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이 온다는 건

현재, 미래, 일생을 바꾸어 준 존재

by 김혜미
수영이 온다는 건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햇살은 따뜻하지만, 공기는 아직 찬 겨울, 남해로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났다. 두 번째 남해였다. 그때도, 이번에도 한결같은 남해라서 좋다. 지난번 상주 은모래 비치에 들렸다가 근처 유명한 카페가 있다길래 찾아가 보았다. 그렇지만 카페 벽에 쓰인 시 말고는 반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가는 날이 장날, 휴무였다. 처음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를 접했을 때는 시의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저 ‘버스 오는 데 시간이 꽤 걸릴 텐데, 그때 동안 뭐 하지?’ 하는 고민이 더 컸다. 3년이 흘러 다시 그 카페에 들렀을 때는 ‘어디 가지’라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덕분인지 방문객이 쓰인 벽 앞에 서서 시를 찬찬히 처음부터 읽어보았다. 시의 한 구절을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 거 같은데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수수께끼를 풀다 만 기분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이 시의 구절에 공감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들뜬 발걸음과 함께 카페로 들어섰다.


3년 전, 수영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나의 일상과 관심사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다행히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고,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안정적이며 편안한 사람이 되었다. 무엇이 크게 바뀌었을까 돌이켜 보면 크게 음식을 대하는 태도,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 관심을 두게 된 근력운동, 수영 관련 덕질과 마지막으로 내추럴한 모습 등이 있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 가볍고 속이 편한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수영하기 몇 시간 전에는 잘 안 먹거나 조금의 속 편한 간식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소화가 잘되는 음식과 가까워졌다. 예전에는 식후 디저트가 필수였다면 지금은 디저트는 굳이 찾지 않는다. 약속이 있어, 먹는다고 한다면 글루텐 프리 디저트 집을 찾아가곤 한다. 이전까지는 밀가루가 몸에 잘 안 맞는다는 걸 알면서도 시중에 파는 빵을 계속해서 먹었더라면, 지금은 호밀빵과 땅콩잼의 조합으로 더 이상 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또, 지나친 고기보다는 단백질을 채워주는 달걀과 두부, 아삭아삭한 채소를 즐겨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먹다 보면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걸 느끼는데, 특히 수영할 때가 그렇다. 가끔 배가 가득 찬 상태로 수영하게 되면 숨을 쉴 공간이 부족해져서 금세 호흡이 가빠지고, 실력도 온전히 쏟지 못하고 온다. 하지만 평상시에 가볍게 먹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면 수영할 때도, 운동할 때도 당연하지만 몸과 속이 가벼워진 덕분에 효율적으로 물속의 시간을 깔끔하게 즐기고 올 수 있다. 두 경우를 모두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결과, 3년 동안 또 앞으로도 가볍고 속이 편한 음식을 찾아가는 수영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건강을 생각하는 마음’, 아프거나 다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활동적이었던 나는 어릴 적 사진을 보면 늘 어딘가 다쳐있다. 양팔을 번갈아 가며 일이 년을 주기로 깁스하는 건 기본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잠깐 어디 부딪히면 금세 멍이 들었고,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도 몰라 억울한데 계속 신경 쓰이는 상처들을 늘 달고 살았다. 그러다 한 번은. 수영을 시작한 후, 발가락을 세게 박아서 깁스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해에 가장 우울했던 순간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래, 요즘 왜 안 다치나 했다.’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넘기고 잠깐의 휴식을 취했을 터이다. 그러나 수영이 내 일상에 들어온 이후로는 물속에서 지장이 되지 않도록 몸을 아끼는 연습과 아픈 것에 대한 걱정이 많아졌다. 발가락을 다친 후로 거의 한 달 동안 수영장에 가지 못했다. 그때를 계기로, 평생 수영하려면 몸을 아끼자고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이후로, 어딘가에 잠깐 부딪히거나 살짝 아픈 거 같으면 바로 병원에 가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아프거나 다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수영인이 되었다. 가끔은 너무 엄살이 심해진 거 같아서 스스로에게도 스트레스를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관심을 두게 된 근력운동’, 꾸준히 쇠질을 하고 있다. 움직이는 건 좋아하지만, 안면근육을 한껏 찡그리며 안간힘을 쓰게 만드는 헬스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남들이 아령 들고 불끈불끈 튀어나오는 근육을 만들어 갈 때, 나는 늘 하천을 쉼 없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어 다녔다. 한참 다이어트를 해본다며 헬스장을 한두 달 끊었던 시기에는 여전히 러닝머신 위에만 서거나, 가끔 실내 자전거를 돌리며 유산소만 가득하고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헬스장이라는 공간에 금방 싫증이 나버릴 수밖에 없었다. 실내에서도 걸을 거면 차라리 밖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탁 트인 공간에서 걸어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이 선 이후로 헬스장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그러다 수영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수영장에 붙어있는 헬스장에 가서 찔끔찔끔 근력 운동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차피 수영하러 들어갈 때 샤워할 거면 땀 빼고 씻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수영 전 헬스장에 깨짝깨짝 머물렀다. 모든 색이 검정, 은색, 그나마 밝은 색은 매트 색깔 등이었던 헬스장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뭐라도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은 후로, 생애 처음으로 운동 유튜버들을 구독하게 되었고, 하나씩 가르쳐주는 헬스장 사용 방법을 따라 했다. 그렇게 몇 주, 몇 달이 흘러 나의 루틴이 되었다.


