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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Sep 08. 2023

만남

오후에 입원하신 만 82세 '몰라'할머니와 만 88세 '엄마 엄마' 할머니 두 분은 밤이 되자 이상한 말씀과 행동을 반복하셨다. 두 분 모두 척추시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셨지만 한 분은 혈압이 높아서 다른 분은 염증 수치가 높아 시술을 받지 못하고 병실에서 기다리셔야 하는 상태였다. 귀 한쪽이 잘 안 들리신다는 '몰라'할머니는 초저녁부터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깨어 있을 땐 직원을 호출해서 '당신이 10년 전에 이 병원에서 6개월 입원했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런 호출이 여러번 반복되자 직원들은 "아! 네, 네. 그런데 호출은 왜 하셨어요?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하며 예의상 묻고 병실을 나갔다.

직원들이 본인 말씀을 믿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는지 아들에게 전화해서 당신이 10년 전에 몇 호실에 입원했었는지 기억나냐고 물으셨다. 아들이라는 분도 꽤 나이가 있을 텐데, 할머니께 '엄마'라 부르며 반말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엄마 밥 먹었어? 허리 안 아파? 내일 시술하면 편해질 거야. 잘 자."


'엄마 엄마' 할머니는 혼자 핸드폰을 보시며 낮은 음성으로 말씀을 하셨다. 처음엔 가족들과 통화하시는 줄 알았는데 핸드폰을 보시며 누군가를 위해 기도를 하고 계셨다. 내가 쳐다보는 걸 느끼셨는지

"내가 기도하는 소리 듣기 싫어요?" 물으셨다.

"아뇨, 괜찮아요."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저는 괜찮아요."

기도를 얼마나 열심히 하시는지 기력도 없으신 분이 저런 힘이 어디에서 날까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힘들 땐 나를 위한 기도조차 안 나올 때가 많은데, 입원 중에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쉴 새 없이 기도를 하시는 걸 들으니 우울했던 내 마음이 오히려 안정되는 것 같아 좋다고 다른 분들만 괜찮으시면 소리 내어 계속 기도하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이 '엄마 엄마'할머니도 밤이 되자 '몰라'할머니처럼 수시로 간호사들을 호출하시기 시작했다.

"나 소변"

"할머니, 기저귀 차셨어요. 허리 때문에 못 움직이시니까 기저귀에 하세요."

"싫어. 나 화장실 가서 하고 싶어."

"기저귀에 소변보세요. 그러면 제가 깨끗한 걸로 갈아드릴게요."

"싫어. 나 기저귀에 못해."

고집을 부리시다 간호사가 나가자 혼잣말을 하신다.

"병원 화장실이 고장 났는데 솔직하게 말을 안 해 주는 건가? 왜 화장실을 못 가게 하는 거지?"



작년에 아버지 호스피스 병동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임종 전 증상 중 하나인 '섬망'이 본인이 스스로 대소변을 처리하고 싶은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자존심'에서 오는 경우도 있다며, 소변줄을 끼우고 정신없이 주무시던 분이 갑자기 깨서 화장실 가겠다고 하시거나, 보호자를 밀쳐 내면서 화장실 가신다며 침대에서 뛰어내리는 시도를 하신다거나 할 땐 놀라지 말고 직원을 호출해달라고 다.

설마 산소 호흡기와 링거에 의존해서 거칠게 숨소리만 내고 계신 분이 그럴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실제로 '본능에서 오는 섬망'은 아버지에게도 일어났다. 반짝반짝하신 눈으로 나를 보시며 병실 안에 있는 냉장고를 가리키셨다. 냉장고를 화장실이라 생각하셨다.

"소변"

정신없이 주무시던 아버지가 어떻게 깨어나셨을까 싶은데 소변줄을 끼고 계신 분이 요의를 느끼신다는 것도 이상했다.

"아버지, 소변줄 하셔서 화장실 안 가셔도 돼요."

