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도봉봉 Oct 22. 2024

내가 바로 카이저소제다

엄마가 반깁스를 풀지 않는 이유

뜨거운 여름날은 갔다. 한여름에 땀이 뚝뚝 떨어지게 달리는 것도 좋았지만, 시원해지니 땀 안나게 서늘한 바람 맞으며 슬슬 뛰는 것도 좋았다. 저녁마다 달리기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제 우리나라는 여름과 겨울밖에 없을 것이라 과학적 불안이 더 운동을 쉬지 않게끔 했다. 이제 한국은 가을도 없다고, 빨리 밖으로 나가 냅다 달리라 재촉했다.


유난히 날씨가 선선하고 좋던 그날, 신나게 달리던 도중에 내리막길을 내려오다가 발목을 삐긋했다. 집까지 걸어오는데는 문제가 없었는데, 몇 시간 지나고 난 뒤부터는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웬만해서는 병원에 잘 안가고 참거나, 그냥 낫기를 기다리는 편인데 참기에는 너무 아팠다. 

다음날 아침 바로 정형외과에 갔다. 아파도 대충 참고 마는 내 성격을 알기 때문에, 남편도 아이들도 '아, 진짜 아픈가보다'하며 심각성을 느끼는 듯 했다. 병원에 가니 인대가 조금 늘어났고 염증이 생겨서 아프다며 일주일 정도 그냥 쉬면 낫는다고 그냥 가라고 했다. "예? 저 걷기가 힘든데요?"하니 그제서야, "그럼 반깁스라도 해드릴까요?"해서 겨우 반깁스를 착장하여 집으로 왔다.

정형외과 건물에서 한 층만 더 내려가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베이글 집이 있다. 그 건물에 갔다면 그 집에서 무화과 베이글과 소금빵을 사오는 것이 나의 루틴인데, 그 빵집은 나의 방앗간인데, 아파서 못 갔다. 층 하나만 내려가면 되는데 거기까지 걷기도 힘들어 집으로 그냥 왔다. 빵도 커피도 하나 못 사먹고 그냥 와야해서 아픈 것이 서글펐다.


에잇. 빵도 못 먹고. 운동도 못 하고. 이제 연습해서 7km 뛸 차례였는데. 짜증이 났다.

그냥 모르겠다, 누워 쉬어야겠다 하고서는 집에 와서 침대에 발라당 누웠다. 그래도 엑셀, 브레이크 밟는데는 문제가 없어서 운전이라도 할 수 있으니 어디냐, 커피도 햄버거도 DT점에서는 사 먹을 수 있겠다며 애써 위로했다. 병원까지 잠깐 갔다 왔을 뿐인데 절뚝거리는 다리로 온갖 용을 쓰며 다녀와서인지 진이 빠져 눕자마자 잠들었다. 오후가 되어 다들 귀가했다. 깁스하고 침대에 누워자고 있으니 다들 문을 슬쩍 열어보고서는 기척도 없이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갔다. 아무도 밥 달라는 말도 하지않고 깨우지도 않았다. 심지어 더 쉬라고 했다. 남편은 치킨을 시켜서 알아서 아이들과 밥을 먹었고 나는 그냥 방에서 계속 누워잤다. 

'오? 개꿀? 나쁘지 않은데?'

하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왔다.


수영도 달리기도 못 하고, 마트도 카페도 도서관도 못 가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아프다고 집안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 깁스를 감은 와중에도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빨래와 최소한의 청소는 했다. 꾀병은 아닌지라 조금만 돌아다녀도 진이 빠져 가만히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푹신한 쇼파에 자리를 잡고 또 다른 의자를 갖고와 다리를 올려놓고 눕는듯 앉는듯 나무늘보 같은 애매한 자세로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했다.

발목 하나 접질러도 이렇게 불편하고 짜증나는데 나중에 더 크게 아프면 그 때 또 우울증이 오겠구만 싶었다. 나는 이제 늙어갈 일 밖에 없으니 건강 걱정들은 더 늘어만 가겠구만 싶었다. 이래서 건강이 최고다 하는구나. 어른들이 왜 그렇게 종편에 건강 프로를 많이 보나 했었는데 귀리나 아사히베리를 내 몸에 때려 붓더라도, 아프기 싫어서 그렇구나. 아프면 힘들고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짜증나고 서러워서 그렇구나,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절뚝이며 일주일을 살았다. 조금 낫는다 싶어 여름 이불을 다 꺼내 세탁하고, 건조기에 넣고, 접어 이불정리함에 넣었다. 가을 이불을 다 꺼내서 건조기로 털고 이불 커버를 씌워서 침대를 가을 버전으로 단장했다. 이 짓을 침대 수 대로 3번을 하루종일 반복하며 집안을 왔다갔다 했더니 발목이 또 아팠다. 자꾸 날씨가 추워져서 여름 이불 덮고 자기가 춥길래 서둘러 했는데 괜히 했다 싶었다. 그래서 조금 나았던 발이 또 아팠다.


