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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현제 Mar 18. 2024

그래서, 축사는 '이렇게' 씁니다

논리적인 축사를 씁시다!

지난 글들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축사도 논리적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 축하를 하는지, '왜 내가' 축하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했지요. 한번 정리해봅시다.


첫 번째 질문, '왜' 축하를 하는가?


성숙에 달했기 때문에 축하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꿈꾸고 언제나 그래왔기 때문에 성숙에 달한 사람을 인간으로서 축하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결혼이 어느 정도 삶을 일궈낸 사람들이 할 수 있듯, 단체도 어느 정도 터를 잡은 사람들끼리 만들 수 있듯, 행사도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야 할 수 있듯 인간은 성숙에 달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글로써 축하하는 것이 바로 축사입니다.


두 번째 질문, '왜 내가' 축하를 하는가?


여러분이 단계적인 축하를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 기억하시지요? 그냥 소녀가 세상을 떠났다고만 해도 슬픈 이야기지만, 소녀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단계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슬픔이 더 크게 다가오지요. 여러분도 축하받는 사람의 생일, 합격, 입학, 승진을 모두 단계적으로 축하해오셨을 겁니다. 그러면서 여러분과 축하받는 사람 사이에는 시간과 깊은 감정이 쌓였고, 이제 여러분은 친구가 성숙에 이르렀다는 것까지 축하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실전으로 들어가봅시다.

가장 일반적인 결혼식 축사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A4 한 쪽 분량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랑/신부 000의 친구 김현제입니다.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 여기 모이신 분들을 대표하여 축사를 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

저는 이 세상에 결혼처럼 강력한 계약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법적 신분과 법적 보호자를 바꾸고, 경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계약이라니, 얼마나 강력합니까. 게다가 그 계약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결혼을 맺기 위해서는 성숙에 이른 두 명의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바꿔 말하면 제 친구 00이(가) 어느새 그렇게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차고, 돈을 벌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화할 줄 알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저 오늘 급식 뭐 나오는지가 제일 궁금했던 초등학생 00(이)였는데,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흘렀네요.

다들 아시겠지만 00(이)는 참 단단한 사람입니다. 야무지고, 긍정적이고, 일 열심히 잘 하는 친구지요.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늘 잘 해내온 친구입니다. 그런 00(이)를 옆에서 보면서 저 역시 힘을 받고 함께 하는 게 늘 즐거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습니다. 이 친구도 사람인 만큼 분명 지치고 힘든 순간이 올 텐데,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삶의 다정한 순간을 알려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요.

그리고 어느 날 00(이)가 [신랑 혹은 신부]와 만나기로 했는데 어떤 옷이 더 잘 어울리냐고 묻고, [신랑 혹은 신부]와 데이트하면서 찍은 음식 사진을 보여주면서 웃고, 점점 더 편안해지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알았습니다. 00(이)가 참 좋은 분을 만났구나. 내 친구 00(이)가 참 행복해하는구나.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제 친구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신랑 혹은 신부]에게도 참 고마웠습니다.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정박하기 위해 배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항해를 시작했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러 번의 항해를 했지요. 항해는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아서 거칠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제 친구 00(이)는 늘 잘 이겨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00(이)는 또 다른 항해를 시작하려 합니다. [신랑 혹은 신부]와 함께, 둘이서 큰 배를 타고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여정일 겁니다. 그리고 인생이 늘 그렇듯, 세상이 언제나 그래왔듯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확신합니다. 제 친구 00(이)는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요. 단단한 제 친구 옆에는 현명하고 다정한 [신랑 혹은 신부]가 있으니까요. 두 분이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쳐 즐겁게 항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00아(야), 출항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신랑 혹은 신부]와 함께 행복한 여정이 되기를 기원할게. 이렇게 좋은 날, 네가 새로운 세계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참 고맙고 기뻐.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랄게. 결혼 축하해!

감사합니다.


이제 위 축사를 찬찬히 뜯어봅시다.


1. 자기를 소개하라


축하하는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신랑신부의 지인들로,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였지요. 그 사람들 중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니 우선 자기소개부터 합시다. 이때는 간결하게 가는 게 좋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신랑/신부 000의 친구(가족, 직장 동료 등) 000입니다.


이때 '세상에서 가장 00한 신랑/신부' 혹은 '00년 지기', '00년부터 함께 한'과 같은 미사여구는 빼셔도 좋습니다. 이미 사회자가 축사자가 누구인지 소개도 했고, 하객들은 웬만큼 친하지 않고서야 축사를 부탁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 나서서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작부터 임팩트를 주지 않아도 됩니다.


2. 고마움을 표현하라


여기서부터는 첫 번째 질문 '왜 축하하는가'에 대한 답, 즉 '성숙함에 이르렀음을 축하한다'는 의미를 강조해보도록 합시다. 신랑신부가 나를 축하의 대표로 삼은 것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하객들로 하여금 이 자리가 축하하는 자리임을 다시 한번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 역시 간결하게 한 문장 정도로 정리하도록 합시다.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 여기 모이신 분들을 대표하여 축사를 하게 되어 참 기쁩니다.


3. 축하에 의미를 부여하라


첫 번째 질문 '왜 축하하는가'에 대한 답을 계속 이어나가 봅시다. 결혼은 성숙에 이른 사람들끼리 하는 일이고, 인간이라면 성숙을 꿈꾼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러니 그 의미를 한번 굳이 찾아서, 친구가 성숙에 이르렀음을 강조하고 축하하는 것입니다. 이때 다음 부분으로 연결되는 마지막 문장은 친구와 축사자인 나의 연결 고리를 간단히 언급해도 좋습니다. '어릴 적에는 이랬는데, 어느덧 네가 성숙해졌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을 주시면 됩니다.


