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
살이 찌다 못해 눈물샘에도 살이 찌나 봐요. 황량한 사막 같던 내 눈동자는 눈물이 범람해 수심 깊은 바다가 되어 있어요. 때론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내가 그럴 일이 없다고 부정도 해봤지만, 쓰나미같이 넘쳐 흐르고 있는 내 눈물은 나의 부정을 부정하네요. 이제는 눈물의 기준이 하향 평준화되었는지 툭하면 눈물부터 쏟는 울보 같기도 하고요. 한참 울다 보니까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오르네요.
“참 많이도 울었었지, 그때는.”
저는 눈물이 많았던 아이였어요. 학창 시절에는 눈이 크다는 이유로 겁이 많은 친구이거나 눈물이 많은 친구로 불렸고요. 겁이 얼마나 많았는지 집 안에서도 불 꺼진 방은 혼자 들어가지 못했고 슬픈 음악만 들으면 그렇게 울었다고 해요. 이런 과거 때문일까요. 전 울지 많기로 다짐하고 겁을 내지 않기로 스스로를 토닥였고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어요. 교복을 입고 대학을 진학하고 군 생활을 거쳐 사회생활까지 전 겁보와 울보라는 별명을 탈피했고 어엿한 30대 남자가 되었어요.
그런 제가 고장이라도 났는지 또다시 울보가 되어 있었어요. 또다시 슬픈 노래에 눈은 폭포가 되고 남의 결혼식에서는 침을 꼴깍 삼키며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참고 살아요. 울보였던 꼬맹이의 다짐은 어디 가고 손아귀에서 하늘로 도망가는 풍선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던 꼬마가 되어 있었어요. 교정을 해도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성격을 가진 이빨처럼 제자리로 돌아왔어요. 오랜 시간을 들여 교정했지만, 시간이 너무 흘렀나 봐요.
요즘은 울어도 괜찮다고 토닥이며 살아요. 슬픈 음악을 듣다 울어도 슬픈 영화의 한 장면을 보다 울어도 슬픈 글을 읽다 울어도 더 울라고 등을 토닥토닥- 이젠 울지 않겠다는 다짐은 잠시 넣어둘 거예요. 울지 않기 위해 우는 법을 배우듯이 잘 우는 법을 다시 하나하나 배워갈 거예요.
건조했던 겨울이 흘러가나 봐요. 눈가에 맺힌 이슬이 멈출 날이 없네요. 덕분에 촉촉한 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어요. 고장난 기계처럼 울어대도 고치지 않을 거예요.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은 돌이키지 않고 받아들이며 인정하고 살아가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