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좋은 커피와 베이글을 먹고 기운 차리기
팀홀튼(Tim Hortons)은 캐나다의 대표적인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이다. 캐나다의 아이스하키 선수인 팀 호턴(Tim Horton)이 1964년에 창립했으며 첫 매장은 온타리오주 해밀턴이라는 항구도시였다.
원래는 "Tim Horton Donuts"이라는 이름의 도넛 매장으로 시작했다가 이후 도넛과 커피를 함께 판매하는 카페 프랜차이즈로 확장되었다. 팀홀튼의 이러한 사업 확장 배경에는 해밀턴시의 전직 경찰이자, 호턴의 사업 파트너였던 론 조이스라는 인물이 있다. 그가 캐나다 내에서 빠르고 공격적으로 매장을 확장하여 1991년에 무려 500호점을 오픈하였다.
팀홀튼은 현재 캐나다에만 4,300여 개의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만큼 캐나다 어느 도시를 가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맛있는 커피는 물론, 매장에서 갓 구운 베이글, 페스츄리, 도넛뿐만 아니라 샌드위치나 수프, 따뜻한 오트밀까지 아침 식사로도 충분한 다양한 메뉴들을 판매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 그러나 이 브랜드가 소위 '캐나다 국민 카페'라는 별명을 갖게 된 건, 무엇보다 합리적인 가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특히나 배가 고픈 유학생들에게 이 다정한 카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만만치 않은 물가를 자랑하는 캐나다에서 1.99달러의 따뜻하고 깊은 드립 커피, 2.08달러의 에브리띵 베이글은 춥디 추운 토론토의 겨울 아침도 따뜻하고 배부르게 지낼 수 있는 한 끼가 되기 때문이다.
예전에 토론토에서 지낼 때, 거의 매일 아침 팀홀튼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당시 다니던 어학원 옆에 꽤 오래되고 커다란 팀홀튼 매장이 있었다. 아침 7시. 매장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고소한 베이글 냄새가 아침을 깨웠고,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주문을 하기 위해 긴 줄을 서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의 손에서 맛있는 커피가 내려지고 오븐에서는 곧 손님들에게 나갈 달콤한 빵이 노릇하게 데워지고 있었다. 적당히 깔끔하고 오래된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정감이 가는 그곳은 누구라도 부담 없이 들어와 든든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매일 같이 바쁜 아침 시간, 그 팀홀튼 매장에는 이상하게 여유로룬 공기가 흘렀다. 주문을 하러 가면, 카운터 안의 그 혹은 그녀와 나 사이에는 언제나 가벼운 대화가 오가고 한 번씩은 꼭 웃게 된다. 뒤에 줄을 선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노심초사할 이유는 없다. 그 짧은 시간에 대해 눈초리를 세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건 특별한 이유 없이 분위기로 느낄 수 있다. 그저 이 공간에 내재된 자연스러운 기질 같은 것이었다.
다시 도착한 토론토에서 잡은 숙소가 우연히도 그때 그 매장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없어졌으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라고 생각하며 지도를 켜보니 다행히 아직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지냈던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걸어서 5분 정도면 도착. 6년 만에 다시 이곳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날이 된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말도 안 될 정도로 똑같이 분주한 카운터와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보였다. 예전에 봤던 오래된 영화를 다시 보는 느낌. 여전히 부담 없는 가격과 친절한 사람들, 고소한 깨가 듬뿍 올라가 있는 에브리띵 베이글까지 모두 그대로였다.
6년 전 마음을 놓고 때로는 위로를 받으며 하루하루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었던 분위기까지.
물론 다른 사람들의 어떤 도전이나 더 큰 선택에 비하면 별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당시 개인적인 성격이나 그때의 상황을 고려해 봤을 때 다른 나라에서 반년을 살아본다는 것은 나에게는 대단한 도전이었다.
외부의 소리를 잠시 차단하고 오직 자신의 선택만으로 상황을 뚫고 나가는 것을 처음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서 한 선택이라 한들 때로는 확신이 부족하여 불안에 휩싸이기도 하는 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때, 온갖 따뜻하고 맛있는 것들을 부담 없는 가격에 제공하는 이 다정한 카페를 드나드는 것이 모닝루틴과도 같은 일이었다.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되지 말고 그냥 이 맛 좋은 커피와 베이글이나 먹고 기운을 차려! 하고 말해주는 동네 카페. 그리고 아마도,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만날 일이 없을 세계 각지의 친절한 친구들과 함께여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팀홀튼을 자주 생각하곤 했다. 아 이런 따뜻한 카페가 국내 어디라도 있으면 매일 가고 싶을 거야 하고. 그리고 2023년에 팀홀튼이 국내에 상륙했다. 신논현역에 국내 1호 매장이 생겼고 매장을 오픈하기 전에는 많은 팔로워를 가진 유명 인플루언서들을 초대해 엄청난 마케팅을 펼쳐왔다.
첫 매장이 문을 열고 세 달 정도 후, 분위기가 잠잠해질 무렵 강남 교보문고에 갔다가 우연히 그곳에 들르게 되었다.
강남 뱅뱅사거리 한복판에 휘황찬란한 건물에 입점해서인지 동그란 구멍이 송송 뚫린 외관부터 압도되는 것 같았다. 101평 규모의 넓고 탁 트인 공간, 높은 층고, 곳곳에 달린 커다란 금색 단풍잎, 엄청나게 깔끔한 인테리어가 고급스러워 보였다. 나를 놀라게 한건 우월감을 과시하듯 우아함을 뽐내는 인테리어뿐만이 아니었다.
특히 좋아하던 프렌치 바닐라 라테의 가격은 현지보다 두 배가 넘어갔고 아메리카노마저 가벼운 마음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가격은 아니었다. 팀빗이라고 하는 작은 도넛 10개가 들어있는 박스 패키지는 토론토에서 두 박스를 살 수 있는 가격에 1,000원을 더 줘야 한다. 현지의 시장과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그런 가격 책정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항상 그리워하던 곳이었지만 그날은 왠지 모르게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아서 매장을 쓱 둘러보고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개인적으로 내게 진짜 팀홀튼은 친절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 그 오래된 매장, 하나뿐이다.
혹시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