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
비가 오는 저녁이다. 사람들은 하나둘 우산을 꺼내 들고 바삐 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그 행렬에 섞여 천천히 걷는다. 빗소리를 들으며, 아내와 나란히 걷는 이 시간은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마지막 치르는 의식과도 같다.
“오늘도 어김없이 걷는 거야?” 나는 웃으며 묻는다.
“당연하지. 오늘은 비도 오니까 분위기도 있잖아.”
“그 분위기 속에 무릎이 시큰거리면 낭만도 없어지는 거 알지?” 둘이 동시에 웃는다. 우린 늘 이렇게 약간의 투닥임 속에서 웃음을 낳는다.
나이가 들수록 드는 생각은 단순하지만 깊다. 예전엔 건강을 말로만 했지만, 이제는 직접 부딪히며 체감한다. 체력이란 건 어느 날 훅 빠지면 다시 채우기 참 어렵다는 걸. 무엇보다 몸이 지치면 마음도 함께 꺼진다. 책을 읽고, 좋은 말을 듣고, 지혜로운 삶을 꿈꾼다 해도, 그걸 실행할 수 있는 동력은 결국 건강한 몸에서 나온다.
아내와 나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운동은 시간 날 때 하는 게 아니고, 시간을 내서 하는 거야.” 그 말이 처음엔 부담처럼 들렸지만, 지금은 습관이 됐다. 식사 후 30분 걷기. 매일 반복된 이 단순한 습관이 삶을 조금씩 바꿔놓고 있다.
식탁에 앉아 나누는 대화도 예전과는 다르다. 지금은 어떤 음식을 먹느냐보다, 어떤 음식을 멀리해야 하느냐를 더 고민한다. “조금 덜 먹자.” “식사 순서만 바꿔도 위가 덜 힘들어.” “하루 15분 가볍게 걷기만 해도 몸이 달라져.” 대화는 더 이상 흘러가는 말이 아니다. 실천이 따라붙는, 삶의 방식이 되었다.
비가 오는 퇴근길, 우산 속에서 우리는 또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 작은 걸음들이 내일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나도, 아내도 안다. 이 평범한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당신, 비 와도 참 잘 걷는다. 덕분에 나도 더 걷게 되네.” 나의 말에 아내는 빙긋 웃으며 말한다.
“항상 걷는 건 비 오는 날에도 기분 좋은 운동이야.”
나이가 든다는 건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가까이서 서로를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산 하나, 걷는 발걸음 하나에 담긴 의미가 날마다 깊어진다.
한 줄 생각 : 몸이 지치면 지혜도 빛을 잃는다. 걷는 발걸음이 삶의 방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