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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덕후의 연구원룸 Jul 12. 2024

내 집 마련을 다시 묻다

    이제껏 우리가 내 집 마련을 사회 현상으로 인지하며 질문하고 논의해 봤다면 이번에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고민해 보면 어떨까. 인간 뇌의 작동방식 측면에서 내 집 마련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내 집 마련 문제 해결을 위한 빌드업의 주체가 우리 자신 하나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개인의 펀더멘탈을 키우기 위한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연세대학교 김주환 교수는 뇌과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의 인지 능력과 문제 해결력, 소통력 등을 향상하기 위한 마음 근력 훈련과 내면 소통이라는 것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인류의 문화와 기술은 지난 3만여 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우리 뇌의 구조나 기본적인 작동방식은 구석기 시대 ‘원시인의 뇌’(‘원시인’의 뇌가 아니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미주180)     


    이처럼 현대인이 원시인의 뇌로 살아가며 겪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위기 상황에 반응할 때 나타난다. 원시인이 사냥하던 중 멧돼지를 만났다고 해보자. 이런 상황에서 원시인의 뇌는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순식간에 싸우거나 도망가기에 최적인 상태로 몸을 변화시킨다. 에너지와 산소를 근육에 집중시켜 몸을 긴장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뇌는 두려움과 공포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것을 해소하고자 우리는 분노와 공격 성향을 표출하게 된다. 나아가 이와 같은 우리 뇌의 대응과 몸의 변화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능력을 급격하게 떨어뜨린다. 원시인의 뇌에서 침착하고 차분하게 어떤 문제의 해결 방안을 고민하는 기능은 평화로운 시기에나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수렵과 채집이 중요한 생존방식이었던 원시 시대의 뇌 작동방식이 현대 사회에서 생존의 위협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학 입학을 위한 수능 응시, 많은 사람 앞에서 하는 발표, 취업 면접 등 우리가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삶의 중요한 문제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며 침착하게 대응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도 우리의 뇌는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심박수를 높이며,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해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떨어뜨린다.     




    다시 우리가 왜 집을 사려고 했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각자가 느끼는 내 집 마련 문제가 사는 곳으로서 집에 관한 것이든 사는 것으로서 집에 관한 것이든 이 문제는 우리에게 불안을 일으킨다. 2장에서 투기적 수요나 지위 경쟁을 비롯한 여러 사회 구조적 문제 속에서 우리의 불안이 내 집을 소유하기 위한 스프링복의 달리기로 이어지는 모습에 대해 고민해 봤다. 또, 2장에서 4장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몇 가지 선택지를 살펴봤다. 하지만 우리 뇌의 작동방식에 관한 이야기는 내 집 마련을 둘러싼 사회 구조적 함정에서 빠져나오려면 구조적인 제도를 변화시켜나가는 것 전 단계에서 해야 할 게 있다는 걸 시사한다.     


    내 집 마련을 어렵게 하고 우리에게 주거 불안과 경제적 불안을 일으키는 사회 구조의 책임을 부정하거나 이를 변화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게 아니다. 다만, 아무리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내 집 마련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집으로 인한 불안에 휩싸여 있으면 이 문제를 풀어가기 힘들다는 걸 짚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침착하고 차분하게 내 집 마련 문제를 바라보고 자신의 입장과 타인의 입장을 확인하고 조정하며 사회적 공론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그 제도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찌어찌 그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이것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기도 쉽지 않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집 마련을 둘러싼 우리의 불안이 우리를 긴장시킬지라도 그 긴장 속에서는 이 문제를 풀어 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불안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기 때문에 우리는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불안이 만드는 우리 몸의 반응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내 집 마련 문제를 한걸음 물러나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이 거리를 두고 문제를 바라보는 효과적인 방법 하나가 질문하는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내 집 마련을 둘러싼 여러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에게 물으며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불안과는 다른, 질문하는 자신을 알아차릴 수 있다.     


    때로는 당연히 이게 답이라고 생각했던 질문에 관해 다른 이의 답은 다를 수 있겠구나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개개인은 각자가 서 있는 내 집 마련 문제에 관한 입장과 선택지를 확인하고 나와 다른 입장에서 내 집 마련 문제를 바라보는 사람의 생각과 선택지도 인지할 수 있다.     


    각자의 입장을 구체화할 때 우리는 앞서서 살펴본 내 집 마련을 둘러싼 사회 구조적 함정을 다시 바라보고 개별 상황에 맞는 내 집 마련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그와 같은 개인의 선택이 모여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 사회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제야 우리는 집값이 오르는 걸 전제한 내 집 소유 하나로만 귀결되며 저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달리는 스프링복의 탈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





(미주180) 김주환, 《내면소통: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음근력 훈련》, ㈜인플루엔셜, 2023., 33-51쪽.


※ 이 글은 (사)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지원으로 작성한 글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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