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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포토그래퍼의 선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디스틸러리 디스트릿

by 혜아

토론토에 디스틸러리 디스트릿(Distillery District)이라고 하는 명소가 있다. 1832년에 William Gooderham과 James Worts라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성을 딴 'Gooderham & Worts Distillery'라는 증류소 사업을 시작한 것이 이곳의 시초였다. 이 증류소는 위스키 제조로 유명했는데 철도와 항구에 인접해 있어 캐나다, 미국, 그리고 세계 각지로 위스키를 수출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수출 산업을 통해 캐나다의 경제와 산업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증류소 주변 지역이 주거지와 상업 지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현재도 디스틸러리 디스트릿은 토론토 다운타운의 중심지와도 매우 가깝고 도보 10분 정도 거리에 금융지구가 위치해 있다. 과연 당시 산업 혁명의 중심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초 미국에서 금주법이 시행되고 1920년대 후반 캐나다도 여러 경제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Gooderham&Worts Distillery'도 점차 위스키 생산량을 줄여나갔다고 한다. 이후 1950년대에 증류소의 대부분이 폐쇄되며 이 지역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다시 도시화가 진행되고 2001년에 시작된 대규모 재개발 프로젝트로 디스틸러리 디스트릿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예술가들의 상점이 모여있고,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 멋진 부티크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오래되고 아름다운 붉은 벽돌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야외 카페의 테라스에는 햇볕을 쬐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 단단해 보이는 벽돌 마감, 오래된 창문, 철제 난간들에서 고풍스러움이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며 한 상점을 향해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청년이 웃으면서 어떤 종이를 내밀었다. 어깨에는 커다란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걸고 있었다. '사진을 사라는 건가?' 하지만 이제 막 구경을 시작해서 딱히 사진을 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괜찮다는 의미로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가 건넨 종이를 자세히 보고,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한 순간을 사진으로 포착하여 무료로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 방식이 독특하고 재미있었다.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학교에서 발행되는 뉴스 페이퍼의 한 지면에 우리의 사진이 담겨있었고, 헤드라인에는 <Happy People's Newspaper>라고 적혀있었다. 행복한 사람들이라는 신문의 한 지면에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사진이 귀엽게 담겨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관광객에게 사진을 팔려고 하는 사람으로 오해했고, 너무나(정말)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낯선 사람에 대한 단순한 오해가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주변에 경계 태세를 갖추고 지냈던 것일까. 혹시 집을 나선 후 보이는 모든 것들을, 이런 의심의 눈초리와 불편한 렌즈를 끼고 보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것에 속지 않기 위해서 혹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정당화 할 수 있을까.

지하철역이든 어디든 자주 보이는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끊으세요!'라는 표어를 너무 많이 봐서 그래 하며 그에 대한 나의 오해를 조금이나마 변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교양 있는 척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던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일 것이다.


그제야, 그의 옆에 커다란 짐가방 같은 게 보였고 옆면에는 'Memory photos'라고 쓰인 글자를 발견했다. 나는 그에게 그 뉴스 페이퍼를 받아 들었고 여러 번 고맙다고 외쳤다. 두어 시간이 흐른 후, 이곳을 떠나면서 그가 있던 장소를 다시 지나치게 되었다. 여전히 밝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그들에게 깜짝 선물을 나누어주고 있는 그 사람. 그러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나는 '아까 멋진 사진, 정말 고마웠어'라고 고마움을 다시 표현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우리에게 아름다운 벽돌 건물 앞에 서보라고 한다. 이리저리 구도를 맞추더니 이번엔 두 장의 뉴스페이퍼를 나에게 내민다. 두배로 미안했다.


내가 정의하는 여행의 매혹적인 이유가 바로 이런 순간에 있었다. 야경이 멋진 호텔방이나 그에 딸린 수영장보다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포토그래퍼를 우연히 만나는 일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순간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조금은 더 다정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괜찮으니 어디 한번 더 나아져보자고, 여행은 이렇게 토닥거려 주기 마련이다.



혹시 이 글을 읽어주셨다면 감사드립니다. 춘곤증은 가볍게 이길 수 있는 따뜻한 3월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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