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2.98kg으로 태어났다. 처음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3kg 도 안 되는 작은 생명을 소중히 품에 안고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가볍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사랑의 무게를 안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 아이가 아파도 기뻐도 힘들어도, 인생에 엄마가 필요한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 옆에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내 삶의 일부로 이 아이를 소중히 여기며 훗날 건강하고 행복한 어른이 되어 내 품을 떠날 수 있도록 지켜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만나고 나서 나는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일이 무섭지 않아 졌다. 나이를 먹고 늙어야 반대로 자라는 내 아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건강하게 늙자고 마음먹었다.
나는 본래 건강한 체질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잔병치레를 달고 살았고, 예민해서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가면역질환이 재발한다. 20대 초에는 너무 많이 일을 해서 허리디스크에도 걸렸었고, 스트레스로 난소물혹 수술도 받았었다.
이러니 저러니 생존을 위해 결혼 전에도 수영이나 요가와 홈트레이닝 등 다양한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체력이 더욱 절실해졌다. 건강한 영향력을 선사하는 부모가 되고 싶었다. 인성은 체력으로부터 비롯된다는 말에 나는 꽤 동감하는 편인데, 부모가 되어보니 체력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직결됨을 실감했다. 사람은 누구나 피곤하고 체력이 부족하면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게 된다. 그리고 그 부정적인 화살은 상대적인 약자에게 향한다. 가정에서는 당연히 가장 어리고 약한 아이에게 갈 수밖에 없다.
나의 엄마는 워킹맘이었기에 항상 체력이 부족했는데, 엄마가 피곤하고 몸이 아픈 만큼 내 마음도 함께 멍들었다. 엄마의 삶이 벅차고 힘들 때마다 원망의 화살이 자연스레 내게로 향했기 때문이다. 너를 안 낳았으면 나는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너는 악마 같은 아이야. 시집살이시킨 큰고모를 닮아 태어난 네가 끔찍하다 등등의 말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박혔다. 어떤 말들은 총알보다도 더 오래 가슴속에 남는다. 엄마의 폭언들을 타산지석 삼아 나는 내 아이에게 저런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출산 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아이가 밤잠에 들면 남편에게 아이의 수면보초를 맡기고 가벼운 산책을 시작했다. 돌이 될 무렵에는 인생 처음으로 헬스장 PT를 결제했다. 여러 운동 종목을 고려했을 때, 육아는 장기전이기에 지구력과 근력을 확실하게 키울 수 있는 헬스가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PT를 20회기 정도 진행하며 운동기구 사용법과 근육의 움직임 등을 익히고 난 후 트레이너 선생님의 보조 없이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유튜브 영상들과 각종 헬스 관련 서적들을 찾아보며 내 몸에 맞는 운동 루틴과 방법들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헬스를 통해 체력을 기름과 동시에, 운동의 순기능을 발견했는데 바로 일상 속 스트레스로부터 잠시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근력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자세와 횟수, 호흡에 집중하느라 회사 일이나 육아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이 반찬 메뉴 고민, 쌓인 집안일, 장 봐야 할 목록 등으로 머릿속이 항상 복잡했는데 운동을 하고 나면 생각들이 전환되고 정돈되는 느낌이 들었다. 하면 할수록 장점이 더 많은 운동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운동을 습관으로 들여서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이년 넘게 헬스장을 다니게 되었다. 평소에는 아이가 잠든 밤늦게 헬스장에 출근도장을 찍곤 하는데, 회사 업무 스트레스가 심한 날은 아이 저녁을 먹이고 나서 목욕과 재우기를 남편에게 부탁하고 헬스장으로 달려가기도 했다.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퍼붓게 될까 봐 홀로 감정을 다스리기 위한 선택이었다. 주말에도 아이가 낮잠에 들면 남편과 바통터치를 하고 헬스장으로 달려갔다. 