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 클로버의 불행

초단편소설_1

by 차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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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칵, J는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의 버튼을 눌렀다. 노오란 조명이 주위를 금세 밝혔다. 창 밖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제법 어울렸으나 낭만에 취할 틈은 없었다. 오랜만에 앉아보는 책상 앞이었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밤이면 늘 그렇게 방에서 음악을 듣거나 일기를 쓰던 그였다. 하지만 J는 요즘 들어 도무지 홀로 앉아 무언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와의 이별 후, 그는 멍하니 침대에 드러눕거나 술을 마신 뒤 곧바로 잠을 청하는 밤을 보내온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 그는 떠오르는 상념을 주체할 자신이 없었다.


책상 위로는 잡동사니들이 놓여 있었다. 그것들은 흐트러져 있는 듯 보였으나 나름대로의 규칙으로 정돈된 상태이기도 했다. 그중에는, 바싹 말라버린 네 잎 클로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J는 천천히 그걸 집어 들었다. 짙은 녹색이던 네 잎 클로버는 어느새 생기를 잃어 누런 빛을 띠고 있었다. 주광빛 조명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었다. 네 잎 클로버는 본래의 푸르름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그 생명은 줄기가 꺾였을 때 이미 다했다고 봐야 할지 몰라도, J의 기억에 클로버는 한동안 갓 따낸 듯 싱싱했었다. 그리하여 그는 그것을 코팅하거나 책갈피로 끼워 넣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잘 보이는 곳에 고이 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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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완전 신기하다 오빠! 어쩜 이렇게 금방 두 개를 찾아?!


J가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 건 세 달 전의 일이었다. 그녀와 함께 나들이를 하다가 길섶에 한가득 피어난 클로버 밭을 지나던 중이었다. 항상 그랬듯 둘은 고개를 숙여 유심히 클로버들을 살폈다. 운이 좋으면 네 잎이 난 행운의 클로버를 발견할지도 모른단 기대에서였다. 그날따라 운 좋게도 J는 금세 네 잎 클로버를 찾아 그녀에게 쥐어주고는 하나를 더 찾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는 마침내 또 하나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했다. 마치 심어놓은 위치를 미리 알고 있기라도 했던 듯 거짓말처럼 빠르게 두 개를 찾아낸 거였다. 톡, 하고 따낸 두 번째 클로버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헤어 보니 틀림없이 네 장의 잎이었다. 그야말로 행운의 연속이었다.


그러게, 눈에 잘 보이던데?
우리 운세가 좋은가 봐. 하나씩 가지면 되겠다.


둘은 네 잎 클로버 하나씩을 손에 쥐고 함빡 웃었다. 오랜 연애가 무색할 만큼 풋풋하고 설레는 순간이었다. 조금 더 크고 선명한 클로버는 그녀의 것이었고, 보다 작은 잎의 클로버는 J가 가졌다. 행여 약하고 여린 잎들이 떨어지기라도 할 새라 둘은 각자의 책과 노트에 네 잎 클로버를 소중히 끼워 넣었다. 일상에 지쳐있던 그들에게 네 잎 클로버는 그만큼 반갑고 절실한 행운을 가져다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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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바라던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두 남녀에게는 불행이 덮쳤다.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부터 그들은 잦은 다툼 끝에 결국 헤어진 것이다. 이별은 둘의 일이었으나 후회와 괴로움은 오로지 J의 몫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실은 터무니없는 그의 잘못이 서로의 신뢰를 완전히 깨트렸고, 이에 지친 그녀가 더 이상의 관계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J는 깊은 상실감에 몸서리치며 끊임없이 자책해야만 했다. 그녀가 어떠한 상태일지 짐작하는 일조차 버거워 그는 자신의 아픔에만 더더욱 빠져들었다. 온 마음으로 실연 아닌 실연의 고통을 견디는 내내 J는 불행했다.


그러다 간신히 책상 앞에 홀로 앉은 무렵에야 J는 네 잎 클로버를 다시 발견했다. 그는 그녀의 부재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오랜 잘못을 깨달았으나, 이미 네 잎 클로버는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뒤였다. 그전까지 그는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자신의 진심이 전해지기만을 바랐다. 반드시 그녀의 용서를 통해서만 자기 자신도 용서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게 아닌데, 우린 이렇게 이별할 게 아니었는데- 그는 그녀가 마침내 왜 떠나갔는지를 헤아리기에 앞서 이별 자체를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이다. J는 그녀가 이별의 아픔을 견디다 못해 자신에게 연락해 오기를 내심 기대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는 네 잎 클로버를 통해 문득 깨달았다. 볼품없이 초라해진 눈 앞의 그것은 그녀의 클로버가 아닌, 그 자신의 클로버 한 개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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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바싹 마르고 시든 네 잎 클로버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가만히 바라봤다. 잎마다 줄지어 새겨진 결이 생선 가시마냥 두드러져 보였다. 흡사 사람의 유골과도 같은 앙상한 모습이었다. 그는 언젠가 박물관에서 보았던 미이라 전시 따위를 떠올렸다. 학창 시절 과학실 한 구석에 있던 인체 해부 모형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네 잎 클로버는 여전히 그의 손 위에 퍼석하게 놓여 있었다. J는 행여 잎이 바스라질새라 조심스레 줄기를 집어 원래 위치에 놓으며 생각했다. 살이 썩어 뼈대가 드러나듯, 이 녀석도 방치해 놓으니 이토록 상해버렸구나-


그는 그제야 몹시 궁금했다. 과연 그녀가 가져갔던 네 잎 클로버는 어떻게 됐을까-

'진작에 버렸으려나? 아니면 어딘가에 두었단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까?'

무의미한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으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녀의 네 잎 클로버 역시 진작에 생기를 잃고 누렇게 말라버렸을 거란 사실 말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둘은 각자의 초록빛 클로버를, 서로의 행운을 이야기 나눴으나 더는 그럴 수 없는 지금이었다. 이에 J는 다시금 가슴 저릿한 고통을 느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딸칵, 스탠드 불을 끄자 방은 다시 어두워졌다.


J는 더 이상 네 잎 클로버에서 행운을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다만 그는 이제 진심으로 빌었다. 그녀가 자신처럼 불행하지는 않았기를, 앞으로도 불행하지 않기를. 쉬이 오지 않을 잠을 청하며 그는 또 희망했다. 꿈속에서나마 그녀가 손에 쥔 네 잎 클로버는 밝은 초록이기를. 그의 방에는 앙상하고 누런 네 잎 클로버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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