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대신, 카나리 카페
오후 두 시를 조금 넘긴 시간, 하지만 카나리 커피에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소파 좌석에 앉아 카페의 내부를 천천히 뜯어봤다. 가운데에 있는 목제 테이블이 묵직해 보이나 노란색 철제 의자가 공간을 조금 귀엽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는데, 가만히 보니 왠지 모르게 영화 '카모메 식당'이 생각났다. 정말이지 이 카페는 그 영화의 현실 버전이 아닐까.
카운터 앞에 있던 일본인 사장님이 카모메 식당 속 사치에와 묘하게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친절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마음은 크게 없는, 욕심 없는 가게 주인. 이 영화는 사치에라는 캐릭터가 핀란드 헬싱키에서 작은 일본 식당을 운영하며 일어나는 일상 속 잔잔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캐릭터들을 보면 굉장히 다이내믹하다고 느껴진다.
주인공인 사치에는 연고도 없는 핀란드에 오니기리를 판매하는 식당을 연다. 그리고 서점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식당일을 돕게 되는 미도리는, 어디든 떠나고 싶어서 무작정 핀란드로 온 인물이다. 눈을 감고 지도에 점을 딱 찍어서, 나오는 나라로 가자! 하고 온 곳이 핀란드의 헬싱키였던 것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 완전히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보고, 아무 이유 없이 지구 반대편까지 가보는 일. 내면의 호기심을 따라 모호함의 세계의 몸을 던질 수 있는 건, 보통의 마음가짐으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말이다. 사치에의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다가 미도리는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꼭 떠나고 싶었어요" 그러자 사치에는, "꼭 그래야 할 땐 해야죠"라고 답한다. 단순한 대화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두려움을 마주하고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려는 두 인물의 선택.
6년 전 토론토에서 지낼 때 친해진 일본인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아야. 그녀는 몇 년 간 큐레이팅 라이프 스타일 샵에서 일하다가 영어를 배우러 토론토로 왔다고 했다. 일하던 곳에서 총괄 매니저 직급까지 달았지만 그만두었다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그녀는 자신에게 더 중요한 것을 찾으러 온 것 같았다. 각자 먼 나라에서 1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낯선 대륙에서 만난 우리는, 종종 만나서 서로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많은 대화를 했다. 그때 우리가 나눈 대화를 떠올려보면, 그건 진정한 우정의 관계였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 시간은 상대방에 대한 아무런 편견과 잣대 없이 서로가 걸어온 길을 대단하다고 생각해 주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대화로 가득 차있었다.
아야는 언젠가, 자신의 큐레이팅 라이프스타일 샵을 열고 싶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가 가고 싶다던 토론토의 한 가게를 방문했다. 세계 각지에서 모아 온 인테리어 소품을 판매하는, 개인이 운영하는 한적하고 작은 샵이었다. 가게를 둘러보며 아야는 동경 어린 눈빛으로 자신도 이런 공간을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그럼 저기 가서 가게 주인분께 말 좀 걸어봐!" 내가 말했다.
그 유쾌하고 친절했던 캐네디언은 우리와 대화를 나누며 가게 안의 소품들에 대해 하나하나 소개를 해주었다.터키에서 건너온 아름다운 실크 스카프, 모로코에서 가져온 그윽한 조명, 오래되고 멋진 빈티지 그릇들...자신의 정성이 담긴 공간안에서, 애정을 품은 물건을 소개하는 그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아야의 꿈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시도해 보세요, 어렵지 않아요. 하고 싶은 걸 해야죠"
그의 말 한마디에 묘한 힘이 느껴졌다. 그건 모르는 사람의 꿈을 진지하게 생각치 않고 그냥 던지는 말이 아니었다. 이미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으로서, 마음속에 있다면 반드시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힘을 주는 말이었다.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태도와 생각은, 이민자의 나라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그럴까. 나는 아야가 그녀의 도시, 도쿄에서 꼭 자신의 가게를 열었으면 좋겠다.
카나리(canary)는 '카나리아'라는 노란색 새를 말하더라고요. 카페의 대문에 노란색 새 그림이 걸려있는 걸 그제야 이해했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