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끔… 받는 칭찬은… 나를 춤추게 해…
어느새 칭찬을 바라고 있던 나
한때 수영에 꽂혀서 매주 꼬박 수영장에 나가는 날이 있었다. 이제는 조금 제법 물속에서 여유를 가지게 되고, 점차 물살을 가로지르는 힘이 생겨 수영에 재미를 붙이던 시기였다. 그런데 가끔 원하는 수영을 마음껏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임에도 기분이 영 찝찝하고, 왠지 모르게 답답하여 저기압을 느낄 때가 있었다. 당시의 수영 일기들을 꺼내어 살펴보면, 그 가끔 느끼는 저기압 날들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칭찬을 바라고 있던 나’의 모습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욕심인 건지, 혹은 정말 지극히 나의 습관 중 하나인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난, 무언가에 재미를 붙이면 더 잘하고 싶은 욕망으로 이어져서 스스로를 약간 힘들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수영에 입문하기 전 빠져있던 달리기를 예로 들어보겠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집과 동네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던 시기에 가볍게 하천을 1km부터 시작해서, 점점 체력이 올라 2km, 4km 지금은 5km를 기본으로 뛸 수 있게 되었다. 초반에는 1km를 쉬지 않고 달리는 것만으로도 감격에 겨웠다. 하지만 그 행복은 잠시, 어느새 3km쯤 달릴 때도 성이 차지 않았다.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데'라는 마음으로 억지로, 입을 꽉 다물고 몸의 힘듦을 거부한 채 5km라는 숫자를 볼 때까지 버텼다. 희한하게도, 그토록 원하던 숫자가 워치에 찍혀있음에도 영 찝찝한 감정은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잘 생각해 보면 나가기 귀찮은 몸을 이끌고, 하천에서 조금이라도 달리기로 마음을 다잡은 나의 모습을 바라봐주지 못했다. 대신, 얼마나 많이, 속도가 지난번보다 느려지지 않게, ‘잘’ 뛰었는지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늘 결과만을 바라보게 되고 달리기 하러 나가기까지의 나의 노력, 과정을 무시하는 습관이 반복되었다. 많이 뛴 덕분에 소비한 칼로리처럼, 나의 마음도 텅 비어있었다. 재미에서 잘하고 싶은 욕심으로 바뀌고 나서부터.
수영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잘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날도 있었고, 유독 피드백만 많이 받고 돌아가는 날에 우울해하기도 했다. 피드백은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필수적임을 알면서도 못하는 게 더 커 보여서 스스로 가득 실망에 찬 적도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좀 흘러, 그간 기록해 둔 수영 일기를 읽어보면서 깨달았다. ‘아, 내가 어느새 칭찬을 바라면서 수영하고 있었구나.’
그렇다. 어느새 나는 칭찬을 바라고 있던 것이었다. 그때의 나는 칭찬을 받는 것이 잘하고 있다는 인정과 증명이라고 느꼈나 보다. 그래서인지, 칭찬을 받는 날은 아주 수영을 잘한 거 같아 기분이 들떠 집에 룰루랄라 웃으며 갔고, 피드백만 왕창 받는 날은 성장하고 있지 않은 건가 싶어 축 늘어진 어깨와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도, 이 깨달음을 얻은 후로부터는 칭찬의 덫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졌다. 지금은 오히려 피드백을 받을 때, 더 짜릿하고 배울 게 끊이지 않는 수영에 더 감탄하고 재미를 느끼고 있다. 칭찬을 받든 안 받든, 이제 이건 수영에 있어서 끼어들 자리가 없을 만큼 오로지 수영하는 나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수영은 '잘했다, 못했다.'로 쉽게 이분법적으로 갈리는 대상이 아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이 찾아온다면 그 순간들의 데이터들을 나름 잘 정리해 본 후에 왜 그렇게 느꼈는지, 어떻게 무엇을 더 보충해야 할지 등에 집중하며 수영을 즐기면 되는 거다.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 처음 보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칭찬은 나를 춤추게 한다… 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