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떠나는 사람, 떠나고픈 사람

돌솥과 청담 사이, 떠날 결심

by 마리


대학생 때,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등록금을 벌어야 했기에, 집 근처 백화점 식당가에 있는 돌솥비빔밥집에서 일했다. 평일엔 손님이 많지 않아서 주방 이모들과 함께 돌솥을 닦고 기름을 바르는 게 주요 일과였다.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모들의 인생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서울의 잘 나가던 한식당에서 일했다는 분, 한때 자기 가게를 운영했다는 분.


그러던 어느 날, 한 이모가 내게 말했다.


“너도 나중에 잘 나간다 해봤자, 결국 여기서 그릇 닦게 될 거야.”


비하하려는 말은 아니었겠지만, 요리에 꿈이 컸던 내게는 꽤나 뼈아프게 들렸다.


‘나는 다를 거야.’


그 마음 하나로 서울로 향했다.


청담동의 한 식당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레 외국을 꿈꾸게 됐다.


그곳 주방엔 7명의 셰프가 있었는데, 모두 저마다의 유학 경력을 갖고 있었다.

르꼬르동 블루 출신, ICIF 이탈리아 요리학교 졸업생, 일본 유학파, 캐나다에서 돌아온 셰프,

그리고 미국에서 온 외국인 셰프까지.


그들과 함께 일하다 보니

‘요리를 제대로 하려면, 언젠가는 나도 해외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누가 시킨 것도, 계획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방향이 되었다.


몇 년간 번 돈을 다 쓰기로 마음먹고, 나는 이탈리아를 선택했다.


왜 하필 이탈리아였냐고 묻는다면, 뚜렷한 이유는 없다. 요리를 배우기엔 유럽이 좋을 것 같았고, 그중에서도 이탈리아는 어쩐지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마침 같이 일하던 오빠가 아는 사람이 있다며 아르바이트 자리도 알아봐 줄 수 있다고 했고, 그래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 시절, 유학을 가는 친구들은 교대 근처 유학원에 등록해 몇 달간 이탈리아어를 배우고 떠나곤 했다. 돌아보면 대부분 형편이 괜찮은 집 자식들이었다.


나는 달랐다. 수업이 끝나면 바로 회사로 갔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평일 쉬는 날 하루가 전부였다.


그래도 힘들다고 느끼진 않았다.


그게 꿈을 향한 길이라서였는지, 아니면 단지 떠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저 신이 났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비자 준비는 쉽지 않았다. 서류 하나하나가 까다로웠고, 특히 재정 증명이 큰 벽이었다. 우리 집 사정으로는 그 ‘잔고 증명’을 맞출 수 없었다.


‘이대로 못 가는 걸까.’


싶었을 때, 이모가 도와주셨다.

형편이 넉넉했던 이모는 가족관계증명서부터 시작해 엄마와 나, 이모를 잇는 서류들을 함께 준비해 주셨다. 그렇게 간신히 학생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출국일. 설렘과 두려움, 긴장과 기쁨—모든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나는 용기만 가득했지만 사실은 세상을 잘 몰랐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래도, 그 용기 덕분에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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