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일러스트를 그리는 삶
프롤로그에서 소개했듯이 나는 그림책 작가다.
사실 창작한 그림책은 한 권이고 대부분 그림책의 그림 작업을 주로 해왔으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책 일러스트'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에 가깝다.
당장 쓰고 그리는 책은 없지만 그림 작업에 참여한 책들이 앞으로 하나둘씩 출간될 예정이다. 그림을 여러 장씩 연달아 그리면 손목에 통증이 오고 하루종일 모니터를 보게 되니 눈이 뻑뻑하고 아프기도 하였다. 그러나 여러 수정 과정을 거쳐 책 작업을 끝낸 후 완성된 내 그림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다. 책을 작업하는 기간에는 어떻게 그려내야 할지 막막함과 두려움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면 책을 발간한 후에는 힘들었던 상황이 기억 속에서 잊힌다. 그래서 일하는 동안만 잘 참고 견뎌내자라는 마인드로 항상 작업에 임하는 거 같다.
새로운 원고들을 쓰면서 또다시 투고에 도전하고 싶었으나 글과 그림을 함께 진행하는 건 여전히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몇 달, 몇 년에 걸쳐 계속 생각해 내야만 했다. 어쩌면 지금 자유롭게 써 내려가고 있는 글보다 그림책의 스토리를 만드는 게 더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림책은 5분, 10분이면 순식간에 읽는데 스토리 짜는 데에만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고민하고 있는 걸까. 그림책은 다른 책들처럼 장문의 글을 쓰지 않아 글의 구조가 단순한데 말이다.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해야 하니 내용이 재밌어야 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공감을 불러일으키도록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 데다 스토리도 적은 페이지 내에서 개연성 있게 자연스럽게 흘러가야 하니 그만큼 그림책 제작이 더 어려운 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서 아마 당분간은 그림책의 글을 창작하기보다는 지금 진행하고 있는 그림책의 그림 작업들부터 먼저 끝내놓는 것이 목표다. 그림책 삽화 작업을 끝낸 후 또 다른 그림 의뢰가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또 그림책 삽화를 진행하게 된다면 아마 당분간 스토리 창작은 하염없이 더 미뤄질 수도 있을 거라 본다.
글을 쓰고 스토리를 창작하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지만 그림을 그릴수록 나 자신이 전문적인 그림책 일러스트 작가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보통 글과 그림을 둘 다 잘해야 진정한 그림책 작가로 인정을 받지만 그림을 그리는 거만으로도 괜찮다. 전문적인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림책 말고도 컬러링북이나 그림 에세이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를 그려서 나만의 책을 출간할 수도 있고 더불어 교과서 삽화, 굿즈 상품 등에도 내 일러스트를 그려 넣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그림책이라는 영역에만 너무 갇혀있기보다는 그 밖에 여러 갈래의 길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브런치 작가 승인 후 처음으로 연재한 브런치북이며 그림책과 관련된 자료와 정보들을 찾아서 쓰고 나의 그림책 출간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들을 적었다. 비록 남들에 비해 글을 쓰는 실력은 다소 부족하지만 다음에 연재 예정인 브런치 북은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발을 내딘 삶에 대한 에세이를 적어나가려고 한다.
남은 2달 동안 마지막 20대를 보내면서 첫 30대를 동시에 맞이하는 시기인데 20대에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일들을 30대를 맞이하기 전 목표를 정하여 이것저것 더 많이 해보고 싶다. 앞으로 에세이의 방향은 어떻게 나아가고 작성해 나가야 할지 고민한 후 12월 초에 다시 여기로 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