‘수영 전, 헬스하고 들어가기.’ 다만 변한 게 있다면 근력 운동의 동기이다. 기존에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저 땀 빼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지금은 ‘수영을 더 잘하고 싶어서.’이다. 수영을 베을수록 터무니없이 힘없는 모습을 마주치게 되었다. 모든 영법을 능숙하게 다 배웠을 즘이었다. 머리와 마음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힘이 없다는 사실 하나에 몸이 힘들어 따라가 주지를 못했다. 특히나, 순발력이 강하게 필요한 접영 같은 경우(사실, 모든 영법이 다 해당한다..)에 팔을 힘차게 잡아당겨, 물속으로 던져줘야 하는데 팔에 힘이 없는 탓에 물의 힘에 지고 말았다. 한 열 번 정도 그렇게 물의 힘에 져버리는 경험을 통해서 어느새 스스로 오기가 생겼다. ‘힘이 없어서 영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일’을 더 이상 만들지 말자고 다짐했다. 새로운 동기와 함께 지금까지 루틴을 이어가며 꾸준히 쇠질 중이다. 여전히 재미는 에어팟을 통해 흘러나오는 EDM에서만 찾을 수 있지만, 확실한 건 이전보다 물의 힘을 이겨내는 순간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수영 덕질’, 수영과 관련된 거라면 뭐든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관심을 두고 있고, 시선이 자연스레 그 대상에 닿아있고, 우연히 관련된 제품을 보면 장바구니에 바로 담아두고, SNS에서 돌아다니는 관련된 멋진 사진과 영상들을 다 저장해두고 있는 대상이 또 하나 생겼다. 다들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에 빠졌다. ‘수영’이다. 어느새 보니 나의 일상은 수영 덕질 덕분에 소소한 행복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애초 나의 성격 자체가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바라보는 성향이 있다. 종류 불문하고 말이다. 한 번은 미역 줄기 볶음에 꽂혀서 몇 달 동안 밑반찬으로 미역 줄기만 먹었던 적이 있고, 또 한 번은 해리포터에 빠져서 한 몇 주 동안은 해리포터 책 전권을 정독하고, 바로 영화로 넘어가서 정독하며 해덕이 되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 번 마음에 든 옷이 있으면 그것만 입기도 한다. 그래서 정말 아끼는 옷들은 3년은 기본으로 거뜬히 나와 오래 함께한다. 하나하나 다 들려주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이 목차는 나의 덕질인생만 이야기하다가 끝날 수 있으니, 억지로 이야기를 멈추겠다.


아무튼 덕질 인생의 새로운 손님은 수영이었다. 평소에 전혀 관심 없던 한국 수영 선수는 물론 펠프스 같은 유명한 외국 선수들의 경기 영상 정주행을 즐기기 시작했다. 수영하면 빠질 수 없는 수영복과 용품에 대해서도 물욕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관심이 있는 부분이다. 어느새 인스타그램의 계정에 뜨는 알고리즘은 수영장 바닥의 T자 모습이 기본이 되었고, 온통 파란색으로 덮여있었다. 이것이 나의 요즘 큰 관심사이자 일상을 채워주는 행복한 행동이다. ‘수영 덕질’



‘내추럴한 모습’, 밝게 웃는 민낯 그대로인 얼굴을 좋아한다. 물과 친숙해진 이후로부터 사진첩을 보면 온통 하늘색 빛의 색감들로 덮여있다. 그 속에 비친 나는 항상 수모를 쓰거나, 금방 물에서 나온 듯한 젖은 머리, 사라진 앞머리를 하고는 환하게 웃고 있는 맨얼굴이 빛나고 있다. 점점 햇빛 아래에서 수영하는 재미에 붙인 이후로부터는 조금씩 주근깨가 생기고는 있지만 그런데도 나는 화장한 얼굴이 아니라 민낯 위에 입술 색만 살짝 더해진 모습이 좋다. 원래부터 꾸미는 거에 소질이 없을 뿐 아니라 굳이 화장해야 하는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던 사람이었기에 물과 친해진 건 정말 큰 명분이 되었다. ‘꾸미지 않는 이유’를 댈 명분. 항상 ‘저는 화장을 ‘딱히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너무 환하게 꾸미고 나온 사람들에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아닌 거 같아서 늘 이리저리 피하다가 화제를 바꾸고는 했다. 나를 오래 봐왔던 사람들은 나의 민낯이 익숙하고, 화장을 안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만날 때 매우 편안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가 생기고 나서부터 억지로 화장을 조금이라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찾아와 스스로를 곤란하게 만든다. ‘그냥 평소대로 갈까?, 아 근데 초면인데 조금 예의가 아닌 걸까.’라며 하다 겨우겨우 입술 바르고 속눈썹 올리고, 선크림을 바르고 나간다. 누군가에게는 이건 화장도 아니라고 느껴지겠지만 내게는 큰 도전이자 숙제이다.


아무튼 다행히 물과 친해지고 나서부터는 곧 수영장에 가야 하니까, 방금 수영하고 나와서, 곧 바다 들어갈 거니까 등의 설명 거리가 명백해져서 정말이지, 편안함 그 자체이다. 또, 레저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는 애초에 민낯으로 만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사석에서 만나도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래서인지, 레저나 운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오래가기도 한다. 앞으로도 나는 민낯 그대로인, 그러나 조금의 입술 색은 더해진. 밝은 웃음으로 화장을 대신하는 민낯 그대로인 내 모습을 사랑할 거다.


변화한 점을 하나씩 적다 보니까 깨달았다. 알고 보니, ‘방문객’ 시를 읽으며 떠오르지 않았던 그 물음표는 ‘수영’이었다. 수영이 내게 찾아와 나의 현재, 미래, 일생을 바꾸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