 살이 찔거라고.
피티를 받는 이유는 이렇게 내가 착각하고 있는 운동에 대한 지식도 바로잡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하기 싫은 운동을 억지로 할 수 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돈 주고 욕을 먹고 힘든 고통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혼자서 운동할 때는 중량을 올리면 힘드니까 할만한 수준에서만 계속 한다던가, '요만큼만 하자'하면서 나 자신과 자꾸 타협해서 세트 수나 갯수를 줄이는 일이 빈번하다. 그런데 피티를 받으면 트레이너샘이 중량을 조금씩 계속 올리고 강제로 시킨다. "두개만 더~! 하나만 더~!"하면서 한계까지 몰고 간다. 그렇게 해서 근육을 찢고 상처를 내면 근육통이 오고 상처난 근육이 아물면서 그 부위근육이 커지고, 근육이 커지면 근력이 세지게 되는 원리인 것이다. 열심히 하면 몸이 점점 바뀌는 게 보인다. 즉, 눈바디가 달라진다.
그동안 피티샘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 업종에서 오랜 시간 버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센터를 옮기거나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거나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바뀌면 적응하기 힘들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또 선생님들마다 특징과 장단점이 있어서 나름 도움이 되기도 했다. 주로 거의 남자 트레이너들에게 배웠다. 여자 샘은 두 명에게 배워봤는데 10회의 단기간 세션이었지만 그래도 여자 몸을 잘 아니까 대화가 잘 통해서 좋았다.
어떤 선생님은 칭찬과 리액션을 엄청 해주면서 북돋아주기도 하고 식단을 잘 못 지키면 다음에 더 잘하시라~정도로 다독이는 다정함이 있었고, 어떤 선생님은 욕쟁이 할아버지같은 느낌으로 거칠게 말하고 자존심을 건드려 내가 열받아서 악으로 열심히 하게 만드는 스타일도 있었다. 그때는 내가 돈 쓰면서 왜 이런 취급을 받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주 가끔 해주는 큰 칭찬에 기분이 다 풀어져버렸다.
어떤 동작을 몸이 익히는 순간은 숱한 반복 후에야 찾아온다. 트레이너는 그 반복을 함께 버텨주는 사람이다. 안 될 것 같고 꽉 막힌 것 같은 동작이 확 뚫리는 순간이 찾아올 때, 그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성취 자체만큼이나 기쁘다. ‘이 정도밖에 못해?’ ‘일을 이따위로 해서 되겠어!’ 타박이 넘치는 세상에서 사소한 동작 하나에도 ‘잘하셨어요’라고 돌아오는 칭찬, 어릴 때 고무도장으로 ‘참 잘했어요’를 네모 칸에 채워가던 기분이 난다. 그런 도장을 매번 말로써 찍어주는 동행이 있어 참 좋다. --- p.100
이 글처럼 피티샘들은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긴 하다. 그런데 지금 선생님은 무뚝뚝한 편인데다 내가 잘하는 운동보다는 잘 못하는 운동을 콕 집어서 시키면서 "이거 연습 많이 안했죠?"라며 쓴소리를 한다. 한때는 너무 서운해서 내가 마음에 안드냐고까지물어봤더니 "제가 다른 회원들에게 회원님칭찬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르시죠?"란다.우수회원이라고.
내가 오만해질까봐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에 귀한자식 엄하게 키우는 부모처럼 대하는 그 선생님만의 방식인 것을 이제는 나도 안다.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피트니스의 문제라면 잘하게 될수록 복근 운동 세트 수가 늘어나는 것처럼 오히려 할 게 더 늘어난다는 점이다(아차, 삶도 그런가. 삶에서도 뭔가를 잘할수록 더 많은 책임이 따르게 되는 것 아닌가.) --- p.81
나는 또 이와 반대다. 매번 연습하라며 지적받는 못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기본으로 해야 하는게 몇 가지야. 스쿼트, 데드, 복근 등등. 나도 다 잘하고 싶지만 내가 무슨 전문 운동 선수도 아니고 이걸 매번 하려면 대체 하루에 운동을 몇 시간을 해야 하는건지. 지금도 가면 기본 2시간인데 말이야. 잘 안하는 것만 귀신같이 찾아내서 쓴소리 하는 쓰앵님. 이래서내가 피티를 계속 받을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
오늘도 구박을 받고 왔다. 살이 너무 쪄 있는데 전혀 감량을 못하고 있어 계속 못마땅해 하는 그 눈빛부터 뜨끔하다. 그렇다면 힘이라도 세졌어야 하는데 데드 리프트를 덩치 작은 회원과똑같이 중량 60밖에 못해서 비웃음을 샀다.(그 회원이 체구에 비해 엄청 잘하는거다) 체급으로 따지면80까지는 해내야하는거 아니냐며.
풀업을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연습했더니 그걸 칭찬하는 게 아니라 "풀업만 하느라 데드는 안했죠? 기본으로 5세트씩은 연습해야 해요."한다. 내 나름으로는 낑낑대며 열심히 연습해서 벤치 프레스 중량을 겨우 끌어 올려서 성공했기에 칭찬받고 싶어서 "40도 이제 몇 개 해요!" 했더니 누워서 하는 쉬운 운동만 연습했단다. 너무해 ㅠ ㅠ 내가 말을 말아야지.
요즘 주중에는 시골에서 지내느라 거기에서도 피트니스 센터를 등록해서 다니고 있다. 지난주 수업때 "샘~ 거기는 락조(마구리)가 악력기처럼 생긴 것만 있어서 원판 바꿔 끼울때마다 손이 아파요." 하소연을 했더니 남는 락조를 주겠다고 야심차게 찾으러 창고에들어갔다. 한참 있다 그는 빈손으로 나오더니 없네요.하길래"괜찮다"고 했다. 그냥 개인용으로 살까하다말이나 꺼내보자 싶어서 그 센터 대표님께얘기했더니 며칠만에 바로 사주셨다!와우.
오늘 피티받을 때 그 소식을 전하면서 이제 락조는 해결되었다고, 그런데 원판 1.25짜리가 없어서 벤치프레스 연습하기가 좀 불편하다는 얘기를 했더니 "아! 그래요? 1.25원판 그거 있으면 유용한데 드릴까요?" 하더니 두 개를 턱~ 건네 주는게 아닌가.
우와아~ 츤데레같은 우리 쓰앵님. 월요일에 그쪽 센터가서 내가 이걸 떡하니 꺼내면 다들 반응이 어떨지 너무 궁금하다. 나 이제 개인용 원판 들고다니는 여자야!!
맨날 나 구박만 하는줄 알았더니 운동 잘하라고 원판도 주는 쓰앵님의 자랑스런 우수회원 자리를 유지하기위해 못한다고 지적받은 거 골고루 열심히 연습해갈게유.
그러나 내가 데드랑 이것저것 연습해가면 아마도 우리쌤은 이두삼두 운동을 시키면서그러겠지?
"팔운동은 연습 안하셨죠?"
내가 피티를 계속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덧) 이책에서 제일 좋았던 문장.
인생에도 퍼스널트레이닝 같은 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아니지. 나와 내 주변 사람들, 또 다른 누군가가 서로에게 서로의 PT가 되어주니 살아가는 것이겠지. --- p.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