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지만 같지 않은 것,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것
[네팔의 일상 2]
아빠와 나는 겨울이면 품 안의 하얀 종이봉투에서 꺼내지는 붕어빵들처럼 서로 닮아있다.
붓으로 기름을 바르고, 달달한 냄새가 나는 베이지색인지 노란색인지 반죽을 붓고, 붕어 모양의 틀을 꼬챙이로 요리조리 잘 구슬려보자. 반죽이 익어진 정도도, 노릇하게 구워진 색이며 바삭거리는 부분까지도 비슷한 이 붕어빵들을 보고 있으면 눈코입, 손금까지도 비슷한 나와 아빠의 모양새를 떠올리게 한다.
겉모습만 같을까? 바삭하게 구워진 반죽 부분을 먹고 나면 드러나는 나이프로 뚝뚝 끊어내 정량으로 들어간 팥 앙금처럼 성격도,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마저도 참으로 닮았다.
비슷한 두 명이다 보니 5명의 가족들 중에서도 아빠와 나는 합이 제법 잘 맞는 편에 속한다._이 글을 보는 다른 가족들은 조금 서운할 수 도 있겠지만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실제로 엄마는 너랑 아빠랑 둘이 나가면
짝짜꿍 하여 쓸데없는 짓을 하거나 필요 없는 것을 사 온다라고 늘 얘기하곤 한다._
붕어빵도 가끔은 팥이 새어 나오거나 터질 때가 있다. 많은 것이 비슷한 부녀 사이에 다른 것이 있는데, 걔 중 하나가 ‘여행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휴양지보다 도시를 사랑한다.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지만 언제나 눈 시리게 반짝거리는, 사람들의 활력에 춤을 추는 밤의 불빛들이 휴양지의 고요함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곤 한다. 각지에서 혹은 각국에서 온 사람들을 쫓아 멀리까지 따라온 냄새들과 말들이 묵직한 무게를 자랑하며 공기 중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좋다. 어수선함과 시끌벅적한 가운데 어쩐지 붕 떠 있는 이 분위기에 동조하는 척 하지만, 마음은 어디에 속하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음에 감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발걸음은 늘 도시로 향한다.
그에 비해 아빠는 여행지에서도 일상을 고수하는 사람이다. 여행까지 왔는데, 그래 무려 여행이지 않은가?! 시간과 돈, 모든 것을 쏟아부어 일 년에 단 며칠만 허락되는 그 행위 말이다. 그러나 그는 아무도 말릴 수가 없다. 그 지역, 나라에서 유명한, 꼭 먹어봐야 할 것! 들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하고 회유를 하더라도 본인 자신이 똑같이 할 수 있고, 제일이라고 고--오--집을 부린다. _실제로 요리사인 아빠는 집에서도 각 나라, 고장의 음식을 을 물론 따라 만들 수 있고 제법 비슷하거나 맛 좋게 뚝딱 만들어내곤 한다. 그래도 여행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식'아니던가?! 제발 사 먹을 수 없겠냐는 우리의 간절한 바람에도, 이곳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드는 요리를 하고 싶다! 하는 그를 어떻게 말릴쏘냐_
그래 거기까지도 좋다. 이해한다. 그런데 굳이 또 전통시장을 가야겠다고 하신다.
여름엔 더위, 겨울엔 추위를 느낄세라 4계절 적절하고 쾌적한 온도와 습도를 자랑하는 곳. 행여나 너무 많은 물건들을 들고, 이리저리 쇼핑을 계속하면 어떡하나 카트까지 척척 놓아져 있는 곳. 품질 좋은 식자재들이 예쁘게 포장되어 제 자리에 놓아져 있고, 입씨름하지 않아도 여기저기 눈으로 보고 비교하지 않아도 적당하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대형마트!
꼭 가야 한다면, i love 대형마트! 를 외치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허락된 이곳.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춥다. 바닥엔 왠지 밟아도 될까 싶은 정체모를 물 웅덩이들이 종종 보행을 가로막기도 한다. 막 잡혀 나온 것도 아닌데 비릿한 바다향을 자랑하는 생선이며 돼지고기 소고기 등등의 육향, 풋내음 가득한 야채들의 냄새까지 온갖 것들이 섞여 코 끝을 연신 가격한다. 식자재들은 땅에 닿으랴 사람들에게 스치랴 아슬아슬하다.
도대체 왜... 놀러 와서까지 여길 와야 하는 거죠?
이번 여행에선 아빠 없이, 또 자진해서 시장으로 오게 되었다. _닥터 스트레인지의 카마르 타지의 촬영지를 방문하였을 때였다. 그 골목은 여행자들을 위해 이것저것 팔기도,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이기도 했다._
여기 카트만두에서 만난 시장은 한국에서 아빠와 함께 봐 왔던 곳과 다르기도, 또 닮아 있기도 했다. 물론 먹는 것도 생활하는 방식도 너무 다른 두 나라이다 보니 걸려있거나 내어져 있는 품목들이 당연히 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끌시끌한 활력이 사방에서 뻗대고 있는 것이, 조금이라도 예쁜,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해 부지런한 손이, 고단함 속에서도 다부진 그 손들은 한국이나 네팔이나 참으로 닮아 있었다.
아…. 이래서 아빠는 그렇게 시장을 갔었나 보다.
여기가 너와 나의 하루이며 곧 삶이구나.
젊은 날 아빠의 목에 걸려있었을 캐논 오토 보이 필름 카메라가 이제 내 목에 걸려있다. 배낭 안엔 하루에 한 롤씩은 찍어보겠다며 가져온 필름들이 가득하다.
같은 카메라로 다른 시간을 기록하며, 닮은 줄로만 알았던 그와 나의 차이를 발견한다. 또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것들을 더듬거리며 바라보기 시작한다.
어쩐지 한국에 가면, 다시 아빠와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