저는 이 세상에 결혼처럼 강력한 계약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법적 신분과 법적 보호자를 바꾸고, 경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계약이라니, 얼마나 강력합니까. 게다가 그 계약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결혼을 맺기 위해서는 성숙에 이른 두 명의 사람이 필요하니까요.

바꿔 말하면 제 친구 00이(가) 어느새 그렇게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이가 차고, 돈을 벌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대화할 줄 알고,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저 오늘 급식 뭐 나오는지가 제일 궁금했던 초등학생 00(이)였는데,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흘렀네요.


4. 친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하라


두 번째 질문, '왜 내가 축하하는가'에 대한 답을 에피소드를 통해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라면 알고 있을 법한 친구의 성격이나, 친구와 축사자인 내가 겪었지만 보편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들을 이야기하는 게 좋습니다.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결혼은 내 친구 혼자서만 하는 게 아니니, 신랑 혹은 신부를 언급할 수 있도록 가벼운 연결고리를 하나 만듭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00(이)는 참 단단한 사람입니다. 야무지고, 긍정적이고, 일 열심히 잘 하는 친구지요.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늘 잘 해내온 친구입니다. 그런 00(이)를 옆에서 보면서 저 역시 힘을 받고 함께 하는 게 늘 즐거웠습니다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습니다. 이 친구도 사람인 만큼 분명 지치고 힘든 순간이 올 텐데,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삶의 다정한 순간을 알려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참 좋겠다고요.


5. [신랑 혹은 신부]에게 감사를 표현하라


신랑 혹은 신부에게 감사를 표하도록 합시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내 친구 사람 구실 하게 만들어줘서 고맙다'라는 식으로 과하게 감사를 표현하거나, '내 친구는 이런 편이니까 이런 점은 꼭 신경써달라'와 같은, 간섭에 가까운 부탁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친구는 이미 어느 정도 성숙한 사람이고 결혼식은 어르신들이 참석하시는 자리인 만큼, 친구의 가족들 혹은 사돈 되시는 분들께서 불편하게 생각하시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또, 내 친구의 취향이나 성격은 나보다 배우자가 더 잘 아는 경우가 많으니 '내 친구는 이러저러하니 이렇게 해달라'고 말하는 순간 간섭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 친구가 신랑 혹은 신부와 함께할 때 얼마나 행복하고 기뻐했는지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 전달한다는 느낌으로 말씀하시면 됩니다. 오히려 그것이 더 큰 감동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어느 날 00(이)가 [신랑 혹은 신부]와 만나기로 했는데 어떤 옷이 더 잘 어울리냐고 묻고, [신랑 혹은 신부]와 데이트하면서 찍은 음식 사진을 보여주면서 웃고, 점점 더 편안해지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알았습니다. 00(이)가 참 좋은 분을 만났구나. 내 친구 00(이)가 참 행복해하는구나.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제 친구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신랑 혹은 신부]에게도 참 고마웠습니다.


6. 명언을 인용하라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로 명언을 인용하는 방법을 추천드립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멋진 표현을 통해 격식을 끌어올려봅시다. 그리고 친구가 앞으로 배우자와 함께 잘 헤쳐나갈 수 있음을 믿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지만, 정박하기 위해 배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항해를 시작했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러 번의 항해를 했지요. 항해는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아서 거칠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제 친구 00(이)는 늘 잘 이겨내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00(이)는 또 다른 항해를 시작하려 합니다. [신랑 혹은 신부]와 함께, 둘이서 큰 배를 타고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여정일 겁니다. 그리고 인생이 늘 그렇듯, 세상이 언제나 그래왔듯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확신합니다. 제 친구 00(이)는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다고요. 단단한 제 친구 옆에는 현명하고 다정한 [신랑 혹은 신부]가 있으니까요. 두 분이 마음을 모으고 힘을 합쳐 즐겁게 항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7. 친구에게 한 마디를 건네라


친구에게 아무 말 안 하면 아쉽지요? 마이크도 잡은 만큼 짧게 한두 마디 축하 인사를 직접 건네봅시다.


00아(야), 출항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신랑 혹은 신부]와 함께 행복한 여정이 되기를 기원할게. 이렇게 좋은 날, 네가 새로운 세계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참 고맙고 기뻐.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랄게. 결혼 축하해!


8. 마무리 인사를 하라


하객들에게 감사의 말 한 마디를 남겨 마무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리해보면, 결혼식 축사에는 다음의 8가지 순서가 있습니다.


1. 자기를 소개하라
2. 고마움을 표현하라
3. 축하에 의미를 부여하라
4. 친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하라
5. [신랑 혹은 신부]에게 감사를 표현하라
6. 명언을 인용하라
7. 친구에게 한 마디를 건네라 8. 마무리 인사를 하라


어떠신가요? 축사, 이제 어떻게 쓰면 될지 감 오시지요? 제가 쓴 축사를 찬찬히 읽어보시면 유기적인 흐름이 보이실 겁니다. 성공적인 축사를 위해 고민하시는 분들, 왜 축하하는지 그리고 왜 내가 대표가 되어 축하를 하는지를 잘 생각해보시면 분명 좋은 글을 쓰실 수 있으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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