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색은 다음 문제, 스케치가 우선이다.
그림책의 전반적인 스토리보드를 그리며 글과 그림을 대략적으로 구성하였다면 채색을 하기에 앞서 본격적으로 스케치 작업에 들어간다. 약 2cm 정도의 작은 사이즈 칸에 스토리보드 썸네일을 그려 넣었다면 정해놓은 그림책 판형에 맞추어 수작업이든 디지털 드로잉이든 연필 스케치를 해나가면 된다. 스토리보드에 그린 그림을 그림책 크기만큼 확대해서 그리면 작게 보았을 때랑 달리 그림의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으며 스케치를 구상하는 도중 또 다른 수정 사항들이 보여 열심히 그렸다고 해도 처음부터 다시 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스토리보드에 대략적으로 그림 구상이 끝났다고 해서 스케치 작업을 처음 들어갈 때 처음부터 힘을 들여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스케치 선을 따면서 그리지 않아도 된다.
스케치를 할 때 보통 글 작가가 글 원고를 보내면 각 시퀀스의 글의 내용을 충실히 표현해 내기 위해 글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을 그림 안에 전부 넣어서 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림책은 글의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그림을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글을 모두 담아내면 모든 페이지의 구도나 연출이 단조로워져 오히려 책을 읽으면 점점 흥미를 잃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확실하게 빼야 할 건 빼고, 넣어야 할 건 넣어서 요소들이 풍성한 장면과 핵심적으로 확대해서 보여주는 장면이 번갈아 나오면서 그림책의 리듬감을 살리며 그려야 한다. 즉 주제에 맞게 핵심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내용들을 중심으로 스케치를 진행하면 된다.
또한 정면이나 위 대각선으로 바라본 구도로만 그림을 그리거나 시야를 일정한 크기로 맞추면 카메라의 움직임이 없어 시선이 한 곳에 머무르게 되어 다큐를 보는 것처럼 시각적인 지루함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그림책을 그릴 때 일단 전경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며 그림책의 분위기를 알려주는데 배경을 먼저 보여준 다음 점점 중경으로 가면서 여러 시점에서 다양하게 바라본 구도로 그린다. 더 나아가 캐릭터의 감정을 살릴 때 캐릭터 얼굴을 확대하여 크게 그려 표정의 변화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캐릭터의 각도도 여러 방향으로 틀면서 동작의 변화를 주어 캐릭터를 동적으로 살려서 그리면 시퀀스들이 하나하나 다채롭게 느껴져 그림책 한 권의 완성도가 훨씬 올라간다.
나 같은 경우 보통 스케치는 3단계로 나누어서 작업을 진행한다.
1단계 스케치에서는 그림책에 어울리는 캐릭터를 개발하고 스케치를 최대한 러프하게 그려 스케치 선과 지우개 자국이 많이 남는다. 2단계부터는 1차 러프 스케치 위에 러프스케치 좀 더 다듬어 어떤 요소들을 배치할지 자세하게 적어놓는다. 어떤 개체가 어디에 들어가는지 적절히 배치한 다음 캐릭터 특성을 살려 생김새를 그리고 풍경은 어떤 모습인지 자연 요소들과 건물의 특성들을 살려내며 그려나간다. 3단계에서는 거의 확실하게 정해진 러프스케치 시안을 바탕으로 스케치 선 두께를 일정하게 주어 선을 따고 디테일한 요소들을 그린다.
현실이나 판타지 세계를 바탕으로 그림책을 제작할 경우 기본적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책 스케치를 진행함에 있어 우리 주변의 사물과 배경들을 자세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는데 관찰과 고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딘가 어색해 보이고 특히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만든 그림책은 우리에게 더욱더 낯설게 느껴지기만 한다. 따라서 여행을 다니거나 주변의 풍경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관찰하여 눈으로 담아내 이를 나만의 것으로 그려내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만약 집 내부 침실을 그린다고 하면 침대가 필수적으로 들어가 있고 공부하는 학생의 방이라면 책상과 컴퓨터, 책장이 있고 안방 침실의 경우 2인용 침대와 옷장 등이 있다. 이때 침대와 가구들은 우리가 생활할 수 있게끔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입체적인 도면으로 대략적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침대의 생김새는 어떤지 관찰하며 디테일하게 그려본다. 그러면 내가 관찰과 고증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그려낸 방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비교할 수 있다. 집의 전체적인 구조를 잘 표현한 그림책 『고롱고롱 하우스』를 참고해 보면 도움이 된다.
