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0] 도전 : 1일 1글쓰기 - 프로젝트 '좋아해'
독립하면 꼭 해놓고 싶은 게 있었다. 냉장고 한 칸을 맥주로 가득 채워 언제든지 꺼내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아쉽게도 차량이 없는 나는 박스 채로 쟁여 놓을 순 없었지만 틈나는 대로 집 근처 편의점을 들락날락 거리며 맥주를 사다 마셨다. 330ml짜리로는 조금 모자라 500ml짜리 4캔을 사서, 한 번 먹을 때 두 캔에서 많게는 네 캔을 한 번에 해치우기도 했다. 아파트 후문 쪽에는 세븐 일레븐이, 정면에는 CU가, 조금 옆에는 GS25가 있는 편세권이어서 맥주도 골고루 골라 먹을 수 있다.
금세 배가 부르고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되는 맥주를 어떻게 먹냐고 하는데, 오히려 배가 고픈데 마땅한 저녁거리가 없거나 너무 힘들어서(or 더워서) 입맛을 잃은 날엔 맥주가 딱이다. 무더위에 반쯤 녹아내려 귀가한 날, 냉샤워를 하고 냉동실에 넣어둔 맥주를 꺼내 마시면 절로 '살 것 같다' 탄성이 나온다. 그제야 하루가 마무리된 것 같다. 무탈하게 끝낸 오늘에 감사한 마음이 들 지경. 집에서 마시는 캔맥주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땡땡하게 얼린 잔에 살얼음 가득한 생맥주를 가득 따라주는 호프집 맥주. 이때는 안주가 굳이 뭔지도 중요하지 않다. 탄산가스가 살아 있는 맥주를 한 입 가득 머금으면 얹힌 것도 없는데 속이 쑥 내려가는 느낌이다. 이래서 맥주는 아무리 기름진 것과 함께해도 계속 청량하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음식 조합도 과학이다.
입맛이 예민한 편이 아니어서 맥주는 어떤 종류든 좋다. 과일향이 나는 향기 강한 맥주도, 쌉싸래한 뒷맛이 나는 맥주도, 고소하고 부드러운 흑맥주도 다 그 맛 그대로 맛있다. 최근에 꽂혀 있는 맥주는 곰표 맥주. 품귀현상이 날 때 궁금해서 마셔보곤 너무 내 취향이어서 거의 1년째 사 먹고 있다.
낮에도 맥주를 즐겨 마시던 뜨거운 여름이 가고, 깊어진 가을 날씨에 마시는 양이 부쩍 줄어 아쉽다. 겨울엔 여름보다 절반이 줄어든다. 사계절 중 가장 싫은 계절로 꼽는 여름이지만,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이 오면 맥주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여름을 상상하곤 한다. 불이 다 꺼진 베란다 데크에 앉아 냉동실에서 갓 꺼낸 맥주를 홀짝이는 밤. 인센스 스틱을 하나 켜 두고, 분위기 좋은 음악을 틀면 머릿속에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하늘엔 별이 반짝이고 달무리가 환하게 빛나는 밤, 앞마당엔 예쁜 장미가 피어 있고 깜박깜박 반딧불이가 춤을 춘다. 발치엔 고양이가 있고 간간히 매미소리도 들리는 시골의 툇마루. 상상만 했는데 맛있는 맥주가 그리워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