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삶을 닮았다
버스를 지하철보다 선호한다. 정확성으로 치자면 지하철이 단연 앞서겠지만 내게 가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기 때문이다. 창 밖 세상을 구경할 수 있다는 점, 외진 곳까지의 접근성이 낫다는 점과 같은 일반적인 비교우위 말고도 내가 생각하는 버스의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불확실성'이다.
지도, 교통 앱의 발달로 어디서든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를 손쉽게 검색할 수 있는 세상이다. 게다가 휴대폰, 정류장 전광판을 통해 버스의 도착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이쯤 되면 버스의 정확성 역시 지하철 못지않다고 여길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버스는 때때로 불확실하다. 정말 꼼꼼하게 정거장의 위치와 실시간 배차 정보를 확인하지 않는 한 우리는 보통 정거장에서 10여 분을 기다리고, 내릴 곳을 수시로 돌아보곤 한다. 자주 다니는 코스가 아닌 이상 버스를 타는 일이 지하철에 비해 번거롭고 불확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나는 버스를 좋아한다. 목적지로 가기까지의 다소 투박한 과정이야말로 삶의 불확실성을 닮았다고 보는 것이다. 누군가는 보다 확실한 지하철을, 완벽한 삶을 선호할지 몰라도 적어도 내 선호는 그 반대란 말이다.
지하철과 달리 버스를 탈 때 겪는 기사님과의 만남 또한 내가 생각하는 불확실성의 범주 안에 있다. 어떤 기사님은 가벼운 목례를, 또 어떤 기사님은 '안녕하세요/어서오세요' 인사말을 건네오는 버스 탑승의 순간. 완벽한 기계음과 차가운 스크린 도어, 기계적인 안내음뿐인 지하철에 몸을 실을 때와는 다른 인간미를 버스에서 느낀다.
물론 아무런 인사 없는 기사님들도 많지만 내 생각엔 그 또한 인간미의 하나다. 그저 묵묵히 일하는 중인 직업인에게 인사 서비스마저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여길 때 비로소 드물게 주고받는 밝은 인사가 더욱 빛나는 법이니까.
주거지의 변화로 인해 지하철보다 버스를 탈 일이 많아졌다. 미리 예상했고, 충분히 고려한 사항이다. 전에 없이 광역 버스를 탈 일도 늘었는데, 고속버스 같은 그 승차감과 정거장 사이의 길고 긴 거리에 종종 여행하는 기분마저 느낀다.
해가 갈수록 삶에 확실한 건 드물다고 느낀다. 무심코 바라본 버스 창 밖의 풍경은 완연한 가을이다. 여러모로 불확실한 버스지만 목적지까지 도달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