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축된 가능성의 커피 테이블

도시횡단 (2)

by 혜아

도시횡단 1편에 이어-


ⓒ 2025 by hyeah

초록은 영원하고 분홍은 일시적이다. 영원하고 일시적인 것이 만나는 계절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증폭시킨다. L과 나는 한참을 걷던 중 어디선가 라일락 향기가 나는 걸 알아챘다.


라일락은 항상 이렇다. 꽃의 존재를 우선 후각적으로 알아차리고 진짜 눈앞에 나타나는 건 그다음이다.

대학교 친구인 L과 나에게 라일락 하면 떠오르는 공통된 시간이 있다.

"아니 그때 우리 합정 쪽에서 산책하다가..." 둘 중 누구 하나가 이 문장을 언급하면 "그래 거기 라일락 향기" 다른 한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두 친구는 합정, 산책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자동반사적으로 라일락 향기가 생각나는 것이다.


그때도 역시 골목 어귀에서 부드럽고 강렬한 라일락 향기가 퍼져 나왔다. 초여름 바람이 살살 부는 이른 저녁이었는데, 마찬가지로 한 손에는 커피를 들고 엄청난 걸음수를 자랑하며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사소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공통된 특성이 지금까지 우정의 이유를 대변한다.


ⓒ 2025 by hyeah


아무튼, 모든 면에서 일반화라는 것은 그리 유쾌하진 않은 것 같다.

"너네 지금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평생 간다. 대학이나 사회에 나가면 친구고 뭐고 없어"라는 등의 말을 학교에서 자주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제는 옛말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에는 분명히 그런 말을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어린 시절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친구를 소중히 대해라'라는 의도일 수 있지만 자칫하면 학창 시절 이후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듣다 보면 사회에 나가서, '어차피 대학이나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오래갈 수 없잖아' 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생각이나 마음의 태도에 공고한 프레임이 덮혀지는 순간 자신의 삶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성의 문을 닫아 놓게 되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학교에서 그런 소리를 들었을 때, 그 말을 백 퍼센트 믿지 않았던 것 같다. "정말 그런 건가? 정말 사회로 나온 사람들은 서로에게 그렇게 인정사정없이 대할까?" 하다가도 "어쩜 그렇게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지?"하고 은연중에 생각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친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조금씩은 더 성숙해지면서 만난 사람들, 인생의 여러 가지 흐름에 따라 마음의 결이 맞는 친구들을 충분히 만날 수 있다는 것. 사회는 인정사정없지만 개인과 개인의 관계는 또 그렇지 않으니까.


역시 그랬다더라, 이랬다더라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리며 미리 문을 닫아놓는 것은 우리의 세계를 비약적으로 축소시킨다. 어떤 일도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 단정 지을 수 없다.


ⓒ 2025 by hyeah


하루키의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삶에서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고정된 관점이나 마인드를 다양한 방식으로 말랑말랑하게 반죽해 주기 때문이다.


세계의 존재 양식에는 실로 다양한, 더 분명하게 말하면 무한한 가능성이 포함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는 개개인은 가능성을 어느 정도는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응축된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커피 테이블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나는 온 힘을 쥐어짜 의심을 버리고 나 자신의 마음을 믿었다. 그리고 나와 그림자는 단단한 벽돌로 이뤄져 있을 두꺼운 벽을 반쯤 헤엄 치다시피 통과했다. 마치 부드러운 젤리층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처럼.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감촉이었다. 그 층은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무언가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분명히 인간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테니, '세계는 응축된 가능성으로 만들어진 커피 테이블'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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