아들에게 이야기 했더니, 남자 심청이 같은 아들이 "엄마, 엄마 조금 낫는다고 집안일 자꾸 하지 말고, 쉬어! 쉬어야 낫지! 집안일은 내가 도와줄 테니까, 나 있을 때 하고 집에서는 좀 누워있어! 알겠지?"했다. 그 순간 '내가 아들 하나는 잘 키웠구나'하며 감동의 눈물이 핑 돌려고 했는데, 아들이 엄마 폰으로 게임 좀 하면 안 되냐고 해서 그 감동은 재빠르게 파괴되었다. 게임이 목적이었냐, 진짜 엄마를 걱정한 것이냐를 물으니 "반반?"이라는 성의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목적이 있는 반절의 걱정이라 할지라도, 말로나마 그렇게 걱정해주니 꽤나 고마웠다. 어른들이 아플 때는 빈말이라도 꼭 과장되게 걱정하는 척을 해야겠다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이 푹 쉬면 일주일 정도면 낫는다고 했다. 푹 안 쉬어서 그런지 일주일로는 택도 없었다. 열흘 정도 지나니 집에서는 깁스를 풀고 다녀도 조금 걸어다닐만 했다. 가만히 앉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는 동안, 남편도 아이들도 재바르게 움직이며 자기 할일을 했다.

이들은 바보가 아니었던 것이다. 의외로(?) 생활력 있는 인간들이었다. 거실 쇼파 한 중간에 앉아 깁스한 발을 떡하니 올려두고 있으면, 나에게는 뭘 찾아달라는 둥, 물을 떠달라는 둥의 소소한 부탁를 하지 않았다. 희대의 싸갈탱구 사춘기 딸도 엄마를 향한 1g의 측은지심은 남아있었는지 언사를 조금은 곱게 하며  딴에는 조심해주었다. 그래서 소리 높일 일이 없었다.


이거 뭐야,

발목은 조금 아파도, 좋은 것도 많네?

이거 완전 럭키비키니시티잖아?!


그래서 깁스를 좀 더 차고 다니기로 했다.

럭키비키니시티에 조금 더 살아보도록 했다.

환자의 특권을 조금 더 누리기로 했다.

아직 완전히 다 나은 건 아니니까.

완전 뻥카도 아닌데 뭐 어때.


아침에 일어나면 깁스를 찼다.

"아, 오늘도 아프네."

라며 혼잣말이지만 모두가 들리게 큰 소리로 씨부려주고 절뚝거리며 아이들의 아침을 차려줬다. 다들 출근하고 등교시키고 나면 깁스를 풀고 자연스럽게 걸으며 집안을 돌아다녔다.


내가 바로 유주얼 서스펙트 그 자체다.

내가 바로 카이저 소제다.


나는 그 영화를 운 좋게도 결말을 모르는 상태에서 봤다. 다리를 절뚝거리다 멀쩡하게 걸어가는 그 결말을 보며 너무 놀라 입을 틀어막았던 기억이 난다.

와. 영화를 이렇게 만든다고?

뒷통수를 정통으로 가격당하고 한동안 멍 때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이 딱 그 짓이라 너무 웃겼다. 우리 식구들이 지금 내가 깁스를 풀고 멀쩡하게 걷는 모습을 보면 입을 틀어막겠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몰라. 그건 잘 모르겠고.

일단 안 벗을란다.

깁스 계속 차고 있을란다.

편하다. 뭐라하는 사람도 없고.

운동도 안 하니까 시간도 많이 남고, 가만히 앉아 책이나 유튜브만 보면 되고 딱 좋다.

그냥 이대로 살란다.

죽는 것도 아닌데 그냥 천천히 나아라.

누워서 빈둥빈둥 살이나 찌자.


다들 평소에 아내와 엄마한테 잘 하십시오!

아플 때만 잘해주니까 나아도 아프고 싶잖습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