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돌아온 나는 한껏 풀이 죽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마트 계산대에 서면, 동전은 ‘툭’하고 던져졌고, 고맙다는 말은커녕 눈도 잘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의 이마트에 가보니, 계산대 직원분들이 얼마나 친절하신지.
영수증을 건네며 웃어주시는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허리를 깊이 숙이며 “감사합니다”를 내뱉고 말았다.
몸이 먼저 반응한 거다.
역시 한국은 서비스의 나라였구나.
당시 언니가 중앙대 근처에 살고 있어서 함께 원룸에서 지냈다.
자연스럽게 나도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었고, ‘이왕이면 큰 회사에 들어가 보자’는 마음으로 채용 공고들을 뒤적이던 중
‘공채 2기 모집’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도 정확히 몰랐지만, ‘공채’라는 단어가 어쩐지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1차, 2차, 3차 면접을 거쳐—정말 놀랍게도 합격 통보를 받았다.
첫 유학에서 실패만을 반복했던 나에게, 이 합격 하나가 그렇게 큰 위로가 되어줄 줄은 몰랐다.
무언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
그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합격 후 2박 3일간의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마치고, 우리는 각 지점으로 배정되어 흩어졌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여의도에 있는 레스토랑,
그곳은 ‘전쟁터’였다.
증권사 건물 안에 1호점, 2호점이 나란히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고, 점심과 저녁시간엔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바빴다.
그래서 연말에 받은 인센티브도 꽤 괜찮았던 것 같다.
직원 식당은 건물 고층에 있었는데, 식사도 좋았지만 뷰가 정말 끝내줬다.
어느 날 한 직원이 내게 물었다.
“이탈리아까지 유학 갔다 온 사람이 왜 이렇게 서울 관광객처럼 들떠 있어요?”
정말 그랬다.
힘들고 정신없었지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해주는’ 그 자체로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나 같은 시골 사람이 이런 뷰를 보고 어찌 웃음이 안 나올 수 있겠는가.
이탈리아에서 스스로를 의심하며 취업에 실패했던 시간들.
하지만 이 바쁜 현장에서, 나는 다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견딜 수 있었다.
그 시간은, 그렇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시간이었다.
일이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나는 또 다른 지점의 오픈 멤버로 발령을 받았다.
또 다른 시작이었다.
그때 마음속에서 누군가 외쳤다.
“또 시작이다!”
이번에는 조금 더 단단해진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