"바로 저기 화장실이 있는 데 왜 못 가게 하는 거야? 네까짓 게 뭔데 못 가게 하는 거야." 한바탕 소동을 피우시다 결국 간호사들에 의해 제압이 되어 침대에 손발이 묶이신 채 안정제를 맞고서야 진정이 되었다.



낮에 입원하실 땐 몰랐는데, 밤이 되니 할머니 두 분 모두 좀 이상했다. 특이한 행동을 반복하시며 혼잣말을 쉬지 않고 하셨다.

다인실에 있다 보니 나 아픈 것도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 아픈 걸 보고 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할머니들을 보면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나서 썩 싫지만은 않았지만 이상한 '반복된' 행동을 하시는 걸 보니 저 모습이 30년 후의 나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슬픈 마음이 들었다. 저 두 분도 젊었을 때는 '누구의 엄마'로 열심히 사셨을 텐데... '한 번 태어나면 늙고 병들고 죽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서서히 정신줄을 놓고 쇠해지는 기력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계신 할머니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있기엔 내 멘탈 상태는 너무 약해져 있었다.


할머니들 덕분에 밤을 하얗게 새우고, 아침이 되어 수간호사를 찾았다.

"저, 1인실 대기자 명단에 올려놨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금 1인실에 계신 환자 분들이 퇴원하셔야 옮겨 가실 수 있는 거라. 정확한 날짜는 확정을 못 해 드리겠어요."


누군가는 1인실 중 몇 개의 호실은 만약 입원 환자 중에 코로나 환자가 생기면 옮겨갈 수 있도록 일부러 비워 놓고 있을 거라며 사정하면 바로 방이 준비될 거라 했다. 다른 누군가는 입원실 담당자에게 '약간의 현금'을 봉투에 넣어 부탁해 보라 했다.


"제가 독한 진통제 링거를 빼고 나니까 정신이 들어서 그런지 우울하고 슬프고 그래요... 못 자면 더 힘들 거 같은데 난감하네요."

"혹시 그럼 1인실 준비될 때까지 2인실로 옮겨 보시는 건 어때요? 마침 2인실에 침대 하나가 비었어요. 젊은 환자 분, 낙상 환자 분이 혼자 계세요."

"그래요? 그럼 거기로 옮길게요. 방을 두 번씩 옮기는 게 귀찮기는 하지만 단 며칠이라도 숙면을 취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될 거 같아요."


할머니들에겐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밤마다 같은 일이 벌어질 게 뻔한데 1인실이 빌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기며 날밤을 새울 수는 없었다.


간호사들은 나와 내 모든 짐을 새로운 병실로 옮겨다 주었다. 옆의 환자에게 인사하기도 뭣하고 해서 커튼을 사이에 두고 누웠는데 옆의 환자가 화장실을 가면서 나에게 와서 먼저 아는 체를 다.

"안녕하세요. 병원에는 어쩌다 오시게 됐어요?"


병원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이름도 직업도 고향도 출신학교도 서로 묻지 않는다. 병원에 왜 왔는지가 인사말이 되고 자기 소개가 된다.


"비 오는 날 넘어져서 무릎을 다쳤어요."

"저도요. 비 오는 날 출근하다 양재역 근처에서 넘어져서 발목이 부러졌어요."

"네??? 저도 양재역 근처에서 넘어졌는데요"

"그날 비가 와서 구두도 안 신고 운동화를 신었는데, 넘어졌어요."

"어머. 저도 고무 재질 레포츠 샌들을 신고 있었는데 넘어졌어요."

"어떻게... 우연이나 사고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러게요."


불과 일주일 전에 오지라퍼 명랑 아줌마들 흉을 보았던 내가 그 아줌마들을 닮아 가있다.

나와 옆 환자는 통성명도 하지 않은 체 '동지'가 되어 커튼을 사이에 두고 각자의 침대에 누워서 천정을 보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 세상 이야기를 했다.


30/08/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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