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담벼락 밑 화단을 가득 채운 제법 파랗게 싹을 이룬 꽃들의 모습이 반갑기만 하다. 봄에만 꽃이 피는 것은 아니다. 각기 다른 계절에 자리하고 있는 나무들은, 마치 자신만의 내밀한 축제를 갖고 있는 것처럼 서로 다른 시기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이들은 자연의 이치에 리듬을 맞춰 자신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나는 마치 그 꽃들처럼, 지금의 나만의 계절에서 내 특유의 미와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 때로는 봄처럼 촉촉하게, 가끔은 여름처럼 활기차게, 가을처럼 성숙하게, 그리고 겨울처럼 정적으로.
나는 모자라고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아직 내 시기가 아닐 뿐이다. 느리게 가더라도 제시간에 제 마음대로 피어날 꽃을 찾아가고 있다.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자신만의 봄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은 눈에 띄지 않더라도, 그 뒤에는 기다렸던 순간들이 꼭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느린 속도, 늦은 시간이라 하여도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하는 많은 것들이 올바르게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보다 앞서 있을 필요도 없고, 내 뒤에 누군가보다 뒤져 있을 것도 없다. 각자의 흐름에 따라 차곡차곡 쌓인 노력들은, 언젠가 피어날 꽃으로 변할 것이다.
때로는 아직 보이지 않는 꽃의 향기에 흠뻑 취하고, 미래의 열매가 맺어질 순간을 기다린다. 오늘 내가 하는 모습이 내 앞으로 펼쳐질 꽃의 양식이라면, 나는 그 기대에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꽃은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봄에만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각기 다른 계절에서 모든 꽃들이 하나씩 피어나리라 믿는다. 나의 기나긴 삶에서 어떤 꽃이 어떻게 피어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미지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더 멋진 나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내 삶이 궁금할 뿐, 나무로 자라고 있는 나만의 꽃들이 기다려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