그림 시퀀스는 시작이나 결말이 어떻든 간에 반드시 연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의미가 통해야 한다. 『그림으로 글쓰기』중
그림책의 시퀀스를 스케치할 때 책『그림으로 글쓰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먼저 시퀀스마다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도록 가독성이 높게 그려져야 하며 주제와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게 일관성 있게 그려야 한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장면의 흐름에 리듬감과 함께 일정한 속도감이 있어야 하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논리적이고 명확하게 전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림책의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긴장감과 재미를 줄 수 있도록 다양한 연출을 고려하여 그린다.
그림을 그릴 때 보통 글을 넣을 부분은 여백을 주고 나머지 부분은 적절하게 채워서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림책의 종류와 책의 분위기에 따라서 시퀀스의 장면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다.
작가가 독자의 입장에서 시선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려나가기도 하지만 그림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시점에서 바라본 구도로 그림책을 연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주인공이 움직이는 방향에 맞추어 페이지를 넘기면서 공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이때도 마찬가지로 카메라의 초점을 확대하거나 축소하기도 하고 초점을 바꾸어 다각도에서 바라본 구도로 입체적으로 그린다.『엄마 도감』그림책은 아이의 시점에서 바라본 육아를 하여 고된 엄마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아내어 엄마를 주제로 한 다른 그림책들과 차별화된 특징이 있다.
또한 그림책 한 장에 사각형 프레임으로 레이아웃을 나누어 만화 형식으로 그리기도 하고 장면이 빠르게 전개되는 부분에서 레이아웃을 나누어 점점 변화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주거나 초점을 확대하여 필요한 부분을 더 자세하게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부여할 수도 있다. 『팥빙수의 전설』,『태양왕수바』그림책을 쓰고 그린 이지은 작가님이 만화 형식으로 그림책 작업을 많이 하고 서현 작가님의 『호랭 떡집』도 역동적이고 리듬감 있게 호랑이의 모습과 다양한 떡들을 재밌게 살려서 표현하였다.
구도를 다각도로 바라보며 연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처음부터 그림책의 의도를 살려 동일한 구도를 일정하게 반복하여 통일감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계란을 어떤 방법으로 요리하느냐에 따라 프라이와 삶은 계란이 되기도 하고, 계란찜, 오므라이스, 계란말이 등 다양한 종류의 계란 요리를 할 수 있듯이 주제 하나를 설정하여 각 장면 별로 차이점을 주어 이미지의 변화를 만들어나가고 다음 장면을 넘길 때마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킬 수 있다. 위에서 바라본 지붕을 ㄱ부터 ㅎ까지 한글 모양으로 표현하여 각 초성으로 시작하는 단어들을 나열하여 자연스럽게 이야기로 만든 그림책『한글 품은 한옥』이 있으며 우리나라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아이들이 한글과 함께 선조들의 삶과 문화를 즐겁게 배울 수 있다.
그림책 스케치를 완료하면 본격적으로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그림책 스타일과 어울리는 채색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스케치 단계에서 연출을 잘 살려내지 않으면 채색을 아무리 예쁘게 해도 그림책의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며 앞부분 몇 장만 읽고 덮어버리는 재미없는 그림책으로 전락하고 만다. 맛집에 가면 눈앞에 놓인 음식 사진들을 찍게끔 완성된 요리를 예쁘게 플레이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요리들과 차별화된 훌륭한 맛이 느껴져야 한다. 그림책을 그릴 때 스케치 단계에서 시퀀스들을 바로 잡고 가지 않으면 채색 단계까지 다하고 난 후 그림책을 펼쳐서 읽어보면 '이렇게 작업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어 더 큰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채색은 그다음 문제지 스케치 단계에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져 연출이 완벽에 가까워질 때까지 확실하게 잡고 나가야 한다. 여러 종류의 그림책들을 살펴보며 완성된 장면 한 장보다 그림책 각 페이지의 장면들은 흐름에 따라 어떻게 연출되는지 자세하게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그림책이 있다면 글을 필사하듯이 종이에 그림책의 장면들을 대략적으로 그리면서 끄적이며 스케치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서 그림책의 감각을 익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