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가 던지는 질문들

자신과 또 다른 자신

by 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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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일시정지 없는 영화처럼 사람들은 끊임없이 걸어 다니고 테주강변으로 불어오는 5월의 미풍이 살랑살랑거릴 뿐인 목요일 오후. 북적거리는 관광지에서 벗어나 한적한 동네 햄버거 집에 안착한 때였다.


타임아웃 마켓은 리스본에서 가장 큰 로컬 재래시장이자 다양한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는 푸드코트이다. 뭔가를 먹어볼 생각으로 찾아갔지만 도저히 앉을자리가 나지 않자 우리만의 피신처를 찾아 나온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고 유명한 것을 일부로 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꼭 가지 않아도 되잖아'하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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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에서 햄버거를 주문하고 바깥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두리번두리번 기웃거리니 앉은자리 맡은편으로는 케밥을 파는 작은 가게가 보였고 유명세를 벗어난 늦은 오후의 거리는 한가로울 뿐이었다.

'거길 빠져나오길 잘했어'하고 생각하며 주문한 햄버거 세트가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


맞은편 케밥 가게에서 한 청년이 걸어 나온다. 그의 손에는 커다랗고 투명한 맥주잔이 들려있고 차가 오지 않는지 양옆을 확인한 후, 우리가 앉아있는 햄버거 가게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한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 햄버거집 주인과 시시 껄껄 유쾌한 담소를 나누는 것 같더니 곧이어 맥주가 가득 채워진 잔을 들고 다시 자신의 가게로 걸어 들어간다.


도시의 경계선이 이렇게 희미한 곳이 있다. 널찍한 통창 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결처럼. 투명하게 비어있던 커다란 잔이 남의 가게에서 채워지기도 하고 손님이 없는 시간을 틈타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오가는 우정 같은 것이 유머러스하게 느껴진다. 자기 일을 하면서도 빈틈을 허락하고 자주 웃을 수 있는 그들의 오후가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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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지고 보면 여행할 때 언어가 장벽으로 작용한다고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다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좋아서?' 라기보다는 이건 하나의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알게 되었다.

언어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다른 문화와 언어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처음 접해서 어색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는 도시의 생활 방식에 자연스럽게 적응한다. 어떤 것도 특이하다고 여기지 않고 그저 그들의 모든 구조를 내 안에 들여놓고 물 흐르듯 편승하는 것이다. 예전에 언어와 문화가 다른 국가에 간다는 것에(혹은 살아본다는 것) 결심은 필요했지만 용기가 필요한 적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자신에게 '그거 원래 다 그런 거 아니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자신이 가진 내재적인 특성이자 동시에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너무 당연해서 인지하지 못했던 것을 끄집어내어 잘 조각해 보면 인생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함을 발견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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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메뉴판을 짚어가며 소통했다. 그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포르투갈 사람이었고 나는 포르투갈어를 못하는 관광객이었다. 그는 나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주려 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 이해하려 했다.


여기 햄버거 세트에 감자튀김이 포함된 거예요?

네, 음료는 맥주로도 변경이 가능하고요.


오히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여유를 가지면 이렇게 처음 본 두 사람이, 앞으로는 볼일이 없겠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 빈틈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오히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황을 즐기기도 하고 심지어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랑 말해보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말을 걸기도 하는 편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뜻은 꼭 통하게 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낯선 도시는 자신이 또 다른 자신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준다. 새로운 환경을 제시하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자신이 조금 더 과감할 수 있고 주변을 사랑으로 대하는 사람이지 않느냐고, 다양한 상황을 던지며 되묻는다. 어딘가로 떠났을 때 그 시간이 특별해지는 이유는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긍정적으로 변모시킬 수 있었던 또 다른 자신을 좋아했던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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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까지 낯선 교통 노선을 공부하다가 잠에 든다. 잘 모르는 음식점에 들어가서는 툭 하고 메뉴를 주문하고 '괜찮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다. 눈치와 손짓을 써가며 원하는 것을 말해보려 한다. 어딘가에서 뭔가를 잘못 알아듣고는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이다가 '뭐 어때'하며 그냥 넘겨보기도 하는 것.


결코 편안한 것이 없는데도 계속 버티는 힘을 낸다. 아주 작은 경험의 구체적인 질감을 느끼고 생각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의 판단력과 직관을 믿는 경험치를 쌓아나간다. 햄버거를 주문하는 일처럼 너무나도 사소한 일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느끼는 여행의 모든 순간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그 시간은 아주 귀중한 자산이 되고 만다.


붐비던 거리를 벗어나 느긋한 오후를 지내고, 숙소에 돌아와 생각했다.

보내고 싶은 시간의 방식을 아는 것이 참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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