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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h Jul 19. 2022

아들아 ~정신줄 챙겨라~

전깃줄만 챙기지 말고...

"엄마, 이사 후에 혹시 여권 못 봤어요?"


새벽 6시 20분 눈 비비고 겨우 잠에서 깨어났다.

이미 아들방은 서랍장이고 장롱이고 쑥대밭이다.

여권 찾느라 정리해놓은 짐들을 다시 다 꺼내

확인 중이었다.


"해외에서 여권은 심장이야  잘 챙겼어야지"


순간  화가 올라왔지만 이미 아들은 영혼까지 탈탈

털린 모습이었다. 야무진 작은아들이라 믿어왔는데 허당 아들로 폭락했다. 본인은 열쇠 달린 서랍장에

꼭꼭 숨겨두었다며... 머리를 긁적인다.


혹시 회사에? 자동차에? 백팩에 있을지도...

말을 흐리고 아들은 일단 출근했다. 분명 아들방 정리를 하며 이것저것 버리긴 했지만 여권을 버리는

실수를 할 내가 아니기에 다시 찾아보기로 핬다.


어머나! 세상에...


여권 찾으려고 열어놓은 책상 서랍 속 줄줄줄

이게 다 뭔 줄인 지? 엉키고 꼬이고 제멋대로

누워있다.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것들까지

뒤죽박죽 서랍장 안은 전쟁통이다.


이런이런 일단 서랍 속을 비웠다. 긴 줄, 짧은 줄을  작은 끈으로 묶었다. 어휴~ 이게 도대체 몇 개야?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서랍 속을 정리해 주었다. 속이 시원하다. 채움보다 비움이 역시 숨통 트인다. 


이건 또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뾰쪽하고 길쭉한 파란 주둥이에 몸은 동글고 빵빵한 검정 타원형이다. 이것은 컴퓨터 앞 먼지를 뿜어 올리는 압축 청소기? 눌러보니 쑹쑹 바람이 먼지를 빨아들인다. 난 지금 뭐하는 중?? 아들방 탐험 수사대? 놀이 중이다. 2


작은아들은 

핸드폰 , 아이패드, 넷북, 컴퓨터, 노트북 , 사진기 등등

전자제품에 유독 관심이 많고 돈을 쓴다. 그 기기들을 쓰려면  많은 줄들이 꼭 필요한 것이겠지만...

줄보다 귀한 게 여권임을 몰랐을까?


다음칸 ㅠㅠ 그래 바쁜 것도 알고 시간 없는 것도 안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여권을 찾으려다 서랍 안을 보니

또  줄줄줄 줄만 가득하다. 없다 없어 여권이...

빈틈없이 채워진 줄들만 보인다.

줄과 연결코드

두 개의 박스가 나를 쳐다본다. 아들은 본인이 정리

하겠다고 방에 들여놓고 열흘이 넘도록 방치했다. 박스 속 짐 속에 혹시나 여권이 있을지도 모른다. 박스테이프를 풀고 속 안의 짐을 정리했다.


짐 정리 도중 나오라는 여권은 나오지 않고

현금이 발견되었다. 세상에나.,. 한국돈 신사임당 얼굴이 봉투 속에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울 아들 자네'  하던 차에 웃음이 났다.


또 다른 봉투 속에 벳 남동이 발견되었다. 여권을 찾다가 베트남동 잔돈이 백장 아니 무려 2백 장이 훨씬 넘었다.  베트남동(원)은 1000동 (50원) 2000동 (100원) 5000동 (250원).. 만동 (500원)이다.

정리를 하고 나니 한화 3만원쯤

갑자기 돈 세기를 시작했다. 9장을 세고 한 장으로

끈을 만들어 준다. (벳남 사람들처럼)그러면 계산이 쉽다. 구겨진 종이돈은 손 다리미로 손톱 끝으로 문질러 폈다.


'차곡차곡 잘도 모아두었네 '


그나저나 여권 찾다가 지금 내가 현금을 아들방

침대에 걸터앉아 돈 세기를 하게 될 줄이야~~

아들방에서 줄줄줄 따라오는 충천 줄뿐 아니라

돈돈돈 돈도 찾아냈다. 난 돈맛을 아는 수입이 짭짤한 노동자다. 아들방에서 모은 쌈짓돈은  여권 찾기에 몰두한 내 인건비다.ㅎㅎ


한 박스 값은 충분했다. 여권은 보이지 않았다.  힘들다. 힘들어 ~~ 없다 없어 진짜 어디로 숨은 걸까?

야무진 아들의 여권이 숨바꼭질을 길게 한다.

회사에 간 아들에게 점심때 문자를 했다.


"혹시 여권 찾았니?"


"아니요, 귀신이 곡할 노릇이에요

전혀 기억이 안 나요 어떻게요ㅠㅠ"


하루 종일 여권 찾기 하다가 점심때를 놓쳤다.

보물 찾기도 아니고 여권 찾기 이제 그만

술래가 지쳐 포기 단계다.

어디서든 여권이 짠 나타나길 바랄 뿐이다.


아들아 ~


엄마랑 너랑 연결되었던 탯줄만큼이나 중요한

정신줄을 잡아야 한다. 살면서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으니 말이다. 야무진 아들이 요즘 세상 속 관심사들로 바쁘게 살고 있다. 사회 초년생 티가

팍팍 난다. 뮛이 중한디...


짧았던 하루 긴 정신줄이 나에게도 필요했다.

벳남 잔돈으로 물 한 박스와 골드키위 6개를 사 왔다.

여권은 못 찾았지만 달콤한 키위를 먹었다. 아들이

크고 나니 믿거라 맡겨 두었던 소중한 여권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마음으로 짧게 커트를 하고 돌아온 아들

"이런 일 처음이야 엄마 , 정신줄 꼭 잡아볼게요"

수고했고 고생했다고 부라보콘을 사 왔다.

여권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아들의 정신줄은

돌아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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