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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진 Nov 11. 2021

12. 슬픔은 모유를 타고 대물림된다.

우리가 태어난 목적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성장을 통해 자아를 완성해 나간다. 삶은 우리에게 저절로 주어져, 고통 아래에 보석을 감추고 있다. 저절로 주어진 삶이기에 보잘것없고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고통 아래의 보석을 발견하기 전까지 삶을 속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나라는 존재는 왜 태어났을까? 정말 밥만 먹고 똥 싸고 살아가려고 태어났을까. 이렇게 키울 거면서 왜 낳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정말 남동생을 낳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세상에 태어난 애물단지 인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존재인가, 싶었다.


엄마와 아빠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죽일듯한 부부 싸움도 마찬가지였다. 돈 때문에 싸우고, 자식들 때문에 싸우고,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했던 대화가 몸싸움으로 번졌다. 급기야 아빠는 부엌에서 칼을 빼 들고 엄마를 죽이겠다고 목이 칼을 겨누었다. 칼로 엄마를 위협하는 아빠와 그냥 죽여 버리라고 바락바락 악을 쓰는 엄마를 보며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4남매는 같은 환경에서 살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다 달랐다. 물론 부모님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아니었다.


 동생들에게는 폭군인 언니는 대외적으로는 모범생이었다. 엄마의 도시락이 마음에 안 들어 직접 김치를 볶거나 어떻게든 돈을 타내서 문구점에서 파는 소시지라도 볶아 도시락을 싸갔다. 스스로 자리를 지켜냈다. 부모님은 언니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셋째 여동생은 엄마가 돈을 주지 않으면 절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엄마에게 악착같이 받아내어 밥그릇을 챙겨냈다. 독종이었다. 막내딸이고, 아빠를 빼다 박은 외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빠가 유난히 동생을 예뻐했다. 그 어려운 형편에 조금씩 돈을 차곡차곡 모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사야 직성이 풀렸다.


 남동생은 엄마에게 유일하게 사랑을 받는 존재였다. 도시락이나 준비물 생일 따위를 걱정하지 않는 대신, 엄마가 안 계시면 기 센 누나들의 고달픈 심부름꾼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나, 나는 자기 밥그릇도 고수하지 못했다. 언니에게 빼앗기거나 양보를 강요하기도 전에 이내 그 자리에서 포기해 버렸다. 정당하게 요구해야 할 것조차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엄마는 나만 보면 짜증이 나는지 ‘병신 같은 년’이라고 불렀다.  나는 진짜 병신이 되어 갔다.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거나 집안일을 시키면, 언니와 여동생은 끝까지 못 들은 척도 잘했다. “내가 그걸 왜 해야 하냐”며 강력하게 자기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런데 나는 눈치를 보다가 엄마의 목소리가 커지면 벌떡 일어났다. 일을 도맡아 하고, 엄마가 시키기도 전에 상황 파악하고는 스스로 움직였다.



나는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아이, 말 잘 듣는 아이, 착한 아이, 집안의 고민을 스스로 짊어진 ‘애 어른’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사랑받지 못할까 봐, 버려질까 봐, 두려운 아이입니다.’  


  





우리 엄마는 2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엄마의 형제는 위로, 큰언니와 오빠가 있다. 엄마의 언니인 큰 이모는 극심한 가난으로 일찌감치 서울의 친척 집으로 대가 있는 유학(?)을 떠났다. 말이 좋아 유학이지, 식모살이나 다름없었다. 엄마는 초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하고 집안의 맏이 노릇을 했다. 누에를 치고, 목화솜을 따는 등, 농사일을 돕거나, 공장에 다니며 외삼촌들의 학비를 벌었다.     


 엄마는 유난히 자매 중에서 외할머니의 외모뿐 아니라, 말투, 성격을 제일 많이 닮았다. 아빠는 가끔 “너희 엄마 하는 거 보면, 장모님이 장인어른을 그렇게 쥐 잡듯 했는데, 어찌 그렇게 똑같은 줄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언젠가 돈타령만 늘어놓는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엄마가 만약에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그럼, 가장 하고 싶은 것이 뭐였을 것 같아?”    


 

엄마의 대답을 기다리며 생각했다. ‘엄마는 당연히 좋은 집? 해외여행? 골프? 좋은 차? 보석? 그렇게 대답할 거야.’라고. 그런데 엄마로부터 뜻밖의 답변을 들었다.     


“공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밭에서 누에를 치는데, 애들이 학교 가는 모습이 제일 부러웠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한동안 회한에 잠겨 계셨다.      



학교에 가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는 엄마, 당신의 생일이 언제인지 기억도 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엄마,

이상하리만큼 제일 말 잘 듣는 나를 제일 구박하며 ‘병신’이라고 부르는 엄마, 누가 ‘다리에서 주워 왔다’는 말을 하면, 다리에 버려진 아이이길 바랬다. 진짜 엄마가 나를 찾아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나의 바람이 절대 이루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울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유난히 엄마를 많이 닮은 나의 얼굴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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