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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돌 Oct 12. 2018

파마와 자원봉사

미용실에의 기대_2



 미용실에서의 단상을 기록한 지도 어느덧 2년 반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곳에 쓰기 전 개인 블로그에 끄적였던 걸 옮긴 글이다 보니 따지고 보면 훨씬 더 지난 셈이긴 하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4년, 아니 5년도 더 된 일이었나 보다. 취준생 무렵에 한 달에 한 번 꼴로 들르던 동네 미용실에서 마음 좋은 원장님을 통해 뜻밖의 힐링을 받았던 기억에 관한 글이었으므로.(급히 이사를 오며 제대로 인사도 못 드려서 때때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이후로도 나는 회사 근처 혹은 자주 가는 역 부근 등등 여러 군데의 미용실을 이용했다. 더러는 꽤나 마음에 들어서 재방문을 했고, 일부는 그냥저냥이라 다시 찾지 않았으며, 간혹 실망스러웠을 때는 어쩌랴- 그저 내 얼굴을 탓하며 얼른 머리가 자라길 기다릴 수밖에.

  



 지금의 미용실에 어김없이 들르게 된 건 반년 전쯤부터였을 거다. 

구석진 동네에 마땅한 곳이 없어서 매달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마침 집 근처에 새로 오픈한 미용실이 생겨서 찾아간 ○헤어. 새 손님을 반갑게 맞아 준 원장님이 손수 커트한 머리가 썩 마음에 들어 이후로도 계속 찾은 것이다. 유명 프랜차이즈 헤어샵에서 일하다가 따로 미용실을 차리셨다는 말씀에(대부분의 개인샵들이 그러려나) 더욱 신뢰를 갖고 머리를 맡겨올 수 있었다. 게다가 웬만한 '실장'급 이상의 디자이너 비용에 비한다면 동네 미용실의 가격이란 어찌나 저렴한지!


 좌석은 두 개뿐인 작은 미용실에, 그것도 한가한 시간만 골라서 가기 때문에 들를 때마다 나는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거의 혼자 뿐인 상태로 머리를 자른다. 나 말고도 한 두 명의 손님이 더 있거나 직원 한 분이 일을 거들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평일 오전에는 대개 원장님과 나 둘이서만 있느라 이런저런 말들을 주고받을 때가 많다. 사실 언제부터인가 식당 같은 데서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잘 꺼내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편이긴 하지만, 미용실이라는 곳은 좀처럼 그렇게 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윙윙대는 바리깡 소리가 침묵을 대신한다거나, 그렇게 단순히 커트가 끝나는 '스포츠머리'로 자르지 않는 이상 미용실에서는 자르는 이와 잘리는 이가 오래도록 마주하기 때문이다. 사각사각, 툭툭. 다시 사각사각. 꼭 앞머리를 자를 때가 아니더라도 어색한 시선을 감추기 위해 눈을 질끈 감으면 나른한 잠이 쏟아지는데 막상 또 잠이 들 수는 없다. 행여 고개를 떨구거나 몸을 움찔하기라도 하면 머리가 뭉텅 잘려 손해를 볼 지도 모르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 그럴 일이야 드물겠지만 어쨌든 불안함에 다시 눈을 뜨면 가위와 빗을 들고 내 머리에 열중하고 있는 분이 새삼 고마워 보인다. 그래서일까. 이를 외면하고 입을 꾹 닫는 건 어쩐지 지나치게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하다못해 날씨 얘기라도 꺼내게 되는 것이다.   




 어제는 미용실에서의 시간이 더욱 특별했다. 

오랜만에 펌을 했는데 꼭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부르는 대로 다시 쓰자면, '파마'를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그리 자주 하지는 않는 파마를 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특별한 일이긴 하다. 그만큼 내가 미용실을 신뢰한다는 뜻이며, 모처럼 어떤 결심을 하고 머리에 변화를 준다는 의미여서다.


 파마보다 특별했던 건 바로 세이브더칠드런 직원의 방문이었다. 그렇다고 그분이 특별했단 얘기는 아니고 그분을 따뜻하게 맞아주며 자신이 하고 있는 자원봉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원장님이 내 마음을 참 좋게 해 주어 특별한 시간이었다. 원장님은 한 달에 한 번 중학생 아들과 함께 중증 장애인들의 머리를 잘라주는 봉사를 하고 계신다고 했다. 사연을 과장하지도, 애써 감추지도 않고 담담하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자원봉사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는 원장님의 진실함이 듣기 좋았다. 


 그전까지 미용실에 손님은 나 혼자 뿐이었고, 원장님도 혼자였다. 적어도 두 시간 이상 작은 미용실에서 원장님과 단 둘이 있었다는 뜻이다. 오후 외출 전에 머리를 하기 위해 일찌감치 들렀으므로 미용실에는 나 말고 다른 손님은 없었다. 그렇게 한산한 오전 시간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원장님이 내 머리를 꼼꼼하게 말아주고 열처리 기계를 막 켜놓은 무렵이었다. 미용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손님의 기척은 확실히 아니었다. 한 손에는 파일 뭉치를 들고 다소 상기된 얼굴로 그는 원장님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나왔는데 잠시 말씀을 나눌 수 있겠냐는 거였다.


 완곡하게 거절할 줄 알던 내 예상과 달리 원장님은 커피까지 내어주며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취지의 말들이긴 했으나 그렇기 때문에 한 번 꺼내진 사연은 길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기금이 쓰이는지를 묻던 원장님이 자신의 봉사 이야기로 화제를 바꾼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나 너무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나도 아이를 가진 엄마 입장이라 어려운 아이들에게 더 마음이 간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일들을 하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단체를 통한 후원도 알아보겠다. 혼자 다니시느라 고생이 참 많으신데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하다. 아닙니다, 이렇게 커피도 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신 것만 해도 참 고맙습니다. 저보다 좋은 일을 이미 많이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라디오 사연의 미담 같은 두 분의 대화는 내 눈 앞의 미용실 거울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파마 기계를 가슴 언저리에서 돌린 것 마냥 마음까지 뜨뜻해진 기분이었다. 

 


 

 세이브더칠드런의 직원분이 돌아가고 난 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으로 이어졌다. 난 어릴 때 꽃동네 봉사를 갔던 경험이나마 얘기했고, 원장님은 자녀들과 함께하는 봉사에 대한 이야기와, 인근 중학교에서도 재능기부를 더 하고 싶은데 막상 학교 측에서 소극적이라 아쉽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그녀의 넉넉한 마음이,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전해지며 모처럼 선행과 베푸는 삶에 대한 생각들이 머리를 채웠다.


 내 머리는 꽤 잘 말아졌다. 

아직은 처음이라 살짝 어색하지만 조금만 자라면 자연스러워질 것 같다. 봉사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동안 파마에 충분한 열처리 시간이 지나고 뜸(?)이 들어서 더 잘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나는 파마 후에 분명히 돈을 지불했지만 마치 무료 봉사를 받은 듯한 마음이 하루가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신체의 불편함 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불편함도 어떤 의미에서 장애라고 본다면, 원장님은 자신도 모르는 새에 내게도 일종의 봉사를 해 주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뻔한 얘기지만,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이 아닐까. 파마를 원하는 고객의 머리를 따뜻하게 말아주는 미용의 마음. 후원을 원하는 직원의 방문을 진심으로 알아주는 봉사의 마음. 결국 나는 또 이렇게 미용실에서의 힐링과 만족을 통해 '미용실에의 기대'를 또 한 번 말한다. 


 이번 파마는 유난히 오래도록 자연스러움을 유지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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