운동을 향한 나의 집념은 내 끈기와 남편의 배려로 이어질 수 있었고 나는 출산 전보다 건강하고 강한 몸을 갖게 되었다. 힙쓰러스트는 60kg, 힙 어브덕션은 100kg를 거뜬히 수행한다. 파워레그프레스는 얼마 전 180kg를 성공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보다 탄탄한 두 다리를 가진 슈퍼맘이 되었다. 남편보다도 아이를 더 오래오래 안아줄 수 있고, 아이를 번쩍 들어서 빙글 뱅글 돌려주며 놀아줄 수도 있다. 감기는 일 년에 한두 번 걸릴까 말까 한다. 잔병치레가 없어서 아이가 보고 싶어 하고 가고 싶어 하는 곳에 망설임 없이 가자는 약속을 하고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남편 없이 하루종일 아이를 데리고 만보 넘게 돌아다녀도 크게 피곤하지 않다. 아이와 단둘이 각종 동물체험 카페와 키즈카페, 집 주변 대형 쇼핑센터와 공원까지 두루 섭렵했다. 무엇보다 아이에게 짜증을 거의 내지 않는다. 체력이 늘어나니 화가 나는 역치도 높아졌다. 몸이 아파 끙끙 앓아누울 일도 없으니 평일에는 틈틈이 매 주말마다 아이와 놀러 갈 곳을 열심히 찾게 되었다. 또한 늘어난 체력 덕에 아이에게 책을 한 권 더 읽어주고 한번 더 웃으며 말을 거는 부모가 될 수 있었다. 내가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사랑들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 내게 임신이나 육아에 대해 고민 상담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좋은 부모가 되고 싶다면 무조건 운동을 하라고 권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난, 타고난 환경은 바꿀 수 없지만 적어도 부모의 체력과 건강은 스스로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건 자식에게 직결되어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운동을 하고 난 뒤 건강해진 내 모습을 보고 남편도 나를 따라 헬스장 이용권을 등록하게 되었다. 꾸준히 러닝을 하고 유튜브로 다양한 운동기구 사용법도 찾아보더니 어느새 15kg이나 감량했다. 남편도 확실히 체력이 늘어나니 짜증이 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나는 내 아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한 부모 밑에서 자라길 바랬다. 그리고 그 부모의 온전한 사랑으로 내 아이의 몸과 마음 모두 오래도록 건강하길 기원했다. 내 아이는 나와 다르게 건강한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기를 소망했다. 아픈 부모님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가지고 사는 기분과 같다. 어릴 적 내 가슴에 맺힌 멍울에서 시작되어 실천으로 옮긴 이 장기 프로젝트는 순항 중이다.
내 아이 덕분에 나는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내 아이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 내가 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도록 나를 노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와 내가 주고받는 사랑은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기꺼이 욕심내게 한다. 나는 마음껏 욕심내도 탈 나지 않는 이 사랑이 좋다. 그리고 건강한 내 몸이 마음에 든다. 나는 이대로 행복하다. 앞으로도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한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훗날 내가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아이가 엄마를 머릿속에서 떠올렸을 때, 고통스럽게 아파하는 얼굴이 아니라 건강하고 밝게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내가 노력해서 가능한 일이라면 아이와의 이별은 제일 나중으로 미루고 싶다. 아이 옆에 오래도록 함께 있어 주고 싶다.내 삶의 일부인 내 아이를 따듯한 눈으로 지켜보며 사랑을 헌신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헬스장에 출근도장을 찍어야 할 날들이 아직도 무수히 남아 있다. 앞으로 50년은 더 다녀야 할 것 같은데, 10년도 못 채운 나는 아직 부족하다. 멋진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건장한 하체와 단단한 어깨 근육을 자랑하고 싶다. 내 아이가 훗날 할머니가 되어도 엄마가 필요한,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모든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먼 미래에도 아이에게 든든한 부모이고 싶다. 내 사랑의 손길이 아이에게 오래오래 닿았으면 좋겠다.
이번 달도 열심히 살았다.
일주일에 최소 세 번, 일 년 153번 헬스장에 출근도장을 찍도록 내게 엄청난 노력과 건강한 욕심을 선사한 우리 아